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기발한 패러디로 화제가 되는 의정부고 졸업사진은 올해 사회적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인터넷에서 유행한 ‘관짝소년단’의 패러디를 한 사진이 논란의 중심에 섰는데 인기 예능인 샘 오취리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학생들의 흑인 분장을 공개적으로 지적했기 때문이었다. 그간 한국인의 흑인에 대한 편견을 종종 지적했던 터라 그 연장선에 있는 비판이었다. 개인 SNS의 발언을 두고 사회적 논쟁의 불씨를 지핀 것은 한국경제신문의 ‘샘 오취리, 영어는 당신만 할 줄 압니까?’라는 기사였다.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의 요지는 간단하다. 샘 오취리가 흑인의 문화를 존중하자고 하면서 한국인을 영어로 비하했다는 것이다. 양비론을 제기해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전형적인 물타기다. 기사가 언급한 한국 비하의 구체적인 예는 영문 내용 중 교육하다(educate)와 무지(ignorance), 두 단어다. 영어권에서는 두 단어가 상대방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해당 표현을 썼으니 한국인 비하의 뉘앙스가 담겼다는 일방적 주장이다. 메이저언론의 기사라고 믿어지지 않은 시비 걸기인데 당장 영어 능력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영어권의 권위 있는 사전 어디에도 두 단어에 비꼼이나 비하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내용이 없다. 흑인 코스프레에 대한 비판이 불편하다는 일부 여론에 불을 지피기 위해 기자가 얼토당토않은 근거를 들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여론은 흑인 분장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무관심했던 것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자는 쪽과 학생들의 단순한 코스프레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쪽으로 양분됐다. 별것 아닌 일에 누군가로부터 지적을 당한 것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할 수 있다. 하지만 흑인 분장을 단순한 코스프레로 간주할 수 없다는 외부의, 특히 대상인 흑인들의 지적은 진지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흑인 노예 패러디 민스트럴 쇼

19세기의 미국에서는 민스트럴 쇼(the minstrel show)가 아주 성행했다. 춤과 노래를 곁들인 코믹 단막극이었는데 간단히 말해 미국판 개그콘서트였다. 문제는 등장인물과 주제였다. 백인들이 흑인 분장을 하고서 흑인 노예들이 얼마나 개그 캐릭터인지 패러디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쇼의 배경은 대부분 흑인 노예들이 일하는 농장이었고 시트콤 형식으로 농장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코믹하게 묘사했다. 민스트럴 쇼의 대중적인 인기는 19세기 내내 이어졌다. 흑인 노예들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쇼였지만 비판의 목소리를 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20세기 들어 다양한 엔터테인먼트가 새로 등장하면서 시들해졌지만 개그 캐릭터로서의 흑인 노예는 미국 대중문화에서 오래도록 명맥을 유지했다. 그저 웃자고 하는 쇼에 뭐 그렇게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냐는 백인들의 정서 때문에 가능했다. 민스트럴 쇼가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이 미국 전역을 휩쓸면서 흑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다.

1895년 미국 워싱턴에서 새로 오프닝하는 민스트럴 쇼 홍보 포스터.민스트럴 쇼는 19세기 미국에서 성행한 엔터테인먼트로 코믹 단막극과 뮤지컬로 구성됐다. 백인들이 흑인 분장으로 하고 흑인 노예를 희화화하는 내용이라 논란이 됐다.?

M.A.S.H를 통한 역지사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흑인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이해된다. 1970년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끈 시트콤 중에 ‘M.A.S.H’가 있다. 제목은 야전병원의 약자로 한국전쟁 중 의정부에 주둔한 의무부대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다뤘다. M.A.S.H는 무려 11년이나 지속한 장수 시트콤이었는데 ‘잊혀진 전쟁’이라는 한국전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서 인기몰이를 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을 빗대어 풍자한 것은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베트남전이었다. 시트콤의 배경이 한국전쟁 중인 의정부 지역이라 여러 한국인 등장하는데 극의 성격상 대부분 희화화됐다. 한반도는 쑥대밭이 되고 동족상잔이 벌어지는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극 중의 한국인은 시트콤에 풍미를 더해주는 개그 캐릭터로 등장한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대부분의 미국인에게 한국인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를 심어주었음은 큰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대중문화가 만들어 낸 특정 인종이나 국민에 대한 정형화된 이미지는 다수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상이 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비판하지 않는 한 대중문화 수용자에게 문제의식은 싹트지 않는다.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도가 매우 높은 한국

의정부고 학생들의 패러디 비판에 대한 반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나름 논리적인 이유와 근거를 대고 있지만 샘 오취리가 지적한 핵심은 다 비껴가고 있다. 이번 일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의제는 부지불식간에 깊게 뿌리 내린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결해갈 것인가다. 인종차별은 서구인들이 유색인종을 대상으로 한 것일 뿐 우리는 상대적으로 그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데이터는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세계 사회과학자들이 1981년에 결성한 비영리단체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ry)는 100여 개 국가를 대상으로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정기적 설문조사를 해서 사회변동의 원인을 규명하고 리포트를 낸다. 2017~2020년 기간에 7차 조사가 진행 중인데 분석이 완료된 가장 최근 조사는 2010~2013년에 이뤄진 6차 조사다. 국가별 인종차별의 척도로 ‘이웃이 되길 원하지 않는 이들이 누구냐’는 질문에 ‘다른 인종’이라고 답한 비율을 제시했다. 다른 인종이 이웃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높을수록 인종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낮을수록 관용도가 높다.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 그룹은 응답률 40%로 인도, 요르단, 방글라데시, 홍콩이 속한다. 그 다음 그룹이 응답률 30%대 국가인데 한국은 거기에 속한다. 그렇다면 대표적인 인종차별 국가인 미국, 영국은 어느 그룹에 속할까? 제일 낮은 5% 이하 그룹에 속한다. 

환영받는 비판, 비판받는 비판

데이터에 드러난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 정도가 여전히 피부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경우 인종 대신 고령자,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새터민, 난민, 성소수자 등을 대입해보자. 그런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을 타자화하고, 대놓고 표출하지 않을 뿐 의식 깊숙한 곳에 혐오와 차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우리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해서 자주 미디어에 등장하는 미국 출신 방송인 타일러는 시카고대와 서울대 학위의 휘광이 더해져 입바른 말을 하면 곧잘 화제가 된다.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을 짚어줘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곤 하는데 얼마 전에는 한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검은 대륙’이라는 용어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우월한 유럽이 열등한 아프리카를 정복해야 한다는 제국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말이니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자기 SNS를 통해 모 언론매체에 공식 요청했다. 그때 많은 한국 사람들이 타일러에게 찬사를 보냈다. 샘 오취리의 발언과 타일러의 발언에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어떤 발언에는 환호를 보내고, 어떤 발언에는 비판을 쏟아내는 솔직한 이유를 살펴봤으면 한다.

편견을 벗어나 세계시민권의 획득

스타워즈와 더불어 SF의 양대 산맥인 스타트렉의 원작자 진 로든베리는 인간과 다양한 외계인들이 어우러진 우주 모험담을 풀어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류는 성숙해질수록 천차만별인 인간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어울려 조화롭게 살아가는 문명을 만들게 될 것이고, 그 문명이 정점에 이르면 같은 종이 아닌 외계인과도 더불어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자신의 낙관을 작품에 담았다고 한다. 스타트렉은 1961년부터 쓰였는데 냉전이 정점으로 치닫고 이념과 체제의 대립이 격화되는 와중에 공존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도 갖고 있었다. 작가는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수용이야말로 지구별을 벗어나 우주로 나갈 자격을 주는 우주시민권을 얻는 것과 같다고 역설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사회의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편견의 감옥에서 벗어나 열린 세계로 나갈 자격을 얻는 세계시민권을 부여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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