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예상대로 코로나19 극복을 대외에 과시하고 대규모 경기 부양을 위해 돈 보따리를 푸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와 별도로 큰 논란거리를 만들어 냈는데 외세의 홍콩 내정 개입과 홍콩 내 반체제 활동을 금지, 처벌하는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키기로 한 것이다. 본토의 간섭을 받지 않겠다는 홍콩을 더 이상 자율에 맡기지 않겠다는 것이니 한 국가 두 체제 원칙인 일국양제(一國兩制)의 깃발을 내리고 한 국가 한 체제를 표방하는 일국일제(一國一制)의 깃발을 들어 올리는 셈이다. 

미국은 즉시 대응에 나섰다. 중국이 홍콩의 자율권을 뺏는다면 미국도 홍콩을 특별대우하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미국은 1992년에 만든 홍콩정책법을 통해 투자, 무역, 비자 발급 등에서 본토와 다른 지위를 홍콩에 보장해왔고 관세 혜택을 부여해왔다. 하지만 중국이 홍콩의 자치권을 박탈하는 이상 미국 또한 홍콩에 부여해왔던 혜택을 계속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홍콩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지속해서 경고해왔기 때문에 중국은 미국의 대응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홍콩보안법 제정 강행이라는 무리수를 둔 중국의 의도는 무엇일까? 

홍콩보안법 제정을 위한 중국의 사전 작업

전인대의 홍콩보안법 결의안 통과가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홍콩의 반체제 인사를 강제로 본토에 보낼 수 있다는 우려에 송환법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 벌어져서 홍콩은 작년 내내 몸살을 앓았다. 올해 들어서는 연초부터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이 발생했고 방역으로 인해 시위의 동력은 크게 약화됐다. 이 틈에 중국은 홍콩에서 중앙 정부를 대리하는 중국 연락판공실(중련판) 책임자를 당국의 의도를 더욱 강하게 관철할 뤄후이닝으로 교체했다. 

지난봄 중앙 정부의 홍콩 내정 간섭을 금지하는 홍콩 기본법 22조의 해석을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중국이 홍콩에 자치권을 부여했다고 해서 중앙 정부의 감독 권한이 없는 것은 아니라며 홍콩내 친중파와 독립파의 대립에서 친중파의 손을 들어줬다. 한편 중련판의 뤄후이닝은 제일 앞장서서 홍콩보안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밑밥을 깔았다. 이번 전인대의 홍콩보안법 의결에 앞서 사전 정지작업이 차근차근 진행됐음을 알 수 있다.

홍콩을 둘러싼 중국의 위기의식

중국 당국이 홍콩보안법을 밀어붙이는 것은 안팎의 상황이 녹록하지 않아서다. 2019년 중국의 GDP 성장률은 30년 만에 제일 낮은 수준이었고 실업률은 계속 오르고 있다. 경제 위기가 본격화되면 중국 내부의 불만 또한 고조된다. 대외 환경은 더욱 나쁘다. 시진핑의 중국몽 실현의 바로미터인 일대일로 정책이 곳곳에서 암초에 부딪히고 있다. 코로나19 초기 대응을 두고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갈수록 거세진다. 분리주의자인 차이잉원 대만 총리는 재선에 성공했고 미국은 그런 대만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중국계 시사만평가 왕리밍(王立銘)의 작품. 중국 본토 출신으로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만평을 그리다가 신변에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망명한 후 현재는 RFA의 만평가로 활동하고 있다./출처=왕리밍 개인 홈페이지

이런 상황이라 중국 당국은 분리주의 운동이 격화되고 외세 간섭이 고조되면 더욱 코너에 몰리게 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중국이 처한 위기를 종합적으로 또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홍콩의 정세다. 더는 홍콩이 위기의 진원지가 되지 않도록 강하게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 중국의 파워엘리트들이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추정한다.

중국이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

홍콩보안법 제정을 강행하게 되면 여파가 크다. 홍콩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역동성과 개방성을 가져왔다. 홍콩이 가진 금융, 무역, 해운 허브로서의 장점은 거기에서 비롯했다. 국가 경제의 큰 버팀목인 홍콩의 장점을 희생시킬 정도로 중국 당국에게 정치적 안정이 절실한 것인가.

중국이 홍콩의 자율권을 인정하는 것은 현실적인 필요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홍콩은 외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 발판이자 중국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창구다. 아무리 독립주의 열풍이 불어도 중국 당국이 홍콩에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의 이해관계가 촘촘히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홍콩 정세에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 홍콩에는 약 1천5백여 개의 다국적 기업과 금융기관이 진출해 있는데 미국과 영국 주도로 홍콩에서 철수하거나 싱가포르 등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 또한 홍콩의 금융 허브 지위를 떠받치는 달러 페그제를 무너뜨리고 달러가 유출되도록 해서 홍콩 경제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 

?중국계 시사만평가 왕리밍(王立銘)의 작품. 중국 본토 출신으로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만평을 그리다가 신변에 위협을 느껴 미국으로 망명한 후 현재는 RFA의 만평가로 활동하고 있다./출처=왕리밍 개인 홈페이지

그렇다면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인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은 거기에 대해 이미 대비책을 마련해둔 것으로 보인다. 2019년 현재 홍콩 증시에 상장된 기업 중 73%가 중국 기업이다. 중국 기업들은 뉴욕 증시 대신 홍콩 증시에서 자금을 조달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미국이 홍콩보안법을 빌미로 뉴욕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에 제재를 가하려 해도 중국 기업은 이미 홍콩 증시라는 든든한 대안이 있다. 미국의 제재조치에 따라 달러가 홍콩을 빠져나갈 수 있지만 홍콩외환관리국은 이미 4,400억 달러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를 경계하는 EU는 중국의 또 다른 대안이다. 미국 증시를 떠난 중국 기업이 차선책으로 유럽 증시를 선택할 수 있고 적극적으로 유럽 자본을 홍콩에 유치할 수 있다.

대응 카드가 마땅하지 않은 미국

중국이 미국의 대응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차근차근 대비책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미국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미국 백악관과 의회가 연일 날 선 반응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로 고려하는 것이 보복 관세 부과, 중국 관리들의 미국 입국 금지, 자산 동결 등에 그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장사꾼인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신중한 입장이다. 중국도 신중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 전인대가 통과시킨 것은 홍콩보안법이 아니라 홍콩 입법회를 거치지 않고 홍콩의 국가안보와 관련한 법률을 만들겠다는 결의안이다. 홍콩보안법의 실제 제정은 상위 기구인 상무위원회에 일임했다. 상무위원회가 법안을 만드는 시점은 시진핑 주석의 승인이 떨어지는 시점일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당연히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을 봐가면서 그 시점을 결정할 것이다.

홍콩보안법 제정은 중국이 잘 준비해온 한 수다. 코로나19 대응을 둘러싸고 미국 내 여론이 크게 분열되어 있고 대선을 앞둔 혼란을 잘 이용한 수라고 하겠다. 미국은 당장 구체적 대응은 하고 있지 않지만 곧 전열을 정비하고 응수할 것이다. 서로 간을 보고 있는 상황이기는 하나 전운이 감돌고 있다. 대규모 국제 분쟁은 종종 아주 사소한 충돌에서 비롯했다. 홍콩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사소한 충돌로 끝날지 전면적인 대결로 치닫게 될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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