지난해 정부는 제로에너지건축 단계적 의무화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그에 따라 올해부터 1천㎡ 이상 공공건축물은 제로에너지빌딩으로 지어야 한다. 2025년부터는 연면적 1천㎡이상 민간건축물, 연면적 500㎡ 이상 모든 공공건축물, 30세대 이상 공동주택으로 확대된다.

‘제로에너지빌딩(ZEB)’이란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해 건물 자체에 신재생 에너지 설비를 갖춰 외부로부터 추가적인 에너지 공급이 없어도 되는 건축물이다.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패시브(Passive) 기술’과 고효율 기기 및 신재생에너지를 적용한 ‘액티브(Active) 기술’을 적용한다.

‘녹색친구들’은 사회주택을 제로에너지빌딩으로 짓기 위해 나선 사회적기업이다. 지난달 크라우드펀딩플랫폼 오마이컴퍼니에서 ‘제로에너지빌딩 사회주택 사업의 사모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켑코에너지솔루션으로부터 23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양사는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제로에너지빌딩 사회주택 ‘녹색친구들 대조’를 선보일 예정이다. 켑코에너지솔루션(주)는 건축비 투자와 함께 제로에너지빌딩 컨설팅과 인증 및 제로에너지 기술 솔루션을 제공한다. 녹색친구들은 사업기획 및 건축시공, 임대운영을 맡는다.

이번 제로에너지 건축은 사회주택 업계에서 최초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녹색친구들 사무실에서 김종식 대표를 만나 친환경 사회주택을 추구하는 그의 비전을 들었다. 인사와 함께 받은 친환경 종이 명함에는 “집에서도 지구에서도 사람은 나무와 같은 세입자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8월 2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녹색친구들 사무실에서 김종식 대표를 만났다. 사진=녹색친구들

서울시 사회주택 사업 첫 타자...“‘공공임대주택 들어온다’ 반대 심했죠”

김 대표는 20대에 학생운동을 하다 4년간 수감됐다. 함께 운동하다 세상을 떠난 학생들도 있다. ‘나를 위해 살지 않을 거다. 죽어간 후배와 동기들, 선배들이 원했던 세상을 만들겠다.’ 이후 그의 인생을 지금까지도 이끄는 모토다.

자본주의에 잠식된 사회를 바꾸려면 경험과 학습이 필요했다. 말로만 뜻과 성의를 외치는 게 아니라 일단 시장을 알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는 러시아 무역, 핸드폰 부품 모듈 제조업 등 영리 법인을 만들어 오랫동안 경영활동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문을 닫았다.

이후 녹색연합에서 활동했다. 사회적경제를 공부하며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모델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단체들이 후원금으로 운영되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로 자립해 지속가능한 변화를 이룬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가 녹색연합에 사회주택 모델을 시도해보자고 제안한 이유다. 2011년 고용노동부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지금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참여해 이듬해 법인을 설립했다.

법인 설립 후 당시 서울시 성북구청장이었던 김영배 의원을 찾아갔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사회주택의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하는 인물이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관련 법·조례가 없었다. “공공임대주택 들어온다”며 반발하는 주민들도 많았다. 결국 불발됐다. 김 대표는 “민관협력형 임대주택이라는 취지로 설득하려 했지만, 첫 시도라 개념 자체를 이해시키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사회주택이 서울시 조례로 채택되기까지는 약 4년이 더 걸렸다. 채택 후에는 사업자 협력 생태계를 만들 민간 단체 ‘사회주택협회’도 출범했다. 2015년 7월, 녹색친구들은 사회주택 시범사업자로 최초 선정됐다. 육성사업 참여자 2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25명의 식구를 두고 있다. 2019년까지의 착공 사업을 포함해 사회주택 337세대를 공급했다.

녹색친구들은 서울시 예비사회적기업, 국토교통형 예비사회적기업을 거쳐 2018년 12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2018년 10월에는 국토교통부 도시재생 우수기업, 2019년 10월에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가치 탁월등급 우수기업에 선정됐다. 사진=국토교통부

“사회주택 핵심? 사람중심·민관협력·토지사회화”

국내 사회주택 개척자로서 김 대표가 생각하는 사회주택이란 뭘까. 김 대표는 핵심 조건으로 사람 중심 관리, 토지의 사회화, 민관협력을 꼽았다.

그는 “혼자 사는 공공임대주택 거주자들이 우울증이 생기거나 고독사하면서 크게 사회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며 이웃과 공동체 회복을 강조했다. “이웃과 공동체가 파괴된 건 아파트를 투기화했기 때문”이라며 “건설사의 살만 찌우는 결과를 낳는다”고도 덧붙였다.

땅의 공공성 회복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서울시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의 경우, 서울시가 토지를 사회주택 사업자에 40년 동안 빌려주고 입주민들의 장기 주거를 보장한다. 땅을 소유하지 않아도 마음 놓고 오래 살 수 있다는 것. 김 대표는 “토지의 사회화는 우리가 앞으로 나가야 할 토지정책, 부동산 정책의 미래와도 맞닿아 있다”고 부연했다.

또한 “공공임대주택 한 채당 1억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한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사회주택은 입주민들이 관리를 스스로 하니 세금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거 만족도까지 높다면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김종식 대표는 77개의 회원사를 둔 (사)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도 겸임한다. 사진=녹색친구들

제로에너지빌딩 ‘녹색친구들 대조’ 내년 준공...“하드웨어부터 친환경”

기업명이 ‘녹색친구들’인 이유는 간단하다. 친환경 가치를 추구한다는 김 대표의 비전이 담겨있다. 모토인 '죽어간 후배와 동기들, 선배들이 원했던 세상'과도 연관돼있다. 그가 2011년에 사회주택 모델을 제시할 때, “‘베드제드(Bed-Zed)’ 한국판”이라 표현했다고 한다. 베드제드는 영국 런던 남쪽 서튼(Sutton) 자치구에 건설된 ‘베딩톤 에너지 개발(Beddington Zero Energy Develoment)’을 줄인 말이다. 에너지 자립단지로 조성됐는데, 2002년 완공 당시 100가구 중 50%는 일반에 분양하고 25%는 직원과 설립자용, 25%는 저소득층에 임대했다. 친환경과 주거복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녹색친구들 사회주택 2호 창천점 외관. 사진=녹색친구들

김 대표는 녹색친구들 대조 투자계약으로 약 10년 전 꿈꿨던 한국판 베드제드에 한 발 다가섰다. 제로에너지빌딩 기술 솔루션이 건축물 설계단계부터 적용되는데, 화석연료와 다르게 에너지 사용 후 환경 오염을 일으키지 않는다. 친환경 건축은 비용이 많이 들어 추진이 어려웠는데, 켑코에너지솔루션이 좋은 파트너가 됐다. 그는 “그동안 건설, 운영, 관리했던 사회주택에서는 쓰레기 배출량 줄이기, 일회용 포장 용기 자제하기 등 입주자들의 행동을 유도했다면, 이제는 하드웨어부터 친환경을 추구할 수 있어 뜻 깊다”고 말했다.

“환경에 관심 없는 국가들, 사람들도 많은데, 친환경 건물 하나 짓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겠죠. 하지만 남들이 실천할 때까지 비판만 하며 기다려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환경 문제는 나부터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방법을 고민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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