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선 원장은 바이소셜 캠페인이 지속가능성을 띠려면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기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진재성 인턴기자

현장 출신 여성. 1세대 사회적기업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하 진흥원)의 4대 원장으로 김인선 원장이 취임했을 때 그를 장식한 키워드다.

김 원장은 과거 사회적기업 '㈜우리가 만드는 미래'를 설립해 사회적기업가로 활동했으며, (사)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상임대표와 서울시 동부여성발전센터 대표 등을 역임했다. 이어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사회적경제전문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2018년 7월부터 진흥원 원장으로 일했다. 100대 국정과제가 된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 정책과 사회적경제 현장을 유기적으로 연계했으며, 사회적기업가 정신 확산과 사회적 가치 창출을 선도해왔다.

국내에서 민관협력 거버넌스 확산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국제상도 받았다. 세계경제포럼의 자매기구 ‘슈밥재단’이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한 사회적기업가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공공부문 사회적기업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난 23일 진흥원 본사에서 김 원장을 만나 지난 2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향후 어떤 사업에 힘을 실을지 등에 대해 들었다. 그는 취임때 말한 ‘현장과 긴밀히 소통하는 겸손한 지원기관’으로 한 발 나아갔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바이소셜 캠페인'을 통해 시민 중심의 사회적경제을 만들어 가는 데 힘을 쏟겠다고 답했다. 

다음은 김원장과 일문일답.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슈밥재단 주최 '사회적기업가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공공부문 사회적기업가'상을 받은 김인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가운데 왼쪽)과 다른 수상자들. 사진=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 취임 후 2년이 넘었다. 1세대 사회적기업가 출신 원장으로서, 정책과 현장 잇기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 인터뷰에서도 “현장, 지역, 거버넌스”를 제일 중요한 키워드로 꼽았다. 현장과 행정이 충분히 연결됐다고 생각하는지.

▶ ‘현장, 지역, 거버넌스’는 정부의 사회적경제 활성화 정책 방안 키워드이기도 하다. 민간이 주도하고, 지역이 중심이고, 중앙이 뒷받침한다는 의미다. 진흥원이 일하는 방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진흥원은 정책 당국과 현장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어 현장을 제대로 알 때 정책 실행력을 높일 수 있다. 현장과 얼마나 소통하는가가 지원사업의 효과성을 결정하는데, 이 점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기에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그 결과 실제로 ‘현장을 매우 중시하고, 현장 의견을 많이 듣는 기관’이라는 외부 피드백을 많이 듣고 있다.

지역과 거버넌스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 정책이 변한다고 같이 바뀌는 것보다, 각 지역에서 필요한 정책 사업은 지방 정부가 지역 당사자들과의 협의해 결정해야 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단위 협치 구조가 있어야 하는데, 이걸 만드는데 진흥원이 중간에서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지역 사회적경제 생태계에서는 통합지원기관·창업지원기관·성장지원센터 세 축이 활동 중이다. 예전에는 각각이 진흥원의 담당 팀과만 소통하는 구조였다면, 지금은 지역 안에서 이 세 기관이 협의하고, 당사자 조직과도 만난다.

- 그동안 사회적경제가 급성장하며 진흥원의 역할도 커지고, 부담도 늘었을 텐데. 인력 증원이 필요하지는 않은가. 코로나19라는 변수 탓에 고민도 많았을 듯하다.

▶ 일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고민한다. 할 일이 는다고 그에 비례해 사람을 뽑는 게 꼭 바람직한 것도 아니고, 정부 예산이 그만큼 많지도 않다. 중요한 건 효과적인 일의 방식이다.

물리적인 업무량이 늘어난다면 민간에서 맡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개별 기업 단위 지원에서 당사자 조직 간의 협업과 연대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개편하고 있으며, 지역 중심으로 흘러가게 노력 중이다.

공공기관은 미리 수립된 예산으로 운영되는 조직이라 상황 변화에 빠른 대처가 힘들었다. 코로나19 사태처럼 갑자기 계획이 틀어지는 일이 발생하면, 프로젝트성으로 임시 조직을 만들거나 어떤 사업에 구성원들이 역량을 집중해줘야 하는데 쉽지 않다. 현장 출신 공공기관장으로서, 필요한 때 탄력적 대응이 어렵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진흥원은 이달 사회적기업 주간(매년 7월 첫째주)을 기점으로 ‘바이소셜(Buy Social)’ 캠페인을 시작했다. 바이소셜은 2012년 영국 사회적기업협의회(Social Enterprise UK)가 공공·민간부문의 사회적기업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시작한 캠페인이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시민 인식 증가, 민간기업 투자유치, 네트워크 확대 등을 꾀한다. 현재 아일랜드·캐나다·네덜란드·러시아·태국 등지로 확산하고 있는데, 이 흐름에 한국도 참여한 것.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바이소셜 불씨를 처음 키운 건 김인선 원장이다. 그는 2018년 열린 사회적기업 월드포럼(SEWF)에서 관련 아이디어를 얻어 국내 도입을 추진했다. 진흥원은 작년 시범사업 운영, 올해 바이소셜 추진위원회 구축을 거쳐 7월 1일 사회적기업의 날에 캠페인 시작을 공식 선언했다.

- 국내에서 바이소셜 캠페인이 첫발을 뗐다. 곳곳에서 관련 행사와 활동이 이뤄지는데, 진흥원의 처음 목표와 지금 진행 중인 캠페인의 방향성이 잘 맞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 아직 초기라 구체적인 성과를 이야기하기에는 이르지만, 바이소셜 홈페이지 방문자가 7월 1일 개시한 이후 벌써 6만명에 이른다. 직원들이 많이 고생했다.

하지만 캠페인이 진흥원 활동으로 비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목적은 정부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가치소비 문화를 널리 퍼트리는 거다. 정부 프로그램이 돼버리면 지속성도, 참여 범위도 제한된다. 국내 30여개 기관이 참여하는 ‘바이소셜 추진위원회’도 구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추진위는 바이소셜 계획 수립 및 전개, 관련 제도개선, 정책 건의 등 바이소셜 캠페인 총괄 담당이자 최고 의결기구다. 각종 시민사회·당사자조직들이 이를 미션으로 여겨 시민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김인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은 정부 사회적경제 활성화 방안 발표 후 2018년 취임해 현재 임기를 1년 남기고 있다. 사진=진재성 인턴기자

- 다른 국가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바이소셜 캠페인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영국은 시민뿐 아니라 영리기업도 사회적기업 제품을 이용하자는 ‘바이소셜 기업 챌린지(Buy Social Corporate Challenge),’ 매년 가을 토요일 하루를 정해 사회적경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하는 ‘사회적 토요일(Social Saturday)’ 등 세부 프로그램을 진행하던데, 이것도 들여올 예정인지.

▶ 영국은 사회적기업협의회가 적극적인 판로지원 사업으로 캠페인을 주최하고 브랜드를 만들었다. 사회적경제기업의 시장 확대를 위해 시작해 성공했다. 지역 기반 조합의 전통과 제 3섹터가 이미 활성화돼있던 토양이 뒷받침해줬다.

한국에서 바이소셜은 시민 이해의 폭을 넓히겠다는 목적에 차별점이 있다. 이해의 폭이 커져야 구매도 늘어난다. 그래서 시민 주도성을 강조한다. 아직 사회적경제에 대한 국민 인식은 그리 높지 않다. 제품 구매 차원을 넘어 사회적경제가 지향하는 다양한 가치와 실천을 중심으로 사회변화를 이끌자는 데 있다. 메시지 전달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바이소셜에 공감한 시민이 다른 시민에게 하는 그림이다.

세부 프로그램도 정부 주도로 들여오기보다는 참여 주체가 직접 제안하는 게 맞다. 사회적경제조직이 원한다면 제품 판매 촉진을 목적으로 사회적 토요일 프로그램을 할 수도 있는 거다. 그러나 이는 단지 부분이고, 다양한 참여 그룹들이 사회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다층적인 방식으로 캠페인이 전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가치소비’라는 표현에 담긴 철학이 궁금하다. 사회적경제기업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가치소비를 할 수 있는지.

▶ 당연히 할 수 있다. 소비는 1차적으로 구매자가 필요해서 하는 건데, 필요를 충족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사회변화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하면 바이소셜, 즉 가치소비다. 써서 없애는 게 아니라, 소비와 동시에 가치를 생산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사회적경제기업 제품을 사야만 가치소비인 건 아니다. 대형마트에 가지 않고 동네 시장에서 물건을 사면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다. 카페에서 주는 일회용 컵을 대신 직접 갖고 간 텀블러를 쓰면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이런 게 다 가치소비다.

바이소셜은 의사소통 수단이기도 하다. 단순한 소비 촉진 캠페인을 넘어, 구매자들이 소비의 영향력을 깨닫고 적극적인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활용하기를 바란다. 가치를 지향하는 기업 제품을 사는 운동이 될 수도 있고, 가치를 훼손하는 기업 제품을 안 사주는 운동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치소비는 세상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 캠페인이 1회성으로 끝나지 않게 확산시킬 전략이 있다면. 국민들에게 사회적경제 개념을 알리는 것도 중요할 텐데.

▶ 가장 중요한 건 ‘전파력’이라고 생각한다. SNS를 활용하고, 가수·유튜버 등과 함께 홍보한 건 MZ세대(1980~2004년생을 일컫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5~2004년생을 뜻하는 ‘Z세대’를 합한 말)를 겨냥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SNS 등을 활용해 가장 빠르고 쉽게 주변에 전파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쉽고 친근하게 인식이 퍼지려면 이 전파력을 활용해야 한다.

이들은 또한 ‘공정세대’라고도 불리지 않나. 기존의 주류 가치와는 다른 ‘환경,’ ‘젠더,’ ‘공정’ 등의 가치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가치소비 문화를 더 쉽게 시대 코드로 확립할 수 있을 거다. 미래의 주역이 될 MZ세대가 잘 이해한다면 바이소셜이 지속가능한 시민운동이 되리라 믿는다. 하반기에 소비성향 시험 이벤트와 바이소셜 슬로건 공모전 등 참여형 이벤트도 진행하고 굿즈도 제작할 계획이다.

아직 ‘사회적경제’는 일반 국민에게 딱딱하고 어려운 개념이다. 사회적경제조직들이 국민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매개체로 바이소셜을 활용하길 바란다. 공공부문, 민간기업, 학계, 노동계 등 사회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사회적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적경제를 이야기하는 거버넌스를 만들어가도록 진흥원도 더욱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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