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내게 묻습니다.

‘그냥 눈 한번 질끈 감을까? 아님 내민 손을 꼬옥 잡아줄까...’

연말이면 등장하는 구세군 냄비나 매달 우편물 함에 날아 든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를 볼 때면?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큰 도움을 바라는 것도 아니건만 이리저리 재어보며 선뜻 손을 잡아 주기 보다는 외면했던 경험이 더 많았죠.

때론 ‘나눔’에 대해 거창하게 생각 할 때도 많았습니다.
‘ 아직은 때가 아니야… 좀더 여유가 생기면 멋있게 그리고 듬뿍 해야지… ‘하며 작은 실천을 미루곤 하죠.
그러나 세상은 우리에게 비록 나 하나의 힘은 미약하지만 여럿이 뭉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 작은 실천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한 음식점을 소개합니다.

‘문턱 없는 밥집’을 아시나요? http://cafe.daum.net/bobjibngage


법률상의 문제와 거듭되는 적자로 폐업 위기까지 내몰렸던 이 음식점은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최근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문턱없는 밥집’은 여느 음식점과는 다릅니다.


매일 낮 12시부터 1시반 까지 정해 놓은 점심 메뉴는 딱 하나!

친환경 쌀과 유기농 야채로 버무린 비빔밥 입니다.
특이한 점은 음식값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거에요. ‘양껏 드시고 형편 것 내라’고 합니다.


‘형편 것’이란 사전적 의미 그대로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맞게 내라는 것이지만 그 이면엔 여건이 허락하는 분들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점심값을 후하게 지불해 달라는 숨은 뜻이 담겨있죠.

또 하나의 특징은 ‘빈 그릇 운동’입니다. 음식물을 남기지 말고 식사 후에는 그릇에 숭늉을 따라 마셔 밥 알갱이 하나라도 버리지 말자는 취지입니다.

2007년 문을 연 이래 많은 분들이 이 운동에 동참했지만 어려운 이웃을 돕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문을 닫게 될 위기에 처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자 지역사회가 발벗고 나섰습니다.


노조가 설립되고 대책위원회가 꾸려지면서 사회적 기업에 머물렀던 이 밥집은 지원금에 상당 수 의존해왔던 기존의 형태에서 탈피해 조합원들이 힘을 뭉쳐 수익성을 높이고 상생하자는 취지에서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했습니다.

‘사회적 협동 조합’이란 지역 주민의 권익과 복리를 증진시키고 취약계층에 사회적 서비스와 일자리 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반 협동조합과는 다릅니다. http://eroun.net/38191

조합의 책임을 맡고 있는 엄민영 이사장 역시 이 음식점의 단골손님이었습니다.

엄민영 문턱없는밥집 협동조합 이사장
어떻게 조합에 참여하시게 됐나요?

”7년 전 밥집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드나들었어요. 환경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빈 그릇 운동에 공감했죠. 밥값은 평균 3천원정도 냈어요.

처음엔 유기농 야채가 그렇게 비싼 줄 몰랐어요. 시장에 나가보고 깜짝 놀랐죠. 그 동안 제가 너무 적게 낸 거에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건비를 빼고 재료비만 쳐도 5천원은 되더군요. 그런데 형편이 넉넉지 않다 보니 비싼 줄 알면서도 계속 3천원만 냈어요.

폐업위기를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저 때문에 그런 게 아닌 가 하는 죄책감이 들었죠. 그 동안 밀린 밥값을 치른다고 생각하고 이사장 직을 맡게 됐습니다.”

사회적 기업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게 된 동기는?

“어떻게 하면 이 식당을 계속 운영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지금까지 적자를 보면서도 버텨올 수 있었던 건 설립자이신 보리출판사 윤구병 대표님이 적게는 월 2-3백만 원 에서 많을 때는 7-8백만 원 씩 지원을 해주셨기 때문이죠. 그런데 출판사가 어려워지면서 더 이상 기대하기가 힘들어졌어요.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죠. 우리 개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조합이란 이름아래 서로 뭉치면 큰 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사회적 협동조합은 일반 협동조합과 달리 공익사업을 40%이상 수행해야 하는 등 제약조건이 많아요.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펼쳐온 뜻을 생각한다면 사회적 협동조합이 우리가 갈 길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무엇보다 수익 창출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인데?

“ 문턱 없는 밥집의 수익구조는 일반 손님을 받는 저녁 시간대와 점심때 여유 있게 밥값을 내주신 고객 분들의 도움으로 어려운 이웃의 끼니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녁 손님이 적고 점심때도 기대보다 많은 돈이 모이지 않았어요..

많은 고객 분들이 값이 비싸다고 느끼시더군요. 저도 유기농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땐 원가가 그리 비싼지 몰랐고 그래서 저녁밥값이 비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저녁밥값도 비싼 게 아니라 적정선에도 좀 못 미치는 수준 이더군요. 그렇다고 단가를 낮추기 위해 친환경 먹거리를 포기할 순 없고. 딜레마에요.

우선 1단계로 인건비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했고 철저한 원가분석과 새로운 메뉴 개발을 추진 중입니다.”

조합원은 어떤 분 들이 참여하셨나요?

"조합비 3만원을 내시면 누구나 조합원이 되실 수 있습니다.

조합원들은 크게 직원, 생산자, 소비자, 자원봉사자, 후원자로 나뉩니다. 생산자는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과 축산농가들이죠. 자연을 살리는 농업을 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건강한 먹거리를 지켜 나가기위해선 이런 분들이 많이 나와야 하고 저희 식당이 잘 되면 그 분 들 에게 안정된 판로를 제공해드리게 되는 셈이죠. 현재 조합원 수는 110여명입니다..”

취지는 좋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네요.

문턱 없는 세상의 취지는 ‘나눔’과 ‘비움’입니다.

‘나눔’이란 뜻을 나누는 것이고 경제적 가치를 나누는 것이고 아이디어를 나누는 것이죠. ‘ 비움’이란 욕심이라든지 허망한 것들을 버리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어떤 단계나 궤도에 오르면 그때 동참하시겠다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그런 사람이였죠.

그러나 그런 좋은 여건이나 단계란 없는 것 같아요. 첫발을 내딛는 게 중요하죠.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붙들고 가는 거에요. 여유가 없고 힘들고 벅차지만 계속 끈을 놓지 않고 가다 보면 길이 열리는 걸 많이 보아왔어요.”

엄 이사장이 ‘문턱 없는 밥집’의 대외적인 대표라면 고객을 접대하고 식당을 4년 넘게 실질적으로 운영해온 분은 고영란 대표입니다. 고대표는 그간의 어려움을 뒤돌아보면서 폐업위기에 놓인 식당이 다시 재기 할 수 있었던 건 보통 시민들의 힘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고영란 문턱없는밥집 대표
“ 처음3년은 정말 신나게 일했어요. 힘든 줄도 몰랐죠. 그런데 누적된 적자에다 재단이 영업을 포기하면서 참 힘들었어요. 그러나 저를 일으켜 세운 건 식당을 찾아준 손님들의 후원이었죠.

식당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 자주 식당에 들렀던 청년이 백만 원을 쾌척 했어요.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무슨 돈이 있냐고 그랬더니다고 이럴 때 쓰려고 모아 둔 것이라 하더군요. 감동적이었어요. 그런가 하면 ‘더불어 사는 배움터길’이란 대안학교에서 조건희라는 학생이 이곳에서 한 달간 직업 체험을 했어요. 여기서 일하는 즐거움을 찾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습니다.”

적자를 메우기도 급급한데 사회적 협동조합은 40%이상 공익사업을 추진 해야 합니다.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있나요?

“ ‘문턱 없는 세상’이란 보다 큰 사회적 협동조합의 틀 안에서 ‘문턱 없는 밥집’운영과 ‘유기농 친환경 먹거리 교육사업’ , 책 출간, 그리고 취약계층 도시락 지원사업 등을 구상 중입니다. 저희는 전세보증금명목으로 서울시에서 1억 원을 지원받았어요. 물론 2년 뒤에 갚아야 해요. 나랏돈인 세금으로 우리가 다시 힘을 얻은 만큼 헛되지 않게 살림을 잘 꾸려 이익을 내야죠.

자립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솔직히 당장의 급한 불은 껐지만 수익을 내지 못하면 언제 문닫을 지 모를 상황입니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서로의 가치를 공유하고 힘을 보태다 보면 꼭 성공의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고대표에게 감동을 준 군인 박민철씨는 ”5년 전 20대 초반에 처음 이 밥집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밥 한끼 해결한다기 보다는 이런 나눔의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했다”고 했습니다. 한반도란 이 조그만 나라에서도 한편에선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나고 다른 한편에선 단무지 몇 조각 달랑 든 급식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와 공분을 사기도 합니다.

저도 처음엔 나만 잘살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보니 주변이 편해야 제가 행복하더군요.

명심보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부모가 음지에서 행하는 선행이다 라구요. 나눔으로 내 주변이 행복해지고 그래서 내가 행복한 세상을 꿈꿔봅니다.

[alert style="green"] 사회적 협동조합이란?
지역 주민들의 권익과 복리증진등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거나 취약 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비영리 협동조합이다.
5명 이상의 발기인(조합원)이 모여 관계중앙 행정기관(기획재정부 관계부처)의 인가를 받아야 설립할 수 있다.
공익 사업을 40%이상 수행해야 하며 수익배분(배당)을 할 수 없다.
잉여금이 생기면 30%이상 법정 적립금으로 적립해야 하며 남은 잉여금은 잉여적립금으로 쌓아 두어야 한다.
주로 개별 기업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여럿이 함께 모여 규모를 키우고 공동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형태로 오늘날 경제 민주화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회적 협동조합으로는 다문화가정의 일자리 창출을 돕는 커피전문점 ‘카페오시아’와 취약계층 아동에게 도시락을 제공하는 ‘행복도시락’등이 있다.
지난해 12월1일 협동조합 기본법 시행 후 올해 4월말까지 인가를 받은 사회적 협동조합은 24개이다.?[/al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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