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에서 일하다 마주한 노동 현실에 맞서 민주노총 전국민주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에 합류했고, 직접 정치에 나서 국회 담까지 넘었다. 정의당 입당 후 3년이 채 되기도 전에 국회에 자리잡은 류호정 의원의 이야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제6대 국회 이후, 만 나이로 20대에 국회에 입성한 의원은 단 3명. 제20대 국회 김수민 전 의원과 제21대 국회 류호정·전용기 의원이다. 류 의원은 올해 만 27세에 뱃지를 달아 의원 300명 중 막내다. 사무실 직원 평균 연령도 34세로 낮은 편. 그는 브이로그 '류원실log'를 촬영하고, 원피스·청바지·반바지를 입는 등 친근한 ‘입법 노동자’를 추구하며 관행에 도전하는 행보를 보인다.

류호정 정의당 비례대표 의원. 사진=진재성 인턴기자

그가 내놓은 첫 법안은 강간죄 개정을 위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정의당이 추진하는 5대 우선 입법과제 중 ‘비동의강간죄’에 해당한다. 발의 다음 날이었던 지난 13일, 여의도 국회 의원실에서 류 의원을 만났다. 당일만 5개 인터뷰가 있었다고 한다. 어리다는 이유로 받는 주목, 기성세대에 둘러싸인 분위기가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멘탈’을 가졌다”고 자신했다. 그는 오히려 “국회의원이라고 주변에서 당연하게 챙겨주는 모습에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의 사소한 의전은 사라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기 초에는 보안 담당자 분들한테 많이 붙잡혔습니다. 저 같은 젊은 여성이 국회의원일거라고 생각하지 못한거죠. 최근에 인지도가 높아지고 나서는 일어나서 인사를 하더라고요. 근데 이 분들 월급에 '국회의원에게 일어나 인사하기'가 포함돼있지는 않을 텐데, 이런 사소한 의전들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비례대표 후보 시절 ▲포괄임금제 폐지 제도화 ▲근로기준법상 차별금지 기준 강화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전태일3법 국회통과 ▲1가구 다주택 중과세 ▲할아버지 상속 할증 과세 ▲청년기초자산제 도입 등 청년, 노동, 여성 의제 관련 공약을 내세운 류호정 의원. 그가 청년 여성 정치인으로서 국회에서 이루려는 혁신과 가치는 사회적 약자에 초점을 맞췄다.

다음은 류호정 의원과의 일문일답.

Q. 이번에 20대 국회의원이 탄생한 것만으로도 주목을 많이 받았다. 다른 인터뷰에서 청년 정치인에 대한 편견을 ‘구체적인 성과’로 깨겠다고 말했는데, 어떤 성과를 말하는가.

- 국회의원은 입법자이므로, 성과는 당연히 입법이어야 한다. 특히 청년, 노동, 여성 의제에 관한 성과를 반드시 내고 싶다. 법 개수가 핵심은 아니다. 단순 용어 수정으로도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데, 이렇게 개수만 늘리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최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한 개라도 사회 인식 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번에 발의한 비동의강간죄를 꼭 통과시키고 싶다.

*비동의강간죄('성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형법 개정안')
성범죄 처벌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더 많은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나온 법안으로, 제20대 국회에서 이정미 전 의원이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현행 형법 제32장의 제목은 ‘강간과 추행의 죄’로, 기존 ‘정조에 관한 죄’에서 1995년 바뀐 제목이다. 개정안은 이를 다시 ‘성적 침해의 죄’로 바꿨다. 텔레그램대화방 성착취사건처럼 다양한 형태의 성범죄가 출현하는 만큼, 현시대를 반영해 더 포괄적인 표현을 써야 한다는 취지다. 강간죄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건 32장의 제297조인데, 현행법은 강간을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행위’만으로 규정한다. 개정안은 이 구성요건을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경우’와 ‘폭행·협박 또는 위계·위력인 경우’로 유형을 나눴다. 류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폭행과 협박’으로 간음한 경우에만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는 법원의 해석은 더 이상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이 외에도 개정안은 강간과 추행의 죄에 대한 형량을 강화하고, 법문·구성요건 개정으로 의미가 없어졌거나 다른 형사법과 처벌이 중복되는 법 조항을 삭제하는 등 체계를 정리했다.

Q. 비동의강간죄에 대해 피해자의 마음대로 범죄 성립이 좌우되는 거 아니냐는 반대의견이 있다. 동의여부로 판단 시,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다.

- 범죄의 수사와 재판에서는 피해자의 일방적인 진술만이 아니라 피해자 진술을 보강하는 수많은 보강증거를 종합해 판단한다. ‘동의 의사’라는 걸 외부에서 인지할 수 있어야 하고, 피고인이 인식해야 하므로 피해자의 내심만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비판은 무리하다. 형사재판에서 ‘고의’의 입증은 모든 범죄에 똑같이 적용되는 문제다. 피해자의 동의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과 피해 상처가 없는 경우 폭행이 있었다고 입증하는 것은 수사 기법상 차이가 없다.

과잉 범죄화를 경계하는 자세도 필요하지만, 동의를 기준으로 하는 강간죄 규정은 단순히 처벌 영역 확장만이 아니다. 강간죄의 판단 기준을 성적 자기 결정권 침해라는 성폭력의 본질에 부합하게 하는 법률 구성요건의 개정이다.

Q. ‘동의’라는 모호한 표현이 입법화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는데.

- 개념이 일부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입법화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법의 해석이나 판례로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의 개념의 경우 법률 문구 조정으로 적용 범위를 설정하고 해석이 불명확한 부분은 법원의 해석으로 의미를 보충할 수 있다.

류호정 의원실 앞에 붙은 대자보. 류 의원은 10일 국회 의원회관 곳곳에 비동의강간죄를 소개하는 대자보 100장을 붙였다. 사진=진재성 인턴기자

Q. 통과될 전망이 있다고 보는가.

- 통과되리라 믿는다.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다루게 될 텐데, 관련 의원님들을 설득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도 강간죄 구성요건에 피해자의 의사를 담은 개정안을 발의하는 등 국회 내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본다. 동의 여부가 쟁점 사항이기는 하지만, 동의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건 국제적 흐름이기도 하다.

형법 제32장은 성범죄 처벌에 대한 기본법이다. 성범죄에 대한 국민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는데, 변화된 상식을 법제화해야 한다. 최대한 빨리 통과시키고 싶다. 연내 통과를 목표로 한다.

Q. 1호 법안 외에도 준비 중이거나 대표발의 하고 싶은 법안이 있다면.

- 지난달 채용 비리 처벌 관련 법 제정을 위해 간담회를 했다. ‘채용 비리’나 ‘채용 청탁’ 같은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거의 매일 기사가 나온다. 이런 비리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지금까지는 채용 비리만을 이유로는 이들을 처벌할 법이 없었고, 업무방해죄 등 다른 법률로 우회해야 했다. 준비 중인 법안은 채용을 청탁한 주체를 처벌하고,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본 구직자를 구제하는 내용 등을 담는다.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걸었던 포괄임금제 폐지도 있다. 포괄임금제는 초과 근로 수당을 미리 급여에 포함해서 지급하는 제도다. 게임업계에 있을 때 포괄임금제로 일을 했는데, 장시간 노동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게 문제더라. 건강과도 직결되는데, 게임업계는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분야로 지적받는다. 해결 근본 방안으로서 공약으로 걸었으며, 관련 간담회는 준비 중이다.

인터뷰 당일 류호정 의원실 내 집무실 벽에는 유튜브 영상을 찍을 때 쓰는 검은 배경천이 서있고, 탁자에는 노란색 마스크·가방·핸드폰·우산 등이 '굿즈'처럼 놓여있었다. 사진=진재성 인턴기자

Q. 청년 정치인으로서 내세우는 ‘젊은 노동,’ ‘미래의 노동운동’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 노동을 낡고 낯선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많은데, 개념 확대가 필요하다는 데서 생각이 출발했다. 노동 감수성 교육도 부족하다. 학창 시절에 근로계약서 쓰기, 단체협약 체결하는 법 등을 배운 기억이 없다. 자라면서 익숙해질 기회가 없는 거다. 사람들이 스스로 ‘노동자’보다 ‘근로자’라는 단어로 정체화하길 선호하는 마음도 이런 편견을 담지 않을까.

화섬식품노조에 있을 때 SNS 계정을 만들어 운영한 것도 더 친숙하게 다가서기 위해서다. 노동조합에 대해 흔히들 조끼, 머리띠, 화난 표정 등을 떠올리더라. 평범한 노동자가 어떻게 투쟁을 시작했는지 과정을 설명하고 공감대를 끌어내기 위해 담백한 일상용어로 소개했다. 인식을 전환하고, 나아가 프리랜서나 특수고용노동자 등 더 많은 일하는 시민들을 노동자로서 사회 보호망 안에 들여와야 한다.

Q. 총선 때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와 정의당의 협약식이 있었다. 협약 내용이 정의당 내에서 성실하게 다뤄지게 할 계획이 있는지, 가장 초점을 두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 협약을 하지 않았더라도 지켜야 하는 내용이더라. 정의당 강령과도 맞아떨어진다. 눈에 띄는 내용은 청년 주거 불평등 해소에 관한 부분이었다. 현재 1인 가구 최소 주거면적은 14㎡(약 4.2평)인데, 책상과 침대를 놓으면 끝이다. 현실적으로 2배는 돼야 한다. 보증금 1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작은 자취방에서 시작했던 당사자로서 문제의식을 느낀다. 어떤 청년이라도 9평 이상인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

Q. 어떤 국회의원으로 인식되고 싶은지 궁금하다.

- “필요할 때 곁에 있었던 사람”이다. 정치는 사회적 약자의 무기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부당한 권고사직, 임금 체불 문제 등을 호소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임금 체불 같은 경우 회사 측에 의원실이 관심을 두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해결되기도 하더라. 이럴 때 국회의원의 진정한 힘을 느끼는데, 이왕이면 약자를 위해 휘두르고 싶다.

우리도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것처럼, 나도 언젠가는 기성세대가 돼 비판을 들을 거다. 그대로인 사회보다 그게 바람직하다. 정의당이 보수당이 되는 날을 꿈꾸며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진보 정치인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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