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적으로 확산하면서 어느덧 바이러스와 함께 하는 삶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우리에게 ‘나’의 몸이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이 세계에서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누구와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가를 배우는 변화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우리’라고 믿어왔던 견고한 울타리의 가장자리를 확인하면서 애초에 불평등한 사회적 조건으로 인한 의료적 차별의 실태를 똑바로 마주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에서 발생한 집단감염과 사망은 그동안 지키고자 했던 ‘우리’와 격리되어 보이지 않았던 이들이 결국 ‘죽음’으로써 존재를 드러내는 역설적인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태원 클럽에서 발생한 감염으로 제기된 성소수자 차별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성소수자 혐오적인 내용의 기사들이 하루아침에 확산하면서 아웃팅과 같은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이 발생하자, 인권단체들은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대책본부’를 결성하고 질병관리본부와 서울시 등 지자체에 요구하여 익명검사를 전국으로 확대했습니다. 익명검사는 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사생활 침해를 예방하고 필요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검사하기 위한 감염병 관리의 원칙입니다.

이는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당사자와 활동가들이 지난 수십년간의 활동 경험을 통해 정당한 권리 보장을 위해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면서 쌓아왔던 역량의 결과이고, 가깝게는 확진자의 과도한 개인정보 노출과 상세한 이동 경로 공개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생존의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이에 꾸준히 대응하여 온 활동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알려진 인권침해 사례로서, 익명검사가 진행된 일부 보건소나 선별진료소의 의료진들이 이태원 관련한 사람들에게 특정해서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관련 질문을 한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그동안 ‘우리’ 안에 포함하지 않았던 성소수자와 HIV 감염인에 대한 낙인, 제도 안에서는 물론 일상에서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배제한 상황,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차별 행위를 당당하게 용인하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의료진이 성 정체성을 알고 있거나 의심하는 경우에 절반 이상에서 부적절한 질문, 모욕적인 말이나 비난 등의 차별을 경험했고, 의료진에게 정체성을 알릴 필요가 있는 경우에도 이를 알리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닙니다. 아주 간단한 예로 산부인과 문진에서의 ‘성관계’ 경험에 대한 질문을 들 수 있죠. 대부분의 사람이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이 질문이 왜 필요한지 의문을 갖기도 전에 답을 해야만 하는 의무감을 느낍니다. 보통 성관계 관련한 질문은 이성애적 관계, 그중에서도 해부학적으로는 질과 음경이 접촉하는 섹스만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 문제가 됩니다. 이와 다른 접촉을 ‘성관계’로 경험하는 사람은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답을 할지 망설이다가 정작 필요한 진료를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당혹감과 불쾌감이라는 감정만 남게 됩니다.

하지만 이성애적 관계에서도 성적 행위는 입, 손, 발, 항문 등 다양한 신체 부위뿐 아니라 섹스 토이와 같은 기구를 사용한 섹스까지 매우 다양할 수 있습니다. 성적 지향이 아닌 성적 행위에 따라 필요한 진료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산부인과에서 일상적으로 묻는 이 질문은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성관계’라고 전제된 행위 이외의 다른 성적 행동을 한 사람에게 스스로 부정적인 낙인을 내면화하게 만듭니다.

앞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사에서 의료진에게 HIV 감염과 관련된 질문을 받은 환자는 질문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지 궁금합니다. 원칙적으로 진료 과정에서 왜 이런 질문이 필요한지에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환자의 권리이기도 하니까요.

환자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HIV의 상관관계는 무엇인지, ‘성관계’는 정확히 어떤 성적 행위를 뜻하는 것인지, 같은 성별과의 성관계도 포함되는지, 자위나 섹스 토이 사용은 포함되는지 등을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의료진도 환자의 건강상 필요한 검사나 진료를 위한 질문이었다면, 환자로부터 질문받았을 때 자신의 질문 앞에 생략됐지만 필요했던 부가적인 설명을 다시 떠올리거나 자신의 질문이 차별적이었다는 걸 알아차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환자가 이런 질문할 권리에 대한 감각을 깨닫기 전에 스스로 낙인감을 없애는 것도 필요합니다. 한편으로는 이후의 상황에서 자신이 안전하다는 느낌도 있어야 하고 바로 그런 의료환경을 만드는 것이 의료진의 역할입니다. 어떤 성적 행동은 비정상적이거나 일탈이라는 개인적인 판단이 아니라, 다양한 성적 행동에 따른 감염의 위험은 어떤 것이 있으며 이후 위험 감소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이죠.

비난과 훈계가 아니라 설명과 지지. 바로 그 순간 환자와 의료진의 관계에서 신뢰가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우리’라는 경계를 세워서 필요에 따라 누군가는 포섭하고 누군가는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예외 없이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의료의 기본적인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 물어볼 권리에 대한 환자의 감각을 함께 키우는 노력이 그 출발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