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점에서는 빨간색 무늬가 있는 플라스틱 받침대에 고기를 담아준다. 고기가 더 신선해보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소비자의 눈은 즐겁지만, 재활용이 어려워 환경에 해가 된다. 플라스틱인데 재활용이 안 된다니, 왜일까?
유용호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관실 자원재활용과 행정사무관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나타내거나 소비자들의 눈을 끌기 위해 복잡한 재질과 화려한 색상을 담은 포장재가 많이 등장했는데, 이는 재생원료의 가치를 떨어뜨려 폐기물이 된다“고 설명했다.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앞두고 (사)참여하고 행동하는 소비자의 정원(이하 (사)소비자의 정원)이 ‘플라스틱다이어트, 세발자전거로 시작하다!‘ 랜선 포럼에 참석한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포장재의 재질·구조 등급평가와 표시 의무화 제도'를 소개했다.
등급 평가·표시 의무 “분리배출 쉬운 포장재 생산 유도”
제도의 목적은 제조 단계부터 생산자들이 재활용이 쉬운 포장재를 생산하게 만드는 거다. 작년 12월 25일부터 출시되는 9종의 포장재는 재활용이 쉬운 정도에 따라 환국환경공단으로부터 등급평가를 받아야 한다. 최우수-우수-보통-어려움 4등급이며, ▲종이팩 ▲유리병 ▲철캔 ▲알루미늄캔 ▲일반 발포합성수지 ▲폴리스티렌페이퍼 ▲페트병 ▲합성수지 단일재질 용기·트레이류 ▲복합재질 용기·트레이 및 단일·복합재질 필름·시트류 등이 대상이다. 생산자는 등급평가 결과를 제품 겉면에 표시해야 한다.
유 사무관은 “2013년부터 생산자들에게 권고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했지만, 실생활에서 바뀐 게 없어 2018년부터 법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계도기간이 올해 9월까지라 기존에 출시됐던 제품들은 이때까지 등급평가를 받아야 한다. 평가제도 외에도 음료, 생수에 쓰이는 유색페트병, 폴리염화비닐(PVC) 포장재는 사용 금지된다. PVC는 농산물을 싸는 랩, 햄·소시지 필름·용기 등에 활용된다.
“올바른 분리배출, 소비자 ‘숙제’ 되지 말아야
허선례 세이프넷 협동기업협의회 ㈜수미김 대표는 생산 제품에서 김 트레이를 제거하는 등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인 사례를 발표했다. 허 대표는 처음에는 종이 트레이로 바꾸는 방법을 모색했다고 한다. 그는 “트레이에 담으면 김이 잘 부서지지도 않고, 소비자들이 바로 꺼내 식탁에 올려두고 먹기에 편하다는 장점 때문에 트레이를 완전히 뺄 생각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자동 설비에 맞는 종이 트레이가 없어 고민하던 중에 트레이를 아예 없앤 새로운 설비를 마련하자고 결정 내렸다. 허 대표는 “설비 가격도 비쌌고 소비자들이 과연 구매할까 걱정도 했지만, 그래도 이 방향이 옳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투자했다”고 말했다. 트레이뿐 아니라 선물 상자 손잡이를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로, 홍보 스티커도 종이 재질로 만들었다. 그 결과 작년에 줄인 플라스틱 양은 ‘톤’ 단위다. 트레이를 없애고 손잡이를 종이로 바꿔 13.8톤가량의 플라스틱을 절감했다.
이날 자리에는 친환경 페트병을 개발하는 안형배 ㈜남양매직 대표이사도 참가했다. 그는 완벽하게 재활용이 가능한 페트병을 만드는 데 몰두한다고 전했다. 현재 환경부에서 정하는 포장재 최우수등급 조건은 ▲무색투명 몸체 ▲비중 1미만으로 물에 뜨는 라벨 ▲라벨 접착면적 0.5% 미만을 충족해야 한다. 그래야 포장재를 잘게 잘라 재생원료 ‘페트플레이크’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성소다를 아낄 수 있다. 가성소다가 많이 들어가면 재질 기능이 떨어진다. 남양매직은 국내 최초로 최우수등급 포장재 라벨링 특허를 받았다. 지난 해 제주소주 푸른밤과 협업해 접착면적을 0.3%으로 맞춘 소주병을 내놨다.
안 쓰고, 제대로 버리고...소비자 노력 필수
안 대표는 “지금 우리나라 페트플레이크는 가성소다를 많이 써 품질이 낮아 돈이 안 되는데, 최우수등급 포장재를 많이 만들어낸다면 해외에 수출도 할 수 있다”며 “최우수등급이 많아지고 제도가 안정화되려면 국민들이 관심을 보이고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 사무관은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의 노력도 강조했다. 그는 “재활용이 쉬운 포장재가 나오더라도 이물질이 묻은 채로 버리거나 섞어서 배출하면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포장재가 깨끗하게 닦이면 실이나 페트병으로 재활용할 수 있지만, 색상이나 이물질이 섞이면 불가능하다.
차유미 소비자의 정원 사무처장은 소비자 4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내놨다. 플라스틱다이어트를 위해 가장 우선돼야 할 것으로 67.7%가 소비자의 실천을 답했으며, 17.7%는 생산 기업의 노력을, 14.7%는 정부 정책 마련을 꼽았다. 포장재의 디자인과 재활용가능 여부 중 어떤 점을 더 중요시하는 지 묻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 193명 중 185명이 재활용가능 여부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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