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의 대화 전시장은 북촌에 위치해 있다.

“어둠은 시간도 왜곡시킵니다”

어둠속의 대화 전시장에 들어섰다.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눈을 감아도, 떠도 차이가 없었다. 어둠 속에서 100분간의 체험을 이끌 로드마스터가 반갑게 관람객을 맞았다.

관람하면서 평소 시각에 집중해 잘 느끼지 못했던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을 차례로 느꼈다. 시각을 제한해 부족해진 정보는 상상으로 메꿔졌다. 덕분에 다양한 추억을 마주했다. 전시에 참여한 모든 이가 같은 것을 마주했지만, 머릿속으로 다른 그림을 그렸다.

시각이 제한된 상황은 타인과의 연대를 강화했다. 로드마스터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도움도 받았다. 관람객 끼리도 이야기를 나누고 처음 만난 사이에서 느끼기 힘든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일행과는 평소와는 다른 주제, 느낌으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됐다. 왜 지인이 “썸 타는 사람과 오면 좋다”고 했는지 짐작이 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로드마스터가 물었다.

“시각을 제한하는 일은 시간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평소 시계, 스마트폰을 통해 시간을 측정하고 느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얼만큼의 시간을 보냈을까요? 한 번 맞춰보세요”

30분 정도가 지났을 것 같다는 대답이 무색하게 시간은 80분이나 지나 있었다. 어둠속에서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 있었다. 이후 마지막 20여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전시가 마무리됐다. 로드마스터와는 전시장 안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전시장과 로드마스터의 모습까지 모두 상상 속에 남았다. 

전시를 마치고 여운이 남았다. 시각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체험은 많다. 어둠 속에서 식사와 게임 등 갖가지 활동을 하면서, 시각이 제한 됐을 때의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식이다. 반면 어둠속의 대화는 관람객을 능숙하게 이끄는 로드마스터를 통해 어둠이 큰 장애가 아님을 느끼게 한다. 어둠속에서는 그곳에서만의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도와준다.

관람이 끝난 뒤, 방명록을 작성하면 그 내용이 로드마스터에게 전달된다. 

“사회적기업?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엔비전스는 2009년 설립, 2010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마친 뒤,‘어둠속의 대화’ 전시를 시작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최근 3년간 평균 연 매출 16억 원을 기록할 정도로 실속있는 강소사회적기업이다. 

어둠속의 대화는 연인들의 이색 데이트 코스, 기업의 체험·교육 프로그램, 가족 단위 추천 전시로 유명하다. 명성에 비해 세부 내용이나 홍보가 잘 돼 있지 않은데, 이는 전시 내용이 알려지면 재미와 감동이 반감되는 전시의 특징 때문이다. 

엔비전스는 ‘사회적기업’이라는 타이틀도 잘 내세우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의 지원도 최소한으로 받으며 사업을 키워왔다. 이런 기조는 송영희 엔비전스 대표의 신념이 반영된 결과다. 

“취약계층의 일자리 문제가 복지 안에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경쟁력 있는 사업 안에서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회사의 취약계층 고용이라는 특성이 커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송영희 대표는 사회적기업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업모델 확장으로 장애인 고용 확대

엔비전스는 최근 ‘어둠속의 대화’ 전시를 넘어 사업을 확장했다. 기존 발달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 베어베터의 사업을 이어받았다. 2020년부터 네이버 본사(그린팩토리) 내 식물을 관리하고, 카페와 매점을 운영한다. 이를 위해서 베어베터로부터 10명의 발달장애인을 고용승계하고, 직원을 더 고용했다. 이에 따라 작년 35명이었던 직원은 60명으로 늘었다. 직원 중 장애인 비율은 75%에 달한다. 송 대표는 2019년에 비해 2020년 연 매출이 4억 정도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19로 기존 목표 달성은 어려워졌지만, 그만큼 이번 사업에 걸린 기대가 크다.

엔비전스는 인터넷 사이트의 웹 접근성을 평가하고 컨설팅하는 사업도 진행해왔다. 송 대표는 웹 접근성 평가·설계를 비장애인보다 당사자인 장애인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보고 사업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시각장애인 3명을 ‘웹 테스트 엔지니어’로 고용했다. 고용 규모는 크지는 않지만, 시각장애인이 전문 분야를 가지고 일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엔비전스가 진행하는 3가지 사업(전시, 카페 및 매점, 웹 접근성 컨설팅)은 맥락이 달라 보이지만 ‘장애인이 경쟁력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송 대표가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고용된 직원들이 단순히 돈 벌려고 일하는 게 아니라, 일 자체를 좋아한다. 모든 취약계층을 품을 수는 없겠지만, 만들어 놓은 사업모델 안에서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는 복제가능한 사업모델을 만들어 어디서나 취약계층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어둠속의 대화’ 전시관을 지역도 만들 계획이다"

<송영희 대표가 말하는 강소 사회적기업의 포인트>

"사회적기업도 경쟁력이 우선"
먼저 사회적기업의 활동을 복지로 볼지, 비즈니스로 볼지 정해야 한다. 비즈니스라고 생각한다면, 지속가능성과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정부 지원이나, 복지 정책에 너무 기대서는 곤란하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