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 능력이 있으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취약계층이 일을 통해 자립에 이르도록 하는 ‘자활사업’은 지난 2000년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시행되면서 본격화했다. 올해는 자활사업이 국가 정책으로 제도화한 지 20주년이 된 해로, 한국 사회적경제 운동의 뿌리이자 출발점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국내 자활사업은 지역자활센터 주도의 지원?육성을 발전을 거듭했다. 2004년 보다 효율적으로 자활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광역자활센터’가 설립돼 현재 전국 15곳에서 운영 중이다. 이 중 경기광역자활센터는 지역자활센터 33곳, 자활사업단 311개를 지원하는 등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면서도 모범적으로 사업을 선도해왔다.

윤미라 신임 경기광역자활센터장을 지난 13일 수원 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사진제공=경기광역자활센터

경기자활센터는 지난 2월 새로운 수장으로 윤미라 센터장을 맞으며 새출발을 알렸다. 윤 센터장은 앞서 안산양지지역자활센터장, 성남지역자활센터장, 경기지역자활센터협회 사업위원장, 보건복지부 ‘도우누리’ 운영실장 등을 맡으며 20년 이상 자활 분야에서 활동한 베테랑이다.

센터에서는 △자활기업 창업지원 △수급자 및 차상위자 취업·창업지원 및 알선 △지역자활센터 종사자 및 참여자 교육훈련 및 지원 △지역특화형 자활 프로그램 개발·보급 및 사업개발 지원 등을 수행한다. 지역자활센터와 일하는 ‘센터협력팀’, 자활기업을 지원하는 ‘기업지원팀’, 센터 업무를 총괄하는 ‘운영지원팀’ 등에서 직원 15명이 일한다. 

취임 직후 코로나19 사태로 바쁜 일정을 보낸 윤 센터장을 만나 앞으로 운영 방향과 계획, 포부 등을 들어봤다. 윤 센터장은 “센터 직원들 모두 자활 분야의 ‘선수’들이라 전천후로 일을 해주는 덕분에 지난 3달간 큰 어려움 없이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먼저 취임을 축하합니다. 지난 100일을 어떻게 보냈나요?

경기도 청소 자활기업들은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소독, 방역 서비스를 진행해 지역사회 봉사와 공헌 활동을 수행했다./사진제공=경기광역자활센터

▶취임을 하자마자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곧바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어요.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느라 외부 업무도 마비되고, 센터가 지원하는 자활기업들도 매출이 줄면서 걱정이 컸죠. 코로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으로 지난 3달을 보냈어요. 다행히 경기도에서 추경예산 7500만원을 편성해서 자활기업 33곳에 임대료 월 최대 9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코로나19로 매출은 줄었는데 임대료, 인건비는 그대로라 경영이 참 힘들거든요. 도의 임대료 지원 덕분에 자활기업들이 고용조정을 하지 않고 공동체 정신으로 다같이 위기를 극복하자는 의지를 보여줘서 저 역시 일하는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관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어려울 때 협력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경기도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자활기업들이 대부분 영세한데, 위기 상황에서 먼저 나서서 힘을 보태려는 ‘공동체의 가치’를 몸소 보여줬어요. 청소 업체들이 도내 사회적경제 시설, 아동센터, 경로당 등에 소독·방역 봉사를 했고, 도시락 업체에서는 학교에 가지 못해서 끼니를 거르는 아이들을 위해 식사를 지원했습니다. 방역용품이 부족해지면서 몇 기업에서는 천 마스크를 생산하기도 했고요. 

-자활 분야에서 20년 넘게 활동했습니다. 어떻게 처음 인연을 맺었나요? 

윤 센터장은 "올해 지역자활센터와 협력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자활기업 안정화를 위해 경영 컨설팅, 판로 확대 등을 지원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사진제공=경기광역자활센터

▶자활은 태생부터 제 인생과 연결됐다고 생각했어요. 태어날 때부터 저희 집이 워낙 가난해서 빈곤하게 살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결코 게을러서 못 사는 게 아니거든요. ‘누가 조금만 끌어줘도, 몇 마디 조언만 해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을 느끼면서 성장했어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때, 여성 노동운동을 시작하면서 자활과 본격적으로 연을 맺었죠. 회사에서 해고된 남편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는데, 아내들이 ‘내가 나서지 않으면 당장 우리 식구는 당장 굶어죽는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어요. 그때 제가 일하던 안산여성노동자회에서 ‘여성실업대책본부’를 설립하고, 청소?외식?재봉?텔레마케팅 등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 위주로 사업단을 꾸려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2000년 법이 제정되고, 이듬해 지역자활센터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사업을 위탁 운영했습니다. 이후 안산양지지역자활센터에서 만난 여성들은 한부모 가장이 대부분이었는데, 자식들과 먹고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일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시 외식사업단에서 분식집을 창업했을 때 떨림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후 보건복지부에서 사회서비스 선도사업 ‘도우누리’ 육성을 진행하고, 성남지역자활센터 등에서 일하다가 올해 경기광역자활센터로 왔습니다.

-경기도는 넓어서 시?도마다 사업 특징이 다를 것 같습니다. 또 지역과 광역 센터의 역할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광역자활센터는 지역 특성 및 참여 주민의 특성에 맞는 사업을 발굴한다. 여성들은 주로 외식, 돌봄사업단에서 일한다./사진제공=경기광역자활센터

▶경기도 안에만 33개 지역자활센터가 있는데, 광역 단위 중에서 가장 많이 운영 중이에요. 지역이 광범위하고 시도마다 특성이 달라서 자활사업도 ‘농촌형’ ‘도시형’ ‘도농복합형’ 등 다양한 유형으로 사업을 진행합니다. 예를 들어 안산의 경우는 공단 배후도시라 공장 노동자들이 많은데, 거기 사는 빈곤 여성들을 위한 사업단을 주로 발굴했어요. 안성이나 여주 같은 곳은 농촌형인데, 농산물을 생산하고 식재료를 가공해 판매합니다.

지역자활센터의 경우 지역 내 사회문제가 무엇인지, 주민들의 필요는 어떤지 파악해 자활사업과 연결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자활사업단에 참여하는 주민들이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센터가 정신적?심리적 안정을 주고, 훈련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비빌 언덕’ 같은 역할을 하죠. 저 역시 주민들을 직접 만나 소통하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그렇게 일할 때 가장 뿌듯하고 보람을 느낍니다.

광역자활센터는 ‘지역센터’와 ‘자활기업’ 두 축을 지원하는 역할을 합니다. 경기도에는 현재 지역자활센터 33곳, 자활사업단이 311개, 자활기업이 181개 운영 중입니다. 지역자활센터와 신규 사업을 개발해 사업단과 참여 주민을 늘리고, 자활기업들은 경영 컨설팅과 판로 개척을 지원해 지속가능하게 운영되도록 돕습니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사업들이 연기되고, 또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안정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입니다.

-경기에서 특히 우수하고 모범적인 자활사업의 사례를 소개해주세요.

어린이집에서 사용한 식판을 살균?세척해 포장?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자활사업을 통해 진행하는 '식판케어' 등이 대표적인 우수 사업이다./사진제공=경기광역자활센터

▶잘하는 곳이 너무 많아서 꼽기가 어렵네요.(웃음) 지난해 성남지역자활센터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한 ‘식판케어’를 소개하고 싶어요. 어린이집에서 사용한 식판을 살균?세척해 포장?배달해주는 서비스에요. 아이들이 점심을 먹으려면 집에서 식판을 가져가야 하거든요. 보호자가 식판을 싸서 보내고 먹고 가져온 걸 다시 씻는데, 위생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자활사업단에서 대신 식판을 맡아 아이들 건강도 챙기고, 학부모들 수고도 덜어주죠. 

광역센터에서 직접 기획한 사업인데, 올해는 광주?시흥?의정부 지역자활센터로 확대 운영하게 됐어요. 저희 모델을 보고 충남 아산에서도 식판 관리 사업을 시작했고, 전국 규모로 확장할 만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경기광역자활센터가 자활에 맞는 신사업을 발굴?개발해서 선도적으로 확대 보급해나갈 계획입니다.

또 도내 영세한 자활사업단이나 자활기업이 모여 규모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클린쿱사회적협동조합(청소)’ ‘웰쉐어사회적협동조합(배송)’ ‘HD협동조합(집수리)’ 등 각 분야의 기업들이 네트워크를 이뤄 활동하는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이종(異種) 간이라도 협력하는 사례를 늘려야 해요. 돌봄 사업을 할 때 필요한 청소나 물품 같은 상품?서비스를 자활 영역에서 찾는 식인데, 관련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자활사업 20주년을 맞아 향후 계획 및 포부를 말씀해주세요.

▶지난 20년간 자활사업을 지켜보면서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체계적으로도 많이 안정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광역자활센터 차원에서 보면 관과 협력하는 일이 늘었고, 지자체 자활기금을 활용해 사업비나 운영비로는 힘든 큰 규모의 사업도 진행할 수 있게 됐어요. 앞으로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스마트팜’ 같은 사업을 확장하고 싶은데, 시설이나 기술 등 투자 비용이 많아서 지방 정부와 함께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봅니다.

다만 많은 분들이 여전히 ‘자활’을 ‘재활’의 의미로 해석한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뭔가 좀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들이 하는 사업이니까 도와줘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거든요. 이런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났을 때 자활기업이 성장할 수 있어요. 특히 공공 영역에서 구매를 결정하는 일선 공무원부터 인식을 바꾸고, 적극적으로 상품을 구매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청소?집수리?외식?돌봄 분야에서는 다른 경쟁 업체와 비교해도 우수한데, 경쟁력을 더 강화할 계획입니다.

또한 자활이 사회적경제 분야의 한 축인 만큼, 다양한 기관과 협력을 늘리려고 합니다. 중간지원조직, 사회적경제과 등과 연대해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고 시너지를 내고 싶어요. 우리 사회에서 ‘빈곤’이 어떤 의미인지 재규정하고,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발굴하려고 합니다. 현재 경기도의 자활사업을 되짚고 방향성을 논의하는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인데, 오는 9월 마무리해 10월 포럼을 개최할 예정입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많은 분들이 자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경기광역자활센터가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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