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낮은 기본소득으로는 사각지대 해소도, 소득보장도 난망하다. 한국 복지국가의 발전은 사회보장의 강화로 풀어내야 한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연세대 복지국가연구센터 소장)는 21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기본소득, 복지정책인가? 포퓰리즘인가?’ 토론회에서 기본소득이 복지급여에 비해 소득보장 효과, 소득재분배 효과, 소비증대 효과 등이 현격히 떨어진다며 기본소득이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신 2021년부터 시행될 한국형 실업부조제도인 국민취업지원제도 등 일반재정을 통해 문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는 기본소득의 쟁점과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정책과제를 모색하기 위해 선진복지사회연구회(회장 이정숙)와 김상훈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이 공동주최했다. 

양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속 전 국민에게 지급됐던 ‘긴급재난지원금’이 재정지출 원칙, 복지지출 원칙을 크게 벗어나 지급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난지원금이라는 건 재난이라는 위험 발생 여부와 그 크기를 따져서 지급돼야 하는데, 이번 긴급재난지원금은 무조건적으로 지급됐다”며 “이는 마치 아동수당을 아이가 없는 집에 지급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기존 사회보장급여와 기본소득은 원리 자체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기본소득은 무차별적으로 지급되지만, 사회보장 급여는 실업 등 사회적 위험에 빠졌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어려움에 처한 시민에 한정해 지급한다. 그는 “누구나 똑같이 동일 액수를 받는 기본소득이 언뜻 보면 공평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상부상조, 사회연대 정신이 담겨 있지 않다”며 “심지어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위험에 대한 보장기능도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기본소득제는 실효성이 없다고도 설명했다. 기본소득이 기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 역시 허구라는 것이 양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5200만 국민이 n분의 1로 나눠가지면 개인이 수령하는 급여는 턱없이 낮을 것”이라며 “사각지대 해소는 급여 수급 조건을 완화해 기존 복지제도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방안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복지프로그램 구성 방향에 대한 제언도 나왔다. 그는 “사회지출 증가가 곧 복지국가 발전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단순히 복지지출 총량을 늘리기보다는 복지가 필요한 때에 적재적소에 지급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향후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재정 효율화 개혁 △근로세대 소득보장의 강화 △사회적 이동성의 강화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가 ‘기본소득, 복지정책인가? 포퓰리즘인가?’ 토론회에서 '한국복지국가 발전, 사회보장의 강화로 풀어야'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기본소득제 비판 토론회에 미래통합당 의원 다수 참석

토론회에는 양금희, 추경호, 류성걸, 이종성, 박대출, 강대식 의원 등 미래통합당 인사가 참석했다. 기본소득과 관련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필요성을 언급하며 도입 검토 입장을 보였던 것과 달리 이날 토론회 참석자들은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선진복지사회연구회 이정숙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재정건전성에 빨간 불이 이미 켜진 상태에서 위험에 처해 있는 꼭 필요한 계층에게는 지원이 필요하지만 복지의 비가역성과 지속성을 감안하면 기본소득을 성급하게 시행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전했다.

김상훈 의원도 개회사에서 “기본소득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 필요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며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현금 지원이 지속가능한지에 대해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해답이 없다면 기본소득은 단지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일 것”이라고 밝혔다.

주제발표는 양재진 연세대 교수외에 홍경준 성균관대 교수가 맡았고, 토론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 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등이 진행했다.

'기본에서, 기본소득제를 생각한다. 기본소득제를 비판하는 3가지 이유'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는 홍경준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기본소득보다 산적한 문제 해결 시급

홍경준 교수는 기본소득제를 비판하는 3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홍 교수는 ”기본소득제는 전혀 새롭지 않고, 단순하며 배제적“이라며 ”한국의 소득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제보다는 임금체계 개편, 근로기준법의 전면적용 등 노동시장 공정성 확보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기본소득 재원 조달방안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공유부(Common Wealth) 소유권에 대한 문제도 제기했다. 최근 기본소득론자들은 토지와 환경이 사회구성원 모두의 소유물이므로 이로부터 나오는 수익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배분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홍 교수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환경이나 정보가 공유부라는 점을 인정한다 해도, 그 공유에 대한 권리를 특정 국민국가의 구성원으로만 제한하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생활보장체계는 다양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결합해 작동하며 저마다 다른 기대와 역할을 가진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네트워크“라며 ”반면 기본소득제는 너무 단순하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비판의견도 제시했다.

'기본소득, 복지정책인가? 포퓰리즘인가?' 토론회 토론자들. 신성식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가 토론하고 있다.

기본소득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주목해야

기본소득에 담긴 시대정신과 기대를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들도 나왔다.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기존복지체계가 문제가 없다면 기본소득 논의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기본소득을 통해 드러난 시대의 고발과 열망에는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기본소득 논의가 커진 이번이 복지체계 혁신과 도약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자신을 기본소득 비판적 지지자라고 밝힌 윤홍식 교수 또한 ”기본소득이 한국 사회에서 설득력 있는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권력자원, 생산체제 등과 같은 풀어야할 과제에 대한 답을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면서도 ”기본소득이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을 통해 풀 수 있는지 아니면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야하는지 중요한 질문 던져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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