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민을 위한 심리상담을 진행하는 해든마음돌봄사회적협동조합을 찾아 강진아 이사장, 지현숙 이사, 이선희 사무국장(왼쪽부터)을 만났다./사진=노산들 인턴기자

“긴급 재난문자가 올 때마다 마음이 덜컥 불안해져요.”
“학교에 못 가는 아이와 종일 집에만 있으니 자주 싸워요.”
“코로나 때문에 외출이 무섭고 밖에 못 나가니 우울해요.”

코로나19는 사회?경제적 타격뿐만 아니라 사람들 마음 속 깊은 곳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팬데믹(전염병 세계적 유행)의 장기화로 피로감과 우울감이 쌓이면서 정신 건강에도 빨간등이 켜졌다.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더해진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생겼을 만큼, 심리 안정과 회복의 필요성도 커진 상황이다.

정부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중심으로 국민 정서 회복에 나선 가운데, 사회적경제 영역에서도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돌보기 위해 손을 걷고 나섰다. 서울시 강북구와 경기도 남양주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해든마음돌봄사회적협동조합(이하 해든)’은 지난 4월부터 코로나19로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지역주민을 위해 무료 전화상담을 시작했다.

주민 대상 자발적 봉사 “건강한 지역사회 위한 활동”

강진아 이사장(오른쪽)과 지현숙 이사는 "코로나19로 다같이 어려운 시기에 해든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힘을 더해보자는 취지로 이사진에서 상담 봉사를 결정해 기쁜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사진=노산들 인턴기자

해든의 코로나19 전화상담은 평일 화?수?목 오전 10시~오후 2시, 40분 이내 단회기로 오는 6월 말까지 이어진다. 해든의 상담사 9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요일을 맡아 돌아가면서 전화상담을 진행한다. ‘재난문자가 올 때 불안해진다’ ‘아이 셋과 집에 있으니 싸움이 늘었다’ ‘외출이 두렵고 우울하다’는 토로는 실제 전화를 걸어온 주민들의 호소였다.

강진아 이사장은 “해든은 지역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주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문턱 낮은 상담을 제공하기 위해 시작한 협동조합”이라며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상담’을 하기로 조합원들과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해든 조합원들은 각자 마스크 2개씩을 내놓고 격려 문구를 적은 엽서를 담아 강북구청과 남양주시청에 기부하기도 했다.

“사실 전화상담 한 번으로 심리적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그 순간 ‘김 빼는 역할’은 해줄 수 있죠. 비유하자면 지금 막 냄비가 끓고 있는데, 한 김을 빼주는 거예요. 냄비가 넘쳐버리면 흘러나온 걸 닦아내야 하고, 에너지원인 가스불이 꺼져버릴 수도 있잖아요. 상담을 통해 보글보글 끓거나 따뜻함을 유지하는 정도의 안정성을 가지도록 돕는 겁니다.”

전공자로 꾸려진 협동조합 “누구나 평등한 상담 지향”

해든마음돌봄사회적협동조합은 도움이 필요한 지역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문턱 낮은 심리상담을 제공하기 위해 전공자들이 의기투합해 운영한다./사진제공=해든마음돌봄사협

지난 2015년 설립된 해든은 상담이 가능한 조합원 등 48명으로 구성됐다. 대학교에서 학사 이상 상담을 전공했거나 수련과정을 거쳐 2년 이상 임상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활동한다. 경제적?시간적 비용이 드는 상담은 주로 부유층의 전유물로 인식돼왔지만, 해든에서는 심리지원이 필요한 사람 누구나 평등하게 상담받을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해든이 활동하는 강북구, 남양주시를 비롯해 서울시, 여성가족부 등에서 시행한 다양한 심리 관련 공모사업을 맡아 수행해왔다. 법원?교육청과 협업해 아동학대, 학교폭력, 이혼가정 등을 위한 상담을 제공하고, 유가족 트라우마 상담 등 애도를 위한 심리지원에도 참여하고 있다. 특히 의정부법원에서 제작하는 ‘입양가정을 위한 가이드라인’ 연구와 제작을 맡아 권위적 방식이 아닌, 당사자 입장에서 필요한 상담 모델을 개발 중이다.

이외에도 핵심 사업인 ‘청년 心터’ ‘엄마 心터’ ‘마을 心터’ 등을 통해 비정규직 청년이나 육아하는 엄마,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노인 등 생애주기나 연령대별로 맞춤형 마음돌봄을 진행 중이다. 상담 비용도 평일 개인 기준 1회당 5만원으로 매우 저렴한 편인데, 지역주민이나 취약계층의 경우 상담료를 더 할인해준다. 

‘청년 心터’ ‘엄마 心터’ ‘마을 心터’ 등 고유한 프로그램을 통해 심리 상담이 필요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소통한다./사진제공=해든마음돌봄사협

강 이사장은 “한 나무가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숲이 건강해야 하듯, 지역사회가 건강해야 개개인도 잘살 수 있다고 믿는다”며 “해든이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이유 역시 나 혼자 잘 살기 위함이 아닌, 지역을 비롯한 우리 사회 전체가 더 건강해지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해든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상담 영역도 넓어지는 중이다. 심리지원이 필요하지만 소외된 대상자에게 직접 찾아가는 기회가 늘고 있다. 예를 들어 감정노동자 심리상담을 할 때 콜센터 직원뿐만 아니라 시장 상인까지 포함하는 식이다. 주민센터, 복지관 등과 컨소시엄을 이뤄 ‘저장강박증(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저장해두는 증상)’ 주민을 찾아가 상담한 사례도 대표적이다.

지현숙 이사는 “주민센터에서 저장강박증 주민에 대한 민원을 받고 물건을 치웠지만, 몇 개월 만에 다시 쌓였다”며 “복지관에서 심리상담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해든 상담사가 찾아갔다. ‘물건이 아닌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마음을 돌봐주고, 물건에 대한 집착이 아닌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니 훨씬 효과적이었다”고 이야기했다.

“코로나 블루 겪고 있다면, 자기만의 소확행 찾아보세요”

최근 코로나19로 대면 상담이 중단되면서 해든도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대면 서비스가 늘면서 화상 상담 병행을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지만, 면대면 상담이 최선인 만큼 조심스러운 측면도 있다. 강 이사장은 “화상이나 전화, 온라인 상담의 장점도 있지만, 내담자의 분위기나 상태, 태도 등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워 제한적인 부분이 있다”면서도 “코로나 상황이 하루아침에 나아지기 어렵다면, 환경에 맞게 방법을 바꿔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장 ‘코로나 블루’로 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소확행 찾기’라는 실천법을 제안했다. 강 이사장은 “코로나19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엔 충격을 받아 화가 났다가 체념하고 우울로 넘어가기도 한다”며 “이럴 때일수록 ‘자기만의 만족’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라며 “맛있는 커피를 마시거나 한밤중 달빛 산책을 하는 등 이번 기회에 내가 언제 어디서 만족하고 행복해하는지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 이사 역시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자기만족이란 어떤 역할로서만 가능했는데 사회적 통념이나 보편적 기준 안에서의 만족이 아닌, 내 마음 속에서 꿈틀거리는 진짜 목소리를 듣는 게 핵심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더욱이 그는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보편화한 만큼, ‘침범’이 지나친 인간관계에서도 적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강 이사장은 "해든이 예비사회적기업 2년차인데, 취약계층 상담을 통한 사회 환원이나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통한 협업 등을 더 확대해나가고 싶다"면서 "심리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많아져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사진=노산들 인턴기자

6년차를 맞이한 해든은 코로나19로 면대면 상담에 잠시 쉼표를 찍은 것을 계기로, 조합원들과 함께 향후 방향성을 재탐색 중이다. 사업을 더 확대할지, 조합원 간의 관계성에 집중할지, 둘 사이 균형을 어떻게 찾을지 등을 6~7월 비상대책회의를 통해 결정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강 이사장은 앞으로 해든의 계획과 목표를 밝혔다.

“비상(非常)이 아니라 비상(飛上)을 위한 대책회의를 해보려고 해요. 위기 상황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무너지고 추락하는 지점에서 언제나 새로운 출발이 이뤄지잖아요. 해든 역시 한 김을 빼내고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새롭게 날아오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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