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시설 아동은 시설장이 법정대리인이다. 그러나 만 18세 이후부터는 아니다. 자립 준비를 위해 퇴소 전에 시설에서 각종 교육을 실시하나 당장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아이들은 집중하기 어렵다. 보호종료 3년차 김지희(22)씨는 “시설 차원에서 강사를 초빙해 좋은 교육을 정말 많이 실시하지만, 대부분 앞에서 강의를 하는 방식이라 재미도 없고 귀에 안 들어와서 기억나지 않는다”며 “퇴소 후 실생활에서 깨닫는 게 더 많다”고 전했다.
주입식 교육보다 현실과 부딪히며 배우는 게 효과적인 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만, 자기 일처럼 챙겨주는 보호자가 있고 없고는 차이가 있다. 대신 책임질 준비가 돼있는 어른이 뒤에 없다면 자립 과정 중 입은 타격에서 회복할 가능성이 떨어진다. 직장에서 실수해도 용납되는 사회초년생처럼 자립초년생에게도 시행착오 할 기회가 필요하다.
간극을 채우기 위해 정부는 제도·정책 개선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매년 2600명씩 쏟아지는 퇴소생들을 정부 홀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민간기업과 시민사회에서도 나섰다. 단순히 돈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꿈과 목표를 설정할 여유를 주는 게 목적이다.
보호종료아동이 보호종료아동에게
“후배 보호종료아동을 마주치면 그저 계속 신경이 쓰일 뿐이죠. ‘내가 활용하고 있는 자원을 저 친구는 모르지 않을까’ 궁금하고 걱정돼요.”
올해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에 캠페이너로 참여하는 손자영(23)씨는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관심이 덜할 때 퇴소했다. 자립수당도 못 받았다. 보호종료아동을 둘러싼 제도와 정책 환경이 본인 퇴소 시절보다 나아지고 있음을 체감하지만 더 좋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여덟 어른 캠페인에 참여하게 된 이유다.
열여덟 어른 캠페인은 보호종료아동의 연대 의식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작년 시즌 1을 시작했다. 보호종료아동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직접 알려 시민들의 공감과 인식 개선을 이끈다. 지금까지 보호종료아동의 이름을 내건 프로젝트 4건을 실시했다.
▲‘신선 프로젝트’에서는 신선 캠페이너가 다른 보호종료아동 12명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시리즈물로 연재했다. ▲‘김준형 프로젝트’에서는 아름다운재단 ‘김군자할머니기금’으로 장학금을 지원받은 김준형 캠페이너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와 할머니의 나눔을 기리며 만든 ‘김군자 블렌드’ 커피를 제작, 펀딩했다.
▲‘박도령 프로젝트’에서는 배우를 꿈꾸는 박도령 캠페이너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전안수 프로젝트'에서는 디자인을 전공한 전안수 캠페이너가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굿즈를 제작해 네이버 해피빈에서 공감펀딩을 진행했다. 펀딩은 목표금액의 380%인 약 760만원을 달성했다. 캠페인 기부금은 아름다운재단 교육영역기금을 통해 보호종료아동의 자립 지원에 사용된다.
올해는 시즌 2를 진행할 예정이다. 시즌 1에서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했다면, 시즌 2에서는 ‘나’의 이야기에서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을 논한다. 특히 ‘고아’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소비하는 행태를 다룬다. 손자영 캠페이너는 미디어에서 보호종료아동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비춘 사례를 알리는 활동을 알리는 ‘애드보커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신선 캠페이너는 팟캐스트, 블로그 등 보호종료아동 미디어를 직접 기획하고 운영한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되, 원하는 물고기를 잡게 하자
"일자리를 제공해주기 위해 정말 많은 기업 대표님들을 찾아가 채용을 연계했어요. 100명 넘게 취직시켰죠. 가장 오래 일한 친구요? 3개월이요.“
김성민 브라더스키퍼 대표는 과거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며 보호종료아동들에게 일자리를 연계했다. 하지만 오래하지도 못할 뿐더러, 그만 두며 홀연히 잠적해 버리기 일쑤였다. 고대현 소이프 대표도 “취업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인사를 건네고 두어 달이 지나면 많은 아이들이 ‘적성에 안 맞는다. 일이 어렵다. 동료직원과 상사와 잘 안 맞는다’라는 이유로 이미 퇴사한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편의점이나 음식점 알바 등을 전전하며 근근이 버티는 이들도 있다.
김 대표는 조경 사회적기업 ‘브라더스키퍼’ 설립으로 직접 보호종료아동을 고용하며 답을 찾았다. 직원들은 식물을 다루며 정서적 안정을 얻었고, 업무 적응도 잘 해냈다. 고용뿐 아니라 식물에 교육을 진행한다. 이뿐 아니라 요리교육, 진로교육, 금융교육 등을 함께 실시한다.
고 대표가 운영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예비사회적기업 ‘소이프(SOYF)’는 시설 내 아동부터 직업 교육을 실시했다. 소이프가 각 보육시설로 교육생 모집 공지 전달을 부탁하면, 이를 통해 디자인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프로그램을 신청한다. 포토샵과 일러스트 교육을 통해 기본기를 익히고, 캘리그라피, 모델 사진 찍기 그리고 영상촬영과 편집 등을 배운다. 상품 제작에 참여한 교육생들에게는 자립 후 사용할 수 있는 디딤씨앗통장에 영업 이익의 약 5% 내외를 저축해준다.
재단·기업 CSR 多 “아동권리보장원 찾아보세요”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2016 보호종결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에 의하면 대학 진학 경험이 있는 57.2% 수준. 공식 통계는 이렇지만, 현장에서는 20%도 안 된다고 한다. 김지희씨는 “퇴소생 입장에서는 돈 버는 게 우선”이라며 “주변에서 대학에 가는 친구들을 보면, 퇴소 후 바로 입학하기보다는 일단 2~3년 정도 돈을 번 후 필요성을 느껴 진학한다”고 말했다. 퇴소 직후 대학 공부하며 스스로에게 투자할 여유가 없다는 의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해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국가장학금으로 학비를 전부 해결하기는 어려워 아르바이트 일이나 학교 장학금 등으로 충당한다. 민간 분야에서는 현대차정몽구재단, 아산장학재단, 아름다운재단, 교보생명 등이 대학생 학비 지원을 한다. 아동권리보장원 홈페이지에서 공고를 찾아볼 수 있다.
대학에 가지 않는 보호종료아동을 대상으로 한 사업도 있다. 스타벅스·아름다운재단·브라더스키퍼가 함께 하는 ‘2020 청년 자립지원꿈 지원사업’이다. 대학 비진학 보호종료아동과 쉼터 퇴소 청년들에게 개별 맞춤형 경제적 지원과 함께 사회적 관계망을 제공한다. 올 한 해 시범 사업을 진행한 후 장기 사업으로 확대할 전망이다. 재정컨설팅을 통해 1인 최대 500만원 교육비, 주거비, 생계비 등을 지원하며 선정되지 않더라도 ‘골든타임’ 상담을 통해 별도의 긴급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희망자에 한해 한양사이버대학교 무료수강, 스타벅스 바리스타 교육에 참여할 기회도 준다.
생계비를 지급하고 학업·자격증 취득 등 진로 지도를 실시하는 포스코1%나눔재단의 진로지원사업 ‘두드림(Do Dream),’ 현대차정몽구재단의 ‘자립역량강화사업 온드림 청사진’ 사업도 있다. 와이비엠넷은 온라인 강의 수강권을 지원하는 어학교육지원사업을 하는 등 여러 기업, 재단들이 현금 지급 이외에도 각자 성격에 맞게 후원 방식을 설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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