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에 새겨진 ‘무지개 의원’ 이름 밑에는 빨주노초파남보로 칠해진 무지개 모양 심볼이 그려져 있다. 이름 아래 원장의 출신 대학을 적어놓곤 하는 다른 병원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심볼은 병원이 추구하는 가치를 정확히 보여준다.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모습을 존중하며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지난 2012년 창립한 마포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김형길, 이하 마포의협)은 이듬해 서울 서교동에 무지개 의원을 개원했다. 이후 2019년 한 해에만 175명의 조합원이 신규로 가입해 현재 총 1415명의 이름이 올라와있다. ‘의료협동조합’이라는 쉽지 않은 길을 걷고 있는 임상희 사무국장과 조영실 이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마포의협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임상희 사무국장(이하 임 국장) = 마포의협은 믿을 수 있는 진료, 적정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을 꿈꾸는 주민들이 모여서 시작한 협동조합입니다. 개원 이래 꾸준히 높은 수준의 진료 적정성을 유지하고 있어요. 항생제도 주사도 평균보다 적게 처방합니다. 몸 건강뿐 아니라 지역사회에 ‘건강한 관계’를 뿌리내리는 일에도 관심이 큽니다. 조합 차원에서 인권교육을 진행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과 편견 없는 진료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Q. 차별과 편견 없는 진료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가요?
임 국장 = 사회적 시선 때문에 병원에 가기 꺼려하는 사람들, 아픈 곳을 치료하러 병원에 왔는데도 마음이 편치 않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진료입니다. 예를 들면 호르몬 치료를 받으러 오는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에게 성별을 재차 묻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불편을 주지 않는 거죠. 꽤 많은 분들이 정기적으로 저희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이유일 거예요.
조영실 이사(이하 조 이사) = 발달장애인 환자의 경우에는 그들도 성인이기 때문에 아이처럼 대하거나, 환자 본인은 빼놓고 보호자와만 얘기하는 등 차별을 겪지 않게 하려고 주의합니다. 누구에게나 존중받는 진료 환경을 제공하자는 마음을 의료진과 활동가들이 공유하고 있어요.
Q. 중장년층 1인 가구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더-이음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조 이사 = 2018년부터 마포구청과 함께 진행하고 있는 전담주치의 사업입니다. 만성질환 등으로 주기적인 돌봄이 필요한 중장년층 1인 가구원들을 전화와 방문을 통해 모니터링 합니다. 병원에 오시면 약 교육을 해드려서 쌓여 있는 약 중에 필요한 것만 골라드리기도 하고요. 대상자 가구원들이 ‘무슨 일이 있을 때 연락하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하세요. 관계를 맺으면서 고립감을 덜 수 있는 게 가장 큰 성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Q. 공익 활동을 해온 의료복지 협동조합으로서 코로나19를 보는 시각은 어떤가요?
임 국장 =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공의료의 중요성이 다시금 확인됐다고 생각합니다. 민간 영역에서 공익 목적으로 의료 활동을 수행하는 기관이 저희 같은 의료복지 협동조합입니다. 평소 꾸준히 의료 영역과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고민했기에 재난이 닥쳤을 때도 힘든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알 수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그런 이들이 자기 얘기를 털어 놓고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소모임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Q. 진료 외에 다양한 소모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임 국장 = 갱년기 여성을 대상으로 ‘완경 파티’를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여성들이 40대 중후반에 들어서면 몸과 기분에 변화가 일어나는데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리는 축하해주는데 폐경은 모든 게 끝나는 우울한 일처럼 여겨집니다. 폐경을 완경으로 바꿔 부름으로써 인식을 변화시키려 했습니다. 병원에 오셔서 골밀도와 호르몬 검사를 하고 실제로 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서로 얘기도 터놓고요. 여성은 주로 남을 돌보는 입장이잖아요. 그 날만큼은 온전히 나를 돌보자는 의도였습니다.
Q. 카카오 같이가치를 통해 5월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습니다.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요?
조 이사 = 무지개학교 스토리북을 제작할 예정입니다. 무지개학교는 의료사업 외에도 정기적인 교육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에요. 다양한 소수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인권 교육을 진행하는데, 지역사회의 건강한 관계 맺음을 추구하는 조합의 가치와 딱 맞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노동자, 노인, 장애인 분들을 초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반응이 뜨거웠고 올해는 안 하느냐는 문의가 옵니다. 6월 말쯤에 계획하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어떻게 진행할 지는 고민 중이에요.
Q. 의료협동조합을 잘 모르는 시민들에겐 생소하게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조 이사 = ‘병원인데 왜 이런 걸 하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의료를 제공하는 병원을 운영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 외에 지역 주민들을 위한 운동 프로그램, 완경파티 같은 건강 소모임, 인권 강의 등도 결국 ‘건강한 지역사회’로 가는 길입니다. 올해도 다양한 활동을 진행할 수 있도록 조합에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마포의협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임 국장 = 더-이음 프로젝트 같은 지역사회 돌봄 프로그램을 더 확장하고 싶습니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봤듯이 공공 영역만으로는 공백이 생길 수 있습니다. 민간에서 의료복지 협동조합과 사회적경제 기업들이 협력해서 돌봄 시스템을 보완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지지할 수 있는 망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 사람을 챙기는데 의료뿐만 아니라 의식주, 요양, 주거 다양한 케어가 필요한 만큼, 서로 연대해 ‘지역 돌봄 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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