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창출형 사회적기업 한식당 '소문.' 외부 벽에 사회적기업 인증서와 아토프리 레스토랑 인증서가 붙어있다. 사진=양승희 기자

“주방 요리사님들이 그래요. 조미료 없다고 광고하는 식당에 가도 사용하던데, 여기처럼 정말 안 쓰는 데는 처음 본다고요.”

광화문 빌딩 숲속 자리 잡은 ‘용비어천가.’ 건물 지하 1층에는 ‘올바른 음식’을 고집하는 한식집 ‘소문’이 7년 넘게 영업 중이다. 천연 재료만 쓰고, 건강한 음식을 만든다면서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식당도 있는데, 이곳은 직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원칙주의다.

죽순 샐러드로 입가심하고, 익숙한 불고기를 목으로 넘기고, 방아장떡 한 점을 맛봤다. 방아는 ‘배초향’이라고도 부르는데, 말려서 약초로도 쓴단다. 처음 맡는 향인데 계속 손이 갔다.

“방아장떡에 들어간 방아는 제가 집 앞마당에서 직접 키우는 토종 허브입니다. 소화를 돕는다는 특징이 있어요. 불고기는 경북 안동에서 가져온 1++ 등급 한우예요. 샐러드 안에 죽순은 전남 담양산이고요,”

밑반찬에도, 장아찌에도, 청포묵 냉국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지난달 20일 만난 조성희 대표실장은 반찬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그냥 사 온 기성품이 없다”고 설명했다. 종이 식탁보에는 ‘먹거리 원산지 지도’가 그려져 있다. 전국 각지에서 직배송한 원재료를 먹거리로 만든다. 조미료는 절대 안 쓴다. 조 대표실장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맛을 구분할 수 있다"며 “원칙을 지키는 건 내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소문'의 먹거리는 국내산 원재료와 직접 만든 양념을 사용했다. 사진=양승희 기자

식당 벽에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정홍원 전 국무총리, 박항서 감독, 엄홍길 산악인 등 익숙한 이들의 사인이 붙어 있다. 다들 ‘소문’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다. 조 대표실장은 “한식집으로는 소문이 나있다”고 자부했다. 멀리 이사 간 손님도 이곳에서 먹은 밥맛을 잊지 못 해 다시 찾아오곤 한다.

식사류로 국내산 낙지 비빔밥과 진주비빔밥이 나왔다. 아침을 굶고 먹은 점심인데도 다 먹기 힘들 만큼 양이 푸짐하다. ‘전주’가 아니라 ‘진주’다.

주 식사류로 나온 낙지 비빔밥(왼쪽)과 진주비빔밥(오른쪽). 위에 보이는 불고기는 1++ 등급 안동 한우로 만들었다. 사진=양승희 기자

그는 손님들이 많이 헷갈린다며 “전주비빔밥, 해주비빔밥과 함께 3대 국내 비빔밥으로 불린다”고 설명했다. 진주비빔밥에는 잘게 손질한 나물과 속대기(해초류) 등에 포탕을 넣고 육회를 올린다. 나물 길이가 짧은 이유는 양반들이 여유 있게 먹도록, 수저 밑으로 나물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조 대표실장은 “전통성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진주비빔밥 명인으로부터 레시피를 검증받았다”고 덧붙였다.

진주비빔밥에서 고추장만 빼면 아토피 환자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건강한 재료 덕에 소문은 2015년 ‘아토프리 레스토랑’으로도 인증 받았다. 2015년, 아토피 환자들을 위한 팀 ‘아토피스타’가 서울시와 함께 한 공익 프로젝트 ‘아토피안을 위한 서울시내 안심 메뉴 찾기’를 진행해 발굴한 17개 식당에 포함됐다.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도 찾아 온다.

식탁 한쪽 메모꽂이로 눈이 쏠린다.

“저희 소문은 오랜 준비 끝에, 2019년 12월 고용노동부의 인증을 받아 ‘사회적기업’이 되었습니다. 기존의 맛과 재료는 전부 그대로인 채, 앞으로 총 영업이익금의 2/3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게 됩니다.”

'소문'은 식당을 사회적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을정'이라는 법인을 따로 뒀다. 사진=양승희 기자

2013년 3월 처음 문을 연 ‘소문’은 올해 초 고용노동부 인가를 받고 ‘사회적기업’ 마크를 붙였다.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사업자로 전환까지 했다.

“평소에도 막연하게 사회사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종로장애인복지관에서 봉사활동도 했고요. 처음부터 이 매장에서 이익을 남겨 재테크를 하거나 부를 창출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그런데 비즈니스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 형태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거다 싶었죠.”

조 대표실장은 “사회적기업이 되면 전년도 영업이익의 2/3 이상을 사회적 목적에 재투자해야 하던데, 우리는 가능하면 90%로 늘려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법으로는 사업장 내 복지 향상 혹은 구내 취약계층대상 도시락 제공 등을 직원들과 함께 고민 중이다. 특히 종로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싶다고 전했다.

모범 사례가 되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 조 대표실장은 “사회적기업은 기부로 연명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지속가능성을 달성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경영합리화, 매출 증대로 탄탄한 음식점 사회적기업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엄홍길 산악인 등의 사인이 벽에 붙어있다. 사진=양승희 기자

“어제 집에서 30분 동안 졸여 만든 과편이예요.”

후식으로 수정과와 함께 오미자 과편이 등장했다. 과즙에 녹말이나 꿀을 넣고 졸여서 굳힌 음식으로, 달달한 양갱 같기도, 젤리 같기도 하다. 제조 과정이 까다로워 많이 만들지는 못하고, 귀한 손님께 대접한다는 설명이다. 혀 끝에 감칠맛이 돈다.

‘소문’ 이름의 한자는 ‘웃을 소(笑)’에 ‘문 문(門)’이다. 편안하고 기분도 좋은 음식점. 맛도 좋고, 대접도 잘 받고, 머문 시간 내내 유쾌해서 저절로 건강을 얻은 듯 다시 오고 싶은 밥집을 추구한다. 조성희 대표실장은 “음식을 드시러 오는 분들이 가실 때까지 웃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위생적이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원칙을 고수할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한식당 브랜드 '소문'으로 운영되는 음식점은 인천공항점을 포함해 5군데지만, 사회적 가치 창출을 위해 따로 법인을 세워 사회적기업으로 운영하는 식당은 광화문 소문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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