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의사회'는 기억하고 싶은 특별한 날에 후원을 하면 기념일 후원증서를 보내준다. 국제 인도주의 의료 구호 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는 이번 코로나19 때에도 의료 사각지대의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 의료팀을 파견하고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이 단체는 199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엄마,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우편물이 왔네. 혹시 또?”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돌아온 아들 녀석이 우편물을 건네며 내게 의심의 눈초리로 보냈다.

 

“맞아, 엄마가 네 동생 군 제대 기념으로 국경없는의사회에 후원했어. 5만 원 이상이면 후원증서를 보내 준다기에 잘 간직해두려고” 

 

큰 아들에 이어 둘째 녀석까지 무사히 군 생활을 마쳐 준 것에 대해 조금은 특별한 나 만의 방법으로 기억을 하고 싶었다. 훗날 후원증을 볼 때마다 군 복무기간 중 맘 졸여가며 그저 건강히 제대해 주기만을 기도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것만 같았다. 신체 건강한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라지만 아들을 군에 보내본 엄마들은 그 심정을 이해하리라. 

난 언제부터 인가 이처럼 특별한 날을 기부로 특별하게 기념하곤 한다. 해보니 기분이 좋아져서인데,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철없던 20대에 난 한 어린이재단의 조손가정 아이를 후원한 경험이 있다. 2만 원을 매달 정기 후원했는데 1년여 만에 그만두었다. 계기는 한 통의 편지였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구구절절 너무 힘들다는 어린아이의 푸념이 마치 내게는 그러니 ‘더 도와주세요’라는 글귀로 읽혀 마음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의 속 좁은 행동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일깨워 준 건 백혈병어린이를 후원해온 한 서울대병원의 의사였다.

25 년 전 일이다. 취재를 끝내고 돌아서는데 그 의사는 내게 백혈병어린이 후원회 앞으로 발행된 한 장의 지로 용지를 건넸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 백 기자, 내게 고마워할 겁니다.” 

 

속으로 그랬다. ‘내게 도움을 청하면서 자신한테 고마워할 거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
그런데 그의 말이 맞았다. 나눔의 기쁨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보니 그 기쁨을 알려준 의사가 그리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이후 기분이 내킬 때마다 소액이지만 내가 돕고 싶은 대상을 후원하곤 한다. 해마다 난 처음으로 거리에서 마주치는 구세군 냄비에 후원금을 넣는 식으로 나만의 연말 의식을 치른다. 30만 원이면 시력을 잃을 처지에 놓인 어려운 이웃에게 눈 수술을 해 줄 수 있다기에 안과 병원에 몇 차례 기부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돌아서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세상에 30만 원으로 누군가의 눈을 지켜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야? ”

 

반대로 30만 원이 없어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현실이 가슴 미어지게 슬픔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남편이 그림형제동화 이야기를 소재로 책을 냈을 때는 한 작은 맥줏집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책을 사겠다는 친구와 지인들에게 책값 대신 기부를 요청했다. 그렇게 모은 돈 백여만 원을 한 아동복지 재단에 보냈다. 후원증서를 페이스북에 올리니 기분 좋은 출판기념회였다는 성원의 글이 답지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이란 말은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 남에게 베풀면 자신에게는 물론 자식들에게까지 그 복이 미친다는 말이다. 난  솔직히 그 말을 절대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그러기엔 착한 사람들보다는 못된 짓을 하고도 떵떵거리고 잘 사는 이들이 더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희망의 끈을 놓으려 할 때 또는 마음이 스산할 때 그 말이 위로가 돼주는 건 맞다. 즉문즉설로 유명한 법륜스님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선한 끝은 사라지지 않는다. 비록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을지라도...”

 

5월은 유달리 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등.. 어디 그뿐이랴 누군가는 만남을 기념하고 결혼을 기념하고 생일도 맞을 것이다. 멋진 장소에서 선물을 주고받고 식사를 할 수도 있다. 그것도 좋지만 그 특별한 날을 기부로 더 특별하게 기억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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