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장애인 화장실 표기가 잘 돼 있어 굉장히 좋네요! 화장실을 찾아 헤매는 경우가 많거든요.”

휠체어 이용자가 야외에서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장애인 화장실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화장실이 2층에만 있어도 이용에 불편을 겪기 때문이다. 

이뿐 만이 아니다. 어렵게 장애인 화장실을 찾아도 청소도구를 쌓아놓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협동조합 무의와 세상파일이 만든 배리어프리 지도 '서울의 궁 어디까지 가봤니?' 덕수궁 주변지도./사진제공=세상파일

장애인 화장실 위치 등 휠체어로 접근 가능한 정보들을 담고 있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 지도 ‘서울의 궁 어디까지 가봤니?’ 체험 행사가 지난 6월 27일과 28일 양일에 걸쳐 열렸다. 

‘서울의 궁 어디까지 가봤니?’ 지도(이하 궁지도)는 장애인 이동권 증진 콘텐츠를 제작하는 ‘협동조합 무의’가 사회문제 해결 플랫폼 ‘세상파일’의 지원을 받아 작년 겨울 완성됐다. 서울 6개 궁과 그 주변을 탐사해 △궁까지 휠체어로 가는 길 △궁 내부 이동 경로 △주변 휠체어 접근 가능 맛집, 장애인 화장실, 볼거리 등 정보를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했다. 

휠체어 이용자와 동행위한 궁지도

궁지도는 ‘동행’을 위해 제작됐다. 휠체어를 타는 딸 유지민 양을 둔 무의 홍윤희 이사장(47)은 딸이 학교에서 가는 소풍을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됐다. 휠체어를 탄채 친구들과 함께 다니기 어려워서다. 홍 이사장은 “휠체어 이용자도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하고, 이용 가능한 편의시설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면 휠체어 이용 아동들이 소외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배리어프리 지도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6월 27일 오전 10시, 광화문역에 모인 휠체어를 이용하는 6명의 초중고학생과 가족, 친구들은 각자 지도를 보며 목적지로 향했다. 기자는 시청역 2번 출구부터 덕수궁 부근을 여행하는 덕수궁팀과 동행했다.

덕수궁 지도 출발지인 시청역 2번 출구는 휠체어 이용자가 사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이다. 무의의 또 다른 지도인 ‘서울지하철 교통약자 환승지도’를 이용하면 목표 여행지에서 가까운 지하철역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궁지도는 이처럼 다른 배리어프리 지도와의 연계도 가능하다.

6월 27일, 덕수궁팀이 출발 전 이동경로를 논의하고 있다.

덕수궁팀은 휠체어 이용자 김강민 학생(19)과 조정혁 학생(14), 동생 조윤지(11), 어머니 정혜란 씨(42)로 구성됐다. 이들과 무의 활동가는 출발 전 궁지도에 표시된 ‘추천 이동경로’와 ‘불편한 길’을 위주로 검토했다. 이동 경로가 정해지자 조정혁 학생은 무더운 날씨를 이기기 위해 목에 블루투스 선풍기를 두르고, 김강민 학생은 가슴에 카메라를 다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광화문역에서 시청역까지 이동하는 길. ‘덕수궁팀’의 맏형 김강민 학생은 “광화문역 부근은 휠체어 이용자가 이용하기 쉽지 않다”며 입을 열었다. 그 이유를 물었다. 

그는 “광화문역 부근은 계단을 올라가야 이용할 수 있는 식당이 많은데, 경사로는 거의 없다”며 “심지어 1층에 있는 건물들도 높은 턱이 있어 이용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휠체어 이용자가 이용하기 쉽지 않은 곳뿐이었다. 1층에 있는 식당들을 안내하는 궁지도가 얼마나 유용한지 알게 됐다.

휠체어 이용자에게 정비된 길이 필요한 이유

강민군과 정혁군은 뇌병변 학생 축구모임의 일원으로, 전동휠체어 축구를 자주 즐긴다고 한다. 정혁군의 어머니 정혜란씨는 “스포츠를 눈으로 관람할 뿐, 직접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며 “아이가 축구를 하며 재밌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행복해진다”고 전했다. 

시청역 2번 출구에 도착해 코로나19로 휴관 중인 덕수궁은 제외하고 주변 길을 돌아보기로 했다. 덕수궁 돌담길은 궁지도에서 수월하게 지날 수 있었다. 다음 장소는 ‘서울시립미술관’이었다. 올라가는 길이 계단 대신 경사로로 잘 조성돼 있었다. 좌측 경사로는 휠체어 및 유모차가 편히 오갈 수 있도록 노면이 매끄러웠다. 이날은 비교를 위해 어머니와 동행하는 수동휠체어를 탄 정혁군은 노면이 매끄러운 곳으로, 전동휠체어를 탄 강민군은 울퉁불퉁한 길로 올라갔다.

서로 다른 길을 올라가고 있는 조정혁, 김강민 학생(오른쪽).

정혁군의 휠체어는 잠잠한 반면, 강민군의 휠체어는 불안하게 흔들렸다.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 휠체어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기자가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 강민군 전동휠체어 뒤에 있는 ‘동승자 발판’에 올라탔다. 심하게 흔들리자, 저절로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휠체어 이용자에게 노면이 정비된 길이 왜 중요한지 몸소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혜란씨는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는 온몸에 힘이 들어가 경직되고, 피로감을 더 크게 느낀다”며 “몸이 경직된 상태에서 넘어질 경우 더 크게 다칠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궁지도에는 단순히 경사로의 존재 유무만 표시돼 있지 않다. 경사로가 휠체어 이용자가 오르락내리락하기 적합한지, 다소 주의를 필요로 하는지 구분돼있다. 강민군과 정혁군은 “경사로라고 다 같은 경사로가 아니다. 궁지도에는 그런 디테일이 살아있어 마음에 든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넘어 전국으로... 배리어프리 지도 앱 개발 준비 중

탐색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위해 ‘라운드엔드’라는 빵집을 찾았다. 이 곳 역시 궁지도에 ‘1층, 카페 시설도 있는 빵집’이라고 표기돼있는 주요 음식점이다. 턱이 없고 1층에 위치해 휠체어가 드나들기 수월했다. 

덕수궁팀이 돌담길 앞을 지나고 있다.

휠체어 이용 학생 궁지도에 만족한다는 의견 일색이었다. 함께 어울려 다니기 좋다는 의견부터, 장애인 화장실 및 편의시설의 정확한 위치 표기에 대한 긍정의견, 경사로 경사도 설명이 마음에 든다는 감상평이 나왔다.

궁지도와 함께 덕수궁을 누빈 김강민군은 "궁지도는 휠체어 이용자에게 유용한 정보가 가득 담겨있어 실용적"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지도를 알게 됐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덕수궁팀을 비롯한 8개 팀이 직접 방문해 점검한 궁지도는 우선 서울시 400여개 초·중학교에 배부됐다. 또한 무의와 세상파일 홈페이지에서도 궁지도를 볼 수 있어 체험행사 후 평가처럼 앞으로 휠체어 이용자 이동권 향상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의 나정민 연구원은 “이번 활동을 통해 휠체어 이용자들이 배리어프리 지도를 통해 외출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확인했다”며 “향후 더 많은 배리어프리 정보 제작 과정을 통해 이런 심리적 효과도 측정하려 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6월 27일, ‘서울의 궁 어디까지 가봤니?’ 체험 행사를 위해 모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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