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가 ‘기후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남 걱정해줄 때가 아닙니다. (기후 문제가) 가지지 못한 자, 못사는 나라의 문제인 줄 알고 살살 피해 가려 했는데, 아닙니다. 우리가 당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공유하는 문제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풀어나가야 할 ‘사회적 가치’라는 겁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이달 24일 유튜브에서 진행한 SOVAC2020 기조연설에서 “모든 중요한 사회적 가치 문제는 전부 생태계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올해 수해로 피해를 겪었던 일을 언급하며 그동안 기후 위기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봤던 모습을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며 ‘기후 악당’이나 ‘기후 깡패’가 아닌 ‘기후 바보’라고 말했다.
약자에 집중된 피해...‘생태적 전환’ 필요
최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로 돌아본 양극화와 환경 문제를 접목했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약자층에 팬데믹 피해가 집중됐는데, 이들이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이런 문제들은 기후변화·생물다양성 문제에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팬데믹 상황이 오자 무인도를 통째로 사서 도망간 서양 거부들도 있다던데, 생각보다 사태가 길어져 청소부·요리사·배달부가 필요해지면 결국은 바이러스에 같이 노출된다”며 “이번 사태를 통해 얻은 뼈저린 교훈”이라고 말했다. 돈 있는 사람만 스스로를 방어한다고 질병에서 해방되는 게 아니라는 것. “싱가포르는 방역을 잘하다가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의 집단 감염으로 다시 확산됐다”고도 덧붙였다.
그동안 사회적 비용을 계산하지 않고 발달해 온 경제학이지만, 이제는 이런 외부효과를 내재화하지 않으면 자본주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데 학자들이 동의한다며 ‘도덕 경제학’ 개념도 내세웠다. 최 교수가 초점을 둔 사회적 비용은 생태계 파괴다. 그는 기업의 정중앙에 생태 개념을 붙들고 가야 한다며 ‘환경친화적 기업’을 넘어선 ‘생태중심적(Eco-centered) 기업’을 강조했다. 그는 “많은 기업들이 스스로 환경친화적이라고 하는데, 이는 ‘다른 기업에 비해 우리는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정도의 변명일 뿐”이라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연생태계를 보전하면서 가는 게 우리가 살길이라고 인식해야 한다”며 기업들에 ‘생태적 전환’을 촉구했다.
코로나19로 살펴본 사회생물학적 “호혜”
최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도 환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의료진, 불편하지만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벗지 않는 시민들을 ‘호혜자(Reciprocator)’라는 사회생물학 용어로 정의했다. 평소 자기 이익을 취하다가도 상황에 따라 남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일컬으며, 지나친 이기주의자나 오로지 남에게 헌신하는 이타주의를 뺀 대다수 시민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쓴 건 스스로가 들이마시지 않기 위해서였다면, 이번에 마스크를 쓴 이유에는 남들이 걸리지 않게 하려는 생각도 깔려 있었다는 것. 더운 날씨라 불편해도 방역 수칙을 잘 지키는 모습을 두고 최 교수는 “이렇게 사회 전체가 같이 지켜야 할 가치를 ‘사회적 가치’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진화를 거쳐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이 남을 도우며 사회를 구성하게 됐다는 점을 핵심으로 짚으며 ‘호혜성 이타주의’도 설명했다. 호혜성 이타주의 이론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보답을 기대하며 남을 돕는 행위로 인간과 동물들의 사회성이 진화했다는 이론이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옛말이 있지만, 길에 누군가 위험에 처해 있으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앞뒤 생각 없이 뛰어들기도 하는 등 우리는 꼭 가족을 위해서만 희생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인간의 학명은 ‘호모 사피엔스’인데요, 현명한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다른 생물들과 지구를 공유하고 함께 가겠다는 뜻으로 ‘호모 심비우스(공생인)’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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