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얼굴들./사진=yes24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다. 만약 시체의 얼굴이 그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면 죄의식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것도 같았다. 천천히 시체를 뒤집어 얼굴을 확인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어린 소년이었다. 열다섯은 됐을까? 온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일본어가 들렸다.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

황모과 작가의 밤의 얼굴들은 SF 단편 소설집이다.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 ‘당신의 기억은 유령’, ‘탱크맨’, ‘니시와게다역B층’, ‘투명러너’, ‘모멘트아케이드’ 총 6편의 단편으로 이뤄졌다.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와 ‘니시와게다역B층’은 일본에서 일어났던 한국인의 역사를 드러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잊혀진 아픈 기억을 끄집어낸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작가가 일본에 거주하면서 수집한 자료와 취재원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기본 틀을 구성했다. 

두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은 잊히기 마련이다. 시간은 망각을 일으키는데 특화된 능력을 가졌다. 작가는 미래 기술을 통해 이 망각을 극복하고 역사를 우리 앞으로 가져온다. 과거에 벌어진 폭력과 죽음을 생생히 재연한다. 

‘탱크’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배경은 다르지만 잊힌 기억을 상기시킨다. 나아가 발전된 기술로도 굴복시킬 수 없는 개인의 의지를 실험 대상으로 전락한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잘 담아내고 있다. 탱크라는 재래식 무기도 미래의 기술도 개인의 의지를 꺽는데는 실패하고 만다.

‘당신의 기억은 유령’과 ‘모멘트 아케이드’는 공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세계를 그린다. 전자는 타인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기술이, 후자는 타인의 기억을 체험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세계다. 이를 통해 주인공들은 타인이 아픔을 몸으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주인공들은 타인의 아픔과 경험에 공감하게 된다.  

공감은 사회로부터 외면받아온 이들이 사회와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열쇠다. 작가는 그 열쇠를 기술로 대신하고, 자연스럽게 우리가 외면해온 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또한 우리가 공감의 상실로 소외시켰던 이들이 없었는지 돌아도록 돕는다.

밤의 얼굴들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많은 SF소설은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통해 환상을 제공한다. 독자는 작품안에서 그 환상을 맘껏 즐긴다. 반면 이 책은 환상 속에서도 자꾸 현실을 살펴보게 만들고, 작품에서 빠져나온 독자가 과거를 기억하게 만든다. 더불어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위로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밤의 얼굴들=황모과 지음. 허블 펴냄. 212쪽/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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