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숙의 화톳불 옆 소소담담] 9. 인명재처(人命在妻)
[윤명숙의 화톳불 옆 소소담담] 9. 인명재처(人命在妻)
  • 이로운넷=윤명숙 시니어 작가
  • 승인 2020.05.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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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는 한때 동갑내기 여자 친구가 있었다. 모 화랑 사장인 J였다. 화가와 화랑은 공생 관계인 데다 그녀와는 31년생이라는 공감대까지 끈끈하게 깔려있어 꽤 돈독한 사이였다. J는 사교성이 남달랐다. 언제나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했고, 처음 보는 사람도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했다. 그런 친구를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어이없게 잃고 말았다.

2001년 당시 우리는 줄곧 단독주택에서만 살다가 아이들이 분가한 뒤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한 터였다. 한강 변에 위치해 베란다 창문을 열면 눈앞에 강이 펼쳐지고 강물 위에 둥실 떠 있는 밤섬 너머로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여의도가 보였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고, 안개 낀 날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 고즈넉한 풍경 앞에 도무지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했다. 여든이 코앞이건만 여전히 집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남편은 오전 11시에 차를 몰고 작업실로 나갔다가 오후 7시 전후해서 돌아왔다. 덕분에 나는 여유작작 남아도는 시간을 이런저런 모임을 쫓아다니는 데 쓰고, 저녁이면 동네 마트에서 저녁 찬거리를 사서 귀가했다. 그 아파트에서 우리 둘은 그럭저럭 순조로운 노년을 맞고 있었다. 둘 다 건강한 편으로, 나는 부정맥, 남편은 고혈압과 당뇨만 관리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식성 변화였다. 별안간 남편이 단것과 기름진 것을 가리지 않고 먹더니 체중이 그만 87kg에 육박했다. 주치의한테 쓴소리를 듣게 생겨 걱정하던 중 하루는 남편이 묵직한 박스를 여러 개 들고 기세 좋게 들어와 약장수처럼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들어보니 J가 단식을 했는데 체중도 줄고 고혈압과 당뇨도 정상으로 돌아왔단다. 박스에 든 것은 단식 중에 J가 마시며 효력을 본 효소인데,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가 다 들어있어 굶어도 끄떡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평생, 운동이라고는 모르는 양반이 한 시간 이상 걷기 운동도 하면서, 기필코 자기도 단식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팔랑귀 남편의 행복한 파르머시(pharmacy) 콜렉션./사진제공=윤명숙<br>
팔랑귀 남편의 행복한 파르머시(pharmacy) 콜렉션./사진제공=윤명숙

J는 인형처럼 예쁜 얼굴에 화통한 성격이 매력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키는 작고 몸무게마저 상당히 나갔다. 그랬던 그녀가 보란 듯이 살이 빠지니, 남편은 그녀의 말을 100% 믿는 눈치였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은 내 걱정과 잔소리를 그녀에 대한 비난으로 오해하고 결국 자기 고집대로 단식을 시작했다.

15일 계획이었다. 그리고 매일 눈에 띄게 달라지더니 9일 만에 10kg이나 빠졌다. 나는 내심 신기해서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랬는데 왠지 남편은 슬그머니 단식을 중단했다. 이런저런 행사를 구실로 내세워 하차해버린 것이다. 그때엔 남편의 결심이 해이해진 줄만 알았다. 그러나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이상의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처음에 느꼈던 불길한 예감을 남편도 느꼈을 수 있고, 어쩌면 몸이 보내는 미묘한 이상 징후를 본능적으로 감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단식을 중단하고 한 달을 조금 넘긴 어느 날, 우린 이른 저녁을 먹고 한가하게 거실 바닥에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이 기침을 하는데, 평소보다 유별나게 콜록대서 핀잔을 주려 돌아보니, 소파를 등진 채 구겨진 인형처럼 모로 쓰러지고 있었다. 의식이 없었다. 119를 불렀다. 병원 검사 결과 뇌경색으로 판명이 났고, 치료 중 사망할 수도 있다는 동의서에 내가 서명을 하고서야 혈전을 녹인다는 약이 투여됐다. 발 빠르게 움직였어도 쓰러진 지 2시간이 넘어 치료가 시작된 셈이다. 만약 내가 평소처럼 주방에서 꿈지럭대고 있었거나 남편 혼자 놔두고 외출을 했더라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의 목숨이 찰나의 선택에 좌우됨을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몇 시간이 뒤죽박죽 정신없이 돌아갔다. 119를 부르고, 1층에 살던 작은 아들이 뛰어오고, 들것에 실려 간신히 승강기로 이동하고, 허겁지겁 들 것을 따라 차에 기어오르고… 그 경황없는 중에도 아들이 아버지의 맨발을 보고 제집으로 뛰어 들어가 양말을 들고나와 신겨 주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만일 남편이 그날 잘못되었더라면 그 장면은 평생 지울 수 없는 빛깔로 남아있을 것이다.

결국 동갑내기 J는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몇 달 후, 외국으로 출국하던 중 공항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녀의 사망 소식은 하필 우리 부부가 제주도 집에 내려가 쉬고 있을 때 듣게 되었다. 순간 등골이 얼어붙는 듯했다. 저승 문턱까지 갔다 온 남편의 충격은 더 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비행기 편이 없기도 했지만, 서둘러 허둥지둥 올라가기가 내키지 않았다. 그녀의 죽음이 피부로 느껴져 무서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우리 부부는 정붙이고 살던 그 아파트를 떠났다. 아름다운 창밖 풍경이 예전과 달리 서글프고 쓸쓸하게 보여서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죽다 살아난 뒤로 남편의 빈약한 유머 시리즈에는 ‘인명은 재처’라는 새로운 농담이 등록되었다. 마누라 말 안 듣고 친구 따라 강남 가다가 저승까지 따라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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