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 워크숍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전동드릴 수업을 하면 공간의 온도가 올라가고, 수강생의 콧김까지 느껴지죠. 그럴 때면 저도 덩달아 흥분됩니다.

이현숙(이하 인다) 여기공 협동조합(이하 여기공) 대표의 말이다. 그는 여기공 활동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공구 워크숍’의 전동드릴 교육을 꼽았다. 인다는 전동드릴 수업을 시작하기 전 전동드릴 구매는 신중해야 한다는 말을 항상 한다. 수강생이 처음 전동드릴을 접하면 ‘손맛’에 빠져 충동구매 유혹에 빠지곤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전동드릴 수업에 대한 교육생의 반응이 뜨겁다. 

여기공은 여성과 기술을 연결하는 장을 만드는 곳이다. 여성이 교육을 통해 기술을 익히고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공의 공동 창립자인 인다, 자베, 세모(여기공은 수평적 관계확립을 위해 이름과 직책 대신 닉네임을 사용한다.)는 대안 학교인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적정기술을 배우다 처음 만났다. 이들은 기술 교육이 여성이 기술을 배울 기회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고 느꼈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으니 여성은 기술에서 점점 더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실제 기술 교육을 직접 들어보니, 여성이라고 기술을 배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별다른 설명 없이 일단 공구를 사용해보고 기술을 익히는 방식이나, 여성의 몸에 맞지 않는 공구, 실습 기회를 박탈하는 과도한 도움 등은 여성이 기술을 익히는 데 걸림돌이 됐다. 이런 걸림돌만 제거된다면 여성도 기술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술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고민도 함께였다. 당시 세 명의 창립자는 여성으로서 자립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상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일이 자립에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봤다. 인다는 “기술은 엄청난 용기를 불러일으켜 준다”며 “고도의 기술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활용 가능한 기술을 배우면 자립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공 협동조합의 작업실. 인다는 '플랫폼 여기' 때부터 지금까지 여기공 협동조합과 함께했다.

여기공 협동조합?

이후 인다, 자베, 세모는 여성에게 기술교육을 제공하는 여기공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다만 시작은 여기공 협동조합이 아니었다. 이름도 형태도 달랐다. 2019년 11월 법인화 전까지는 ‘플랫폼 여기’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플랫폼이라는 단어에는 사람과 사람은 연결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그런데 사회에서 플랫폼 비즈니스 등의 단어를 사용하면서 ‘플랫폼’이라는 단어에 담고 싶었던 의미가 퇴색 됐다고 느꼈다. 결국 플랫폼 대신 ‘공’이라는 글자를 찾았다. ‘공’에는 ‘공간(空)’ ‘공유(共)’ ‘공공(公)’ ‘장인(工)’의 의미가 담겼다. ‘여기’는 여성기술자의 약자이면서, 지금 이 공간 ‘여기’(here)라는 의미가 있다. 

회사의 형태는 협동조합 형태를 선택했다. 협동조합의 의사결정 구조인 1인 1표제를 통해 민주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협동조합 형태를 취함으로써 이익추구에만 몰두해 본래의 설립 목적을 잊는 일을 방지했다. 인다는 이런 회사 형태가 지금까지 ▲지역에 거점을 만들고 지역에 기여하겠다 ▲조합원뿐 아니라 모든 여성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겠다 ▲교육을 할 때 제공하는 간식은 지역에서 나는 제철 음식을 구매해 충당하겠다 ▲항상 주변 사람들을 고려하겠다 등 본래 다짐을 지키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술교육 넘어 비빌 언덕 되길 

여기공은 활동은 기술 교육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여기공이 주로 하는 일은 기술 교육이지만, 기술 교육만 하는 건 아니다. 여기공은 여성 기술자들의 네트워킹을 돕고, 기술과 젠더를 연구하고, 여성과 기술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여성’과 ‘기술’을 키워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작년에는 현재 일하고 있는 여성 기술인의 삶을 드러내고자 ‘그리고’라는 잡지를 만들었다. 잡지에는 현직 여성기술인 7인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은 일을 마치고도 여성 샤워실이 없어 작업복을 입은 채 그대로 퇴근하고, 탈의실이 없어 작업복을 입은 채 출근해야 했다. 성별을 이유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여기공은 이들의 모습을 알림으로써 여성기술인을 사회·사람과 연결되도록 도왔다. 비슷한 시기 여성, 기술, 생태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젠더 스쿨을 열기도 했다. 전문가를 초청해 기술 안에서의 젠더갈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봤다.

인다는 여기공이 단순 여성 기술 교육 단체를 넘어 안식처가 되길 바란다.

“여기공이 저를 포함한 5명의 조합원은 물론이고 여성, 기술자들에게도 비빌 언덕이 되길 바란다. 사회적약자가 살기 좋은 사회면 모든 이가 살기 좋은 사회라고 믿는다. 우리가 잘 된다면,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오고 있는 게 아닐까?”

요즘 여기공 협동조합에서는 집 고치는 여성들 교육이 한창이다./사진=여기공 협동조합

경력은 짧아도 성과는 풍성

여기공은 가진 꿈에 비해 나아갈 길이 멀다. 사업 경력도 7개월로 길지 않고, 매출도 많지 않다. 인다의 말에 따르면 현재 매출은 손해가 나지 않는 수준이다. 인다를 제외한 4명은 본업과 여기공의 일을 병행하며 지내고 있다. 다만 성장 속도는 빠르다. 여기공이 가진 뜻에 공감한 이들이 많아서인지 여기공의 활동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지금까지 진행한 단기 프로젝트는 성황리에 진행됐다. 특히 최근 시작한 첫 장기 프로젝트 ‘집 고치는 여성들’은 지원자가 많아 추가로 강의를 개설했고, 이마저도 정원이 모두 찼다. 

정부, 민간, 지역과 연계한 사업 확장도 진행 중이다. 지역 자원을 활용한 사업을 지원하는 ‘서울시 넥스트로컬’에 선정돼 경북 의성으로 사업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여기공은 이곳에 성별, 장애의 유무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기술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를 만들고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는 지역 자원을 최대한 활용한다. 동시에 서울에서도 기술 교육 사업을 병행한다. 또한, 최근에는 ‘2020년 청년 지역교류 지원사업’을 통해 옥천 지역의 사회적기업 ‘고래실’과 함께 옥천 청년을 대상으로 직조교육을 하고 청년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여성, 기술 교육으로 두려움을 깨다

여기공의 사업이 빠른 확장세를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수업의 질이 높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기술 교육에서 낙오된 수강생이 없었다. 실습에 앞서 정확한 설명을 통해 사용법을 익히고, 충분한 실습 기회를 제공하자 수강생 모두가 기술을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었다. 

“여성들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발생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기술을 습득, 활용하지 못 했을 뿐이다. 수강생들 중 대부분이 ‘누가 나한테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줬더라면 더 빨리 기술을 배울 수 있었을 텐데’하고 아쉬움을 표한다. 기회가 없어 기술을 배우지 못 했다는 이야기다”

여기공은 여성이 기술 교육에 갖는 두려움을 깨기 위해 용접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비교적 난이도가 있는 용접을 배움으로써 ‘용접도 해냈는데 다른 기술도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자 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20대 초반의 한 교육생은 수업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불을 무서워해 불꽃놀이도 보지 못했지만, 용접은 기가막히게 해냈다. 1000도가 넘는 불꽃 앞에서 안전하게 교육을 마치고 불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냈다. 이후 ‘용접도 하는데 못할 게 없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 교육생의 전반적인 만족도도 높았다.

'용접의 기술-시작하는 용기'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생들이 용접 기술을 배우고 있다. 사진=여기공 협동조합

앞으로도 무모하고 아름답게

인다는 여기공의 앞으로 계획을 묻자 사회적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경제 분야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가져올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동시에 직접 당사자가 되어 긍정적인 기여를 해보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 인다는 “올해 안으로 예비사회적기업이 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며 “사회적경제를 통해 지역과 이익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우리도, 사회적경제도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더 재밌다”는 말을 덧붙였다.

‘무모하고 아름답게’ 여기공이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라고 한다. 불을 무서워하는 이에게 용접 기술을 가르치고, 사업화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250km 떨어진 지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실패할지도 모르는 사회적경제에 도전하는 여기공은 그 말이 잘 어울린다. 여기공은 무모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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