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시든 도시 안에 사는 것 자체가 매우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도시에 가면 일자리가 있었고, 좋은 학교가 있었고, 다양하게 즐길 거리가 많았다. 굳이 ‘재생’이 화두일 리 없었다. 하지만 지역 산업의 구조가 바뀌고, 건물이 노후화되고, 인구가 인근의 신도시에 지속해서 유출되면서 우리 삶의 터전이었던 오래된 타운, 구도심은 급격히 쇠락하게 되었다. 10년만에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사라져 버린 구도심에서 ‘재생’은 단순히 중앙정부의 돈 조금 받아와 잔치 몇 번 하는 수준을 넘어서 생존의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과연 쇠락하는 수많은 구도심의 생존 전략이 된 ‘재생’이라는 키워드와 사회적경제가 만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어떤 예를 찾아볼 수 있을까.

먼저 도시재생을 정의해볼 필요가 있다. 로버트(Roberts) 등은 저서 ‘Urban Regeneration’에서 도시재생을 ‘도시가 직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도시의 경제적, 물리적, 사회적, 환경적 개선과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비전과 일련의 행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서 우리는 ‘개선’과 ‘통합’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정의에 의하면, 도시 안의 거주하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 도시재생의 중요한 목적이다. 정부의 개입을 통해 도시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은 재개발로서 도시재생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원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리고 성공적인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관과 관, 관과 민, 민과 민이 함께하는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과거의 도시재개발이나 신도시 건설은 관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서 진행되고 그 결과로서 원주민은 강제 이주에 내몰리게 되었다. 주민은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도시재생의 과정에서는 주민과 관이 함께 계획하고 실천하는 더 큰 그릇이 필요하고 이를 잘 조직해 내어야만 한다.

도시재생은 현대 도시가 겪고 있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등장했다. 도시에 대한 정책 개입의 결과로 토지자산가와 건설업자가 벼락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사는 주민이 겪고 있는 다양한 삶의 문제가 관과 민의 협력을 통해 조금씩 해결돼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도시재생인 것이다.

한편 사회적경제를 이끄는 사회적기업가는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시장의 메커니즘으로 풀어 보고자 하는 혁신가들이다. 사회적기업은 취약 계층을 위해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협동조합은 주민 스스로 참여를 통하여 공동의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마을기업은 마을의 생산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자활기업은 빈곤층의 탈빈곤을 위해 자활사업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혁신한다. 이렇게 본다면 사회적경제와 도시재생이 추구하는 목적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도시재생과 사회적경제가 만날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 두 가지 예를 통해 단서를 찾아보도록 한다.

전형적인 폐광 마을인 정선군 고한 18리에는 사회적경제 방식으로 지역을 재생한 ‘마을호텔 18번가’가 있다. 1980년대 후반 본격화된 석탄 합리화 정책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모든 탄광은 사실상 문을 닫았다. 수십 년간 호황을 누렸던 광산업으로 인해 탄광 인근에는 주거지와 학교, 교회, 식당 등이 즐비하게 들어섰는데,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한순간에 마을 전체의 기능이 멈춰 버린 것이다. 폐허가 되어 버린 마을의 주민은 세 가지 선택 중 하나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떠나거나, 보상을 바라며 남거나, 마을을 다시 살려보겠다고 노력하거나. 세 번째 선택을 한 주민의 수가 당연히 가장 적었지만, 그 결과는 가장 위대했다.

마을을 살리기 위해 마을에 남기로 한 주민들은 수년간 노력의 결실로 올해 ‘마을호텔 18번가’라는 브랜드를 세상에 출시했다. 마을호텔18번가는 주민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플랫폼으로서 마을 전체가 하나의 호텔로 연결되는 일종의 연결망을 지향한다. 빈집을 호텔 방과 카페로 개조했고 인근 상점도 이 브랜드 안에 들어와 마을 전체를 호텔로 탈바꿈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사회적경제를 학습하였고, 협동조합을 설립했으며, 추진 총괄을 사회적기업에게 맡겼다. 이렇게 사회적경제와 도시재생이 만난 것이다.

ㅣ마을호텔 객실의 외벽. 총 세 개의 호텔방이 준비되어 있다. 네이버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고한 18리의 모든 상점과 주택에는 꽃이 진열되어 있다. 누가 먼저 놓았는지 기억할 수는 없어도 이제 꽃을 가꾸는 것은 주민의 일상이 되어 버린 듯하다. 폐광 마을의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음으로 소개할 곳은 부천시 소재의 ‘부천아트벙커 B39’이다. 부천시 중동의 신도시가 개발될 때 건설된 소각장 건물인데 현재는 문화와 예술의 창조적인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이 부지는 다이옥신 과다 검출로 매스컴에도 여러 번 등장한 주민에게는 일종의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시설로 인식되고 있었던 건물로서 가동 10여 년 만에 중단하여 소각장으로서의 생을 마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폐산업시설 및 산업단지 문화재생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 근거가 마련되었고, 2016년부터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었으며, 2018년 마침내 개관하게 되었다. 지역 주민에게 비선호시설이었던 공간이 선호시설로 바뀌었다.

외벽은 거의 보존되었다.

현재 이 공간의 관리는 문화 및 예술 관련 사회적기업이 하고 있으며 공간의 대여, 프로그램의 구성 등에 사회적기업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종의 문화 및 예술 관련 사회적기업을 위한 플랫폼이 만들어졌다.

소각 후 환경 정화 시설로서 보존되어 전시되고 있다.

폐산업 시설의 보존은 도시재생에 있어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지역의 역사성이 보존될 뿐만 아니라 환경의 지속가능성도 높이고 이 시설에서 공공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건축에 대한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마을호텔 18번가’와 ‘부천아트벙커 B39’를 통해 도시재생과 사회적경제의 만남을 짧게 훑어보았다. 두 사례를 통해 사회적경제와 도시재생이 만나는 방법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첫째, 도시재생 추진 과정에서 주민의 참여를 담는 그릇으로 사회적경제가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관과 민 혹은 민과 민의 협업 과정에서 조직화된 주민의 참여가 필요한데 사회적경제는 주민을 조직화하는 훌륭한 매개체가 된다. 둘째, 도시재생 추진 과정에서 주민의 학습을 이끌어 내는 학습의 장이 될 수도 있다. 전술한 바대로 도시재생은 주민 삶의 문제를 개선하고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목적으로서 이에 대한 가치관의 정립과 사회 문제에 대한 이해, 해결 방안의 도출 등은 충분히 학습되어 있어야 한다. 사회적경제가 지니는 장점 중 하나이다. 마지막 셋째, 도시재생의 추진 주체로 사회적경제가 참여할 수 있다. 두 사례 모두 사업의 추진 주체가 사회적기업이었다. 민간의 다양한 주체 중 사회적기업은 사회 문제에 대한 이해가 가장 많은 부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도시재생 사업이 주민의 삶과 멀어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재생과 사회적경제와의 만남의 기회는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것으로 보인다. 도시재생이 사회적경제를 만나 더욱 성공적으로 주민의 삶을 개선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최유진 교수

 

※이 글은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시민경제연구유닛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릿지(Issue Bridge)'에 게재되는 글입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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