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적물이 쌓여 기능을 상실한 포구, IMF 외환위기 때 부도난 놀이공원, 대부분 공실이나 창고가 돼버린 횟집과 수산시장. 경기도 시흥시 ‘월곶’은 이 모든 게 모인 동네다. 관광지로 도시개발하려 했지만 실패해 해안가 인근 상가 공실률은 35%가 넘는다. 이런 동네에 오히려 매력을 찾고 들어앉은 기업이 있다. 상업 공간 개발 및 운영 전문 회사인 ‘빌드 주식회사(이하 빌드)’다.

월곶동 인구는 약 1만6천명. 빌드가 조사한바 정주 인구 중 16%가 0~12세, 32%가 30~45세로, 가구의 약 절반이 초등학생 이하 자녀를 뒀다. 빌드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육아가구를 위한 공간과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사업을 시작한 것. 빌드는 주민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찾는 매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식당, 키즈카페, 베이커리 겸 카페, 농산물 직거래매장 등 이 지역에 부족한 서비스를 들여와 사업화했다.

지난달 28일, 월곶서 4개 사업장을 운영 중인 우영승 대표를 만났다. 그는 여기서 사업하며 얻은 이익을 지역민들에게 '돈'으로 나누는 그림을 구상 중이었다.

우영승 빌드 대표. 빌드는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의 '로컬크리에이터 활성화 지원 사업'에도 선정됐다. 사진=빌드

“한국의 ‘다운타운 프로젝트’ 꿈꾼다”

우영승 대표는 대학 시절 사회적기업 연구 동아리 ‘SEN’에서 활동하다 시흥시와 첫 연을 맺었다. 사회적기업과 대학생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하는 자리에 시흥시 공무원이 참석했는데, 우 대표의 발표를 듣고 시 정책기획단 자문위원을 제안했다. 이후 우 대표는 언더독스 창업에도 관여하고, 시흥시 지역혁신가 양성프로그램도 기획했다.

2016년 6월, 그는 알고 지내던 교수의 추천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창업 연수 프로그램에 참석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3주간의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만든 사업계획서가 현재 빌드의 모태다.

“실리콘밸리에 다녀오고 나니 갑자기 정말 창업이 하고 싶어졌어요. 그 때 월곶이 눈에 들어왔죠. 외딴 섬 같이 지역 경계도 명확하고, 특징도 뚜렷하잖아요. 마음 맞는 7명이 모였고, 이왕 하는 거 우리나라의 ‘다운타운 프로젝트’로 이뤄보자고 생각했죠.”

‘다운타운 프로젝트’는 미국 라스베가스 쇠퇴한 구도심에 활기를 불어넣은 사업이다. 2011년 미국 신발쇼핑몰 ‘자포스’의 토니 셰이 대표가 주민과 창업가,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교육시설, 공용 업무 공간, 식당 등을 세웠다. 한마디로 도시를 창업한 거다.

2016년 9월 회사를 설립한 빌드 구성원들은 먼저 십시일반 돈을 모아 4년간 공실이었던 해안가 상가공간을 임차했다. 처음이라 돈이 부족해 공사도 거의 다 직접 했다. 그렇게 차려진 첫 매장이 유러피안 다이닝 레스토랑 ‘바오스앤밥스’다. 육아 친화적인 환경을 위해 식당 내 작은 놀이방 공간도 마련했다. 이듬해 10월에는 조개구이 식당이었던 건물을 빌려 개조하고, 꽃집 겸 베이커리·카페인 ‘월곶동책한송이’를 열었다.

월곶식탁에서 진행된 요리 수업. 사진=빌드

이듬해에는 시흥시와 시민자산화 업무협약을 맺고, 장난감 없는 자기주도 놀이터 키즈카페 ‘바이아이’ 로컬푸드 직거래매장이자 공유주방 ‘월곶식탁’을 만들었다. 시가 공간을 매입하고, 빌드가 시세 반값에 빌리는 형태다. 중복 방문 인원을 포함해 현재 빌드 운영 매장의 월 평균 방문 인원은 6000~7000명이다.

매장만 운영하는 게 아니다. 매장을 거점으로 커뮤니티도 만든다. ‘월화수(월곶맘의 화려한 수요일)’가 대표적이다. 월곶 아이들의 엄마 15명이 모여 지역 밀착적인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임으로,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못 하지만 3년간 매주 운영했다. 이들에게는 빌드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멤버십’ 금액이 주어진다.

“멤버십 핵심은 ‘나를 위한 작은 사치’예요. 강요하지는 않지만 강조하는 2가지 규칙이 있어요. 엄마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삶을 누리기 위해 자녀 이야기 안 하기, 동네에 관심 가지기. 이렇게요. 처음에는 왜 이런 걸 공짜로 주냐고 의심하는 반응이었는데, 이분들이 결국 저희의 주 고객이 되고, 투자도 해주셔요. 선순환 구조가 생기는 거죠.”

우영승 대표는 "지역 주민으로부터 ‘빌드를 알고 나서 타지 친구들을 부를 곳도 생기고, 월곶동에 사는 낙이 생겼다'는 피드백을 들었다"고 말했다. 월곶을 살고 싶어지게 만드는 동네로 꾸미는 게 우 대표의 목표다. 사진=빌드

부동산을 유동자산으로...“지역 주민에 이익 돌아가야”

우 대표의 초점은 ‘시민자산화’에 맞춰져 있다. 지역 주민들이 출자해 공간을 임대하고, 함께 운영하는 형태를 뜻한다. 사업이 잘 돼서 수익이 나면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지금은 지점 형태로 있는 바오스앤밥스를 빌드에서 분사해 자회사로 편입하고, 시민주주 참여 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다. 우 대표는 “이익이 안정적으로 나고 있고, 4개 매장 중 제일 먼저 시작해 웬만한 시행착오는 겪어봐서 가장 자신 있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8월 말부터 레스토랑 단골 고객 중심으로 시민주주를 모은다. 다만 이번에는 부동산 자체가 아닌 법인 운영권을 시민자산화 하는 시도다. 소유 지분 중 일부를 월곶동 지역주민 등에게 투자받아 시민자산화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방식을 추진한다. 시민주주와 임직원의 보유 주식 비율은 30%에서 5년 후 60%로 확대할 예정이다. 기관투자자로는 IFK임팩트금융이 뒷받침한다.

빌드가 시민자산화를 추진하려는 레스토랑 바오스앤밥스는 '오션뷰'를 자랑한다. 사진=빌드

우 대표는 “시민자산화의 핵심은 충분한 배당을 하는 것”이라며 “지속가능한 시장 논리에 따르기 위해 은행이자보다 높게 4% 정도로 배당 수익률을 책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매출이 오르는 만큼 더 받을 수도 있다.

“저희의 영향은 미미하겠지만, 금융생태계를 바꾸고 싶어요. 회사는 그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해 많은 노동이 들어가는데, 부동산은 자산가의 노동이 들어가서 값이 오르는 게 아니잖아요. 공급량은 제한돼있으니 수요가 많아지면 땅값이 오르는 거죠. 저는 그 공간에서 일한 생산자와 구매한 소비자가 가치 상승분에 대한 이익을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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