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감기와 다르지 않았다. 병에 걸린 사람들은 열이 났고, 기침을 했다. 호흡곤란을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며칠 앓고 나면 낫는 감기와는 달리, 걸리는 족족 사람들이 쓰러져 나갔다. 부쩍 늘어난 인구 이동 덕분에 병은 날개 달린 듯 전 세계를 누볐다. 엄청난 부자도, 유명인들도 이 병을 완전히 피해가지 못했다. 영국 총리도 이 병에 걸려 죽다 살아났다.

2020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1918년의 이야기다. 1918년 전세계를 강타한 인플루엔자(‘스페인독감’) 팬데믹이었다. 당시 영국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는 독감에 걸려 한동안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할 정도로 호흡곤란에 시달렸다. 약 5억명이 감염됐고, 최대 1억명이 희생됐다. 게다가 1918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였다. 전쟁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길 고대하던 이들은 미처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전쟁터에서 사라져갔다.

1918년은 바이러스의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때였다. 코흐가 병원성 미생물을 발견한 게 1886년이고, 1898년에야 식물학자 마르티너스 바이에링크(Martinus Beijerinck)는 담배 잎에 무늬를 만들어내는 담배모자이크병이 세균보다 작은 물질에 의해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프리드리히 뢰플러(Friedrich Loeffler)와 폴 프로시(Paul Frosch)도 세균보다 작은 물질로 수족구병이 매개된다고 보고했다. 바이러스가 세균이 아니라 유전물질이 단백질에 둘러싸인 입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건 1918년이 한참 지난 후였다.

1918년 12월 스페인독감 창궐 당시. 미국 시애틀 시 경찰들이 적십자가 생산한 마스크를 낀 채 서있다. 사진=워싱턴 국립공문서관(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2020년, 100년이 흐르는 동안 바이러스 연구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1931년 전자현미경이 개발되면서 담배모자이크바이러스, 폴리오바이러스, 로타바이러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많은 바이러스의 구조가 밝혀졌다. 이를 바탕으로 백신 개발도 빠르게 진일보했다. 병의 원인조차 특정할 수 없었던 때가 지나고, 코로나19는 확진자가 발생한 후 한 달 만에 염기서열이 파악됐다. 바이러스 겉면에 있는 단백질 구조까지 밝혀져 3D 입체 구조까지 예측됐다. 이를 바탕으로 백신 연구와 치료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중이다.

1918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를 달리던 때였다. 연합군은 전력 손실을 내비치지 않기 위해 인플루엔자 소식을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다. 중립국이었던 스페인에서 인플루엔자 소식이 계속 다뤄졌다는 이유로 1918년 팬데믹은 ‘스페인독감’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질병의 이름은 ‘스페인독감’이었지만 연합국 국민들에게는 질병의 출처가 독일로 여겨졌다. 독일군이 연합군 측에 질병을 퍼뜨리는 매개체로 알려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바이엘사의 아스피린이었다. 당시에 존재하던 유일한 진통 해열제 아스피린은 그렇게 바이러스 매개체라는 누명을 썼다.

다시 2020년 유럽, 특히 영국에서는 5G 기지국 방화 사건이 다수 일어났다. 통신사 직원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늘었다. 차세대 무선 네트워크인 5G가 코로나19의 원인이라는 주장 때문이다. 코로나19 증상이 사실은 5G에 의한 증상이며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는 없다는 주장부터, 5G가 개인의 면역 기능을 약화시켜 바이러스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는 주장까지 바이러스와 무선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영국 정부는 강력하게 5G와 코로나19가 무관함을 여러 차례 발표했지만 역부족이었다. ‘5G 음모론’은 소셜미디어와 유명인들을 통해 계속 퍼져갔다. 영국에서 6주째 강제하고 있는 이동제한(lockdown) 조치를 그나마 버틸 수 있게 하는 건 온라인 상의 다양한 매체와 비대면 접촉이다. 그런데 이를 가능케 하는 5G 네트워크를 공격하는 걸 아스피린에 이은 또다른 아이러니다.

현재 인류는 전세계를 괴롭히는 코로나19의 실체를 알아냈을 뿐 아니라, 그에 대한 치료제 및 백신 개발을 위해 힘쓰고 있다.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를 제재할 방법은 없으니, 현재로서 인류는 지금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고 있다. 더 빠르게, 더 많은 시료를 진단할 수 있는 진단법도 개발되고 있다. 지난 100년 간의 과학 발전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한 편에서는 미신에 가까운 내용이 코로나19의 원인, 혹은 치료법으로 자리하고 있다. 무선 통신 네트워크는 면역력을 약화시키지도, 발열 및 기침 증상이 나게 할 수 없는데도 ‘5G 음모론’은 계속되고 있다. 바이러스에 저항하는 인간의 면역체계가 알려져 있음에도 동종요법, 기 치료, 천연 약재 등으로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있다는 이야기들도 인터넷을 떠돈다. 코로나19 백신이 만들어지더라도 거부하겠다는 이들도 적지만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과학적으로도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코로나19의 전파를 막는 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최선을 다해 치료제를 찾고, 백신을 개발하는 노력을 지지하는 거다. 100년 전에도 그랬듯, 바이러스가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말이다. 무선 네트워크 기지국을 불지르거나, 코로나19에 걸리지 않기 위해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금한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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