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NS에서 미국에 있는 친구들이 공유한 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한 30대 남성이 40대 남성과 다투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다가 10대 청소년에게 울부짖듯 외치는 그런 영상이다. 궁금한 마음에 내용을 들어보다가 크게 마음이 먹먹해졌다.

영상 속 30대 남성은 커티스 헤이스 주니어(Curtis Hayes Jr.)라는 미국의 활동가이다. 지금 미국에서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에 대한 시위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상황을 담고 있었다. 커티스 헤이스는 이 영상에서 말 그대로 울분을 토한다. 이렇게 시위와 항거를 정말 얼마나 오래 해왔느냐고, 흑인 대통령이 나와서 괜찮은 줄 알았다고,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이 문제는 남아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인 10대 청소년에게 “더 나은 길을 모색해야해(Come up with a better way)”라고 외친다.

사진출처=https://www.youtube.com/watch?v=vvuxr5xlBEs

나는 먹먹함과 함께 이 말에 완전히 동의한다. 우리는 지금 더 나은 길을 모색해야한다. 코로나19는 그 자체로도 어려움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들을 드러나게 했다. 본래 사슬이 끊어질 때는 약한 고리가 끊어지는 법이다. 특히 미국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의 다수가 형편이 어려운 지역에 사는 유색인종이 아니던가. 또 많은 전문가들은 이 코로나19 자체는 오히려 견딜 수 있는 어려움이고 오히려 그 뒤에 오는 사회적 불안감과 경제적 파급, 나아가 이미 한복판에 와 있는 전지구적 기후위기는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고 경고한다.

어떤 상황이 닥치면 크게 걱정하였다가도 ‘그냥 언젠가 되겠지’, ‘어떻게 해결되지 않겠어’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네 일상이다. 분노와 감동은 하지만 여전히 마음만 움직이고 몸과 돈과 삶은 잘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SNS에서 보이는 무너져가는 빙하 사진에 슬퍼요 버튼을 누르고 댓글도 달아보지만 내 삶에서 당장의 편함을 추구하거나 위생 때문에 결국 일회용품을 쓰게 되는 삶이다. 물론 나아가 이보다는 좀 더 역동적으로 시위도 하고 기부도 하고 봉사도 하면서 문제에 참여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기존에 해결을 제공하지 못했던 방법들, 그리고 변화된 세상의 문제에 적합하지 못하는 해결책을 가지고 열심을 다하는 것은 더 안타깝지 않은가. 만약 이런 일들이 자원의 문제라면 2020년에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다른 관점에서 시민의 의식수준을 문제라고 한다면 2015년 바닷가에 떠내려왔던 세 살배기 쿠르디 이후 지금도 시리아 난민의 문제는 왜 여전히 우리의 슬픔으로 남아 있을까. 도대체 언제쯤 우리는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되는가. 더 편하고 더 빠르고 더 풍부한 것 말고 덜 고통스럽고 덜 두려우며 덜 슬픈 그런 사회 말이다.

사회적 경제는 이 사회에서 새로운 질문과 답을 던지는 존재이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명언 중에 지금 상황에 적절한 것이 있다. “미친 짓이란, 매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Insanity: doing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and expecting different results.)”

사회적 경제는 새로운 방법을 한번 문제 해결에 도입해보자고 제안하는 이들이다. 아직 여물지 못했을 수 있고, 충분치 않을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희망을 추구하는 곳이다. 커티스의 외침과 같이 우리는 더 나은 길을 모색해야할 때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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