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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회장 김상현)이 만든 복합장례공간 ‘채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벽면을 가득 채운 원형 시계가 보였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 나오는 ‘거꾸로 가는 시계’였다. 영화 속 시계 장인은 죽은 아들의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생각하며 뒤로 가는 시계를 만든다.

김상현 회장은 “추모식장은 망자를 위한 공간이다. 오롯이 망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해서 시계도 거꾸로 가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거꾸로 가는 시계. 사진=한겨레두레협동조합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조문객 접객이 중심이 된 상조 문화를 고인 추모에 집중하는 ‘작은 장례’ 문화로 바꾸고자 한다. 2010년 수십명의 조합원으로 시작해 현재는 9개 지역조합 소속 총 조합원이 3500명에 이른다. 패키지 상품과 리베이트로 폭리를 취하지 않고, 투명한 원가 공개와 직거래공동구매로 장례비용을 최소화해 기존 시장과 차별성을 뒀다. 장례지도사와 음식도우미도 조합원이 나눠맡아 상부상조의 가치를 지킨다.

김상현 한겨레두레협동조합 대표. 사진=서은수 청년기자

시장분석으로 새로운 장례모델 고안→1일 가족장·무빈소 가족장 등

‘채비’는 ‘미리 갖추어 준비한다’는 뜻으로 올해 7월 시작한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의 새로운 장례 서비스다. ‘1인 가구 증가·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라는 시장분석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꼼꼼한 조사를 위해 조합원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일본 상조 시장도 견학했다.

김 회장은 “지금처럼 많은 사람에게 부고를 돌리고 조문객을 받는 장례를 부담으로 느끼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채비’에 삼일장을 간소화한 ‘1일 가족장’과 빈소임대료·식대비용을 없앤 ‘무빈소 가족장’ 서비스를 더한 이유다.

“꼭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프리랜서처럼 1인 노동으로 ‘관계망’이 취약해 삼일장이 부담스러운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조문객을 많이 받아 상주가 예를 다했다는 만족을 얻는 문화를 없애가야죠.”

공간 '채비'에서 채비 장례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한겨레두레협동조합

김 회장은 “그렇다고 추모까지 간소하게 하는 건 아니다”라며 “정말 고인과 가까웠던 사람만 모여 생전 고인과 찍은 사진, 유품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형식은 간소하되 추모는 깊이 있는’ 장례식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이 사업 확장 시기...‘웰다잉’ 프로그램 키운다

김 회장은 “조합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확장하는 시기”라며 “조합원 3만 명 목표를 달성해 상조 시장 전반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조합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에서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사업은 ‘웰다잉 프로그램’이다. 죽음 전부터 죽음 이후까지 고인과 유족이 죽음을 잘 준비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목표다.

죽음 전을 준비하는 게 ‘채비학교’다. 예비 상주학교에서 장례 예행 연습을 하고 채비캠프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며 장례 이야기를 나눠본다. 죽음 이후를 책임지는 ‘채비 케어’도 구상 중이다. 유족들의 사후 심리를 돌보고 행정 절차나 법적인 문제도 관리해주는 프로그램이다.

김상현 한겨레두레협동조합 대표(가운데) 및 직원들. 사진=서은수 청년기자

“이미 대형 상조 회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장례문화를 바꾸는 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저소득층 장례 지원 사업을 하면서, 또 다양한 고객의 얘기를 들으면서 바뀌어야 할 필요성을 분명히 느낍니다. 다양한 사업을 통해서 ‘고인과 유족을 위한’ 다른 장례 방식도 있음을 알려야죠. 시대상에 맞는 새로운 장례문화로 사회혁신을 이루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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