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진료를 정기적으로 나가는 댁으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져서 15년째 와상 상태로 계시던 분인데, 최근 당뇨가 생겨 혈당 조절에 신경쓰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한참 환자분의 상태에 대해 보호자분께 얘기를 듣고, 설명과 교육을 하고, 처방전도 발행하고 다시 방문 진료를 나갈 날짜까지 잡았습니다.

“어머니 상태는 좀 어떠세요? 공복혈당과 식후혈당도 좀 알려주세요.”
“배에 가스가 너무 많이 차시는 것 같아서, 콧줄로 식사 드리는 간격을 1시간 정도 넓혀봤어요. 그랬더니 좀 더 소화를 잘 시키시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식사 들어가고 나서 2시간 지나서 혈당은 170 정도 나오고요, 공복혈당은 요 며칠 안 재봐서 모르겠어요. 의식 상태는 비슷비슷하세요.”
“식후 2시간 혈당이 170~180 정도면 당뇨약은 더 올리지 않을게요. 의식이 없고 와상 상태이신 분들을 혈당 조절을 타이트하게 하면 오히려 더 위험하실 수 있거든요. 의식이 없는데 저혈당이 되었을 때 빨리 알아차리지 못해서 뇌손상이 심해질 수도 있고요. 그리고 이제는 일주일에 두 번만 혈당 체크하면 될 것 같아요. 콧줄로 영양 공급 중이라, 매일매일이 크게 다르지는 않으시니, 가능하면 혈당 체크한다고 주사바늘 찌르는 것도 횟수를 좀 줄이지요.”
“네, 안 그래도 혈당 체크 횟수 줄이자고 원장님께 얘기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외래 진료 보시는 시간인데, 이렇게 전화가 길어져서 죄송해서 어쩌지요?”
“괜찮습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전화진료가 잠시 허용되어서, 지금 이렇게 전화하고 있는 것도 진료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아, 다행이예요. 그럼 이제 좀 마음 편하게 전화드릴 수 있겠네요.”
“하하하, 그런가요? 그럼 다음 방문 일정은….”

최근 코로나로 인해 보건복지부에서 전화 진료를 일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코로나 감염이 두려워 환자들이 의료기관에 와야 하는 타이밍을 놓칠까봐, 의료 접근성이 떨어질까봐 전화로라도 진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지요. 제가 일하는 살림의원에서도 초진이 아닌 재진 환자들, 살림의원에서 진료받았던 기록이 있는 환자들, 특히 고혈압·당뇨·고지혈증·천식 등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 대해서는 주치의와의 전화를 통해 상담과 처방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화통화를 해보고 지금 증상이 전화만으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증상일 경우, 방문하여 진료를 받으시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국면에서 비대면 산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원격진료 얘기가 정치권으로부터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은 의료영리화(의료민영화)와 원격진료에는 분명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분들이 정부에서 얘기하는 ‘원격진료’와 지금 살림의원에서 이미 하고 있는 ‘전화진료’가 무슨 차이가 있는가 궁금해 하시더라고요. 이미 살림에서도 전화진료를 하고 있는데, 원격진료는 왜 그렇게 반대하느냐고요.

주치의 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는 나라들에서 ‘전화진료’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치의의 역할 중 하나로 정착되어 있지요. 지역 주민들은 갑자기 아프거나 어떤 증상이 생겼을 때, 이런 증상으로 병원에 가야 하는지 아니면 좀 더 기다려봐도 될지 궁금해할 때, 이럴 때 119에 전화해서 문의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진료받던 주치의 의료기관에 연락할 수 있습니다. 치료나 처방의 부작용이 의심될 때도, 주치의 의료기관에 연락할 수 있습니다. 

즉, 주치의 제도에서의 ‘전화진료’는 주치의-주민(환자) 관계와 연결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실제 지금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 같은 원격진료 정책에서처럼 '지역성을 더 약화시켜 대형병원 쏠림을 강화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입니다. 주치의진료냐 원격진료냐 하는 문제는 어떤 기계를 사용하느냐, 어떤 방법을 사용하느냐, 어떤 IOT 기술을 사용하느냐, 어떤 플랫폼을 사용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치의와 지역주민의 관계를 '강화'시키는가 '약화'시키는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합니다.

저는 주치의로서 방문 진료와 함께 전화도 정말 많이 활용합니다. 와상 환자분들의 상태 변화에 따라, 매번 방문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적절한 모니터링과 질환 관리를 위해서 씁니다. 주치의 제도에서 전화진료는 주치의와 환자 사이의 신뢰 관계를 더 강화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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