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전국적으로 번지기 시작한 3월 초, 아이들 학교는 임시 휴교를 결정했다. 연구소도 최소한의 필수 인력과 코로나19 관련 종사자 외에는 자택 근무를 명령했다.

어영부영 한 주를 보내고 바이러스의 확산이 심상치 않자, 카운티(주) 교육청은 온라인 학습으로 방향을 돌렸다. 매일 온라인 클래스에 들어가서 출석을 확인하고 선생님이 그날 내주는 숙제를 이메일로 보내는 형식이었다. 선생님들도 아이들도 봄방학이 끝나면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교육청에서는 무료급식 대상자인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지역별로 몇몇 학교에서 점심을 픽업하거나, 학교가 먼 경우 스쿨버스 정류장을 지정해 점심 배달을 시작했다. 인터넷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 지역 인터넷 회사에서는 온라인 수업 기간 동안 인터넷을 무료로 제공하고, 컴퓨터나 전화기 등 온라인 수업을 위한 도구가 없는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기기를 대여해줬다. 큰 아이 선생님은 우리 집 우체통에 큰 아이의 생일카드를 남겨두고 지나갔고, 작은 아이 선생님은 자기 사진이 담긴 엽서를 보내왔다.

봄방학이 끝나고 주정부에서는 이번 학기 전체를 휴교하기로 결정했다. 5월 말이면 여름방학이 시작되는데, 앞으로 꼬박 2개월 동안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한다는 이야기였다. 봄 방학 전에 느슨하던 선생님들은 바짝 고삐를 쥐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교장선생님은 텅 빈 학교에 홀로 나가 스누피 인형을 앞에 두고 성조기를 바라보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그날 생일인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축하의 인사를 건네는 유튜버가 됐다. 학교는 이번 학기 학업 성취도 평가를 온라인으로 한다는 안내문이 발송했고, 이때부터 ‘구글 클래스룸’과 화상회의 서비스 ‘줌(ZOOM)’을 이용한 선생님과의 만남이 시작됐다. 초등학교 2학년인 큰 아이는 담임 선생님과 1번, 수학과 읽기 선생님과는 일주일 2번의 줌 미팅을 진행한다. 작은 아이는 반 전체 미팅과 선생님과 1:1 미팅을 일주일에 각각 1번씩 한다. 읽기·쓰기·사회·과학·수학 다섯 과목 숙제를 킨더가든(유치원생)인 작은 아이부터 큰 아이까지 해야 한다. 줌 미팅은 숙제를 잘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수준이다. 한국처럼 EBS가 동원되고, 수업시간이 정해진 체계적인 온라인 수업을 기대하기 어렵다.

문제는 일주일에 3~4일 자택 근무를 해야 하는 나에게 생겼다. 매일 아침 9시까지 자택 근무인지 연구소 출근인지를 서버에 입력해야 하고, 아침부터 날아오는 이메일과 밀렸던 트레이닝을 받는다. 쌓아놓은 데이터로 논문을 쓰려고 자세를 잡으면 바로 아이들이 불러댄다. 부서에서 1달에 1번 나오는 소식지에는 아이들이 있는 경우 1시간씩 성취할 프로젝트를 주던지,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라고 적혀 있다. 현실감 없는 해결책이다. 컨퍼런스 콜(conference call, 전화 회의)이나 웨비나(webinar, 웹상 세미나)가 있을 때는 문을 잠그고 문 앞에 ‘방해하지 말 것’이라는 쪽지를 붙였다. 온라인 수업에 적응하는 아이들과 자택 근무에 적응하는 나 사이에는 또 다른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식사도 문제다. 눈 뜨자마자 배고프다는 아이들. 나는 일하다가 중간에 밥 차리고 한 숟가락도 뜨지 못한 채 오후 온라인 회의를 들어간다. 설거지와 뒷정리는 저녁으로, 청소와 빨래는 주말로 미뤄버렸다. 일이 끝나면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과목별로 스캔하고 구글 클래스룸에 각각의 파일을 올리는데 에너지를 쏟다 보니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여 버렸다. 두 번째 주부터는 작전을 바꿔 새벽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고,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아빠랑 놀게 내버려뒀다. 최소한 새벽 6시부터 11시까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했다. 그래도 마음속에는 꼭 근무 시간을 다 못 채운 것 같은 죄책감이 들고, 목표에 대한 성취도는 떨어지고 있다.

온라인 수업을 할 수 있는 환경, 자택 근무를 할 수 있는 직업과 안정적인 경제상황은 모두에게 주어진 게 아니다.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 카운티와 선생님들은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자택 대피령이 내려진 환경에서도 일해야 하는 사람들과 경제적으로 힘든 부모에게 학교의 역할인 ‘교육’이라는 짐까지 생기는 건 미국 사회에서 가혹하다.

2주 전, 바로 옆 다른 카운티 교육청에서는 학업성취도를 3월 초 학교가 문을 닫기 전까지의 자료를 토대로 평가하겠다고 발표했다. 전체 수업일수가 채워지지 않았지만, 5월까지 온라인으로 수업 일수를 채우는 대신, 3월 초에 학기를 끝내 버렸다. 이유는 교육 기회 불평등 때문이었다. 시범적으로 몇 주 온라인 수업을 진행해 본 결과, 수업 참여와 과제 제출 과정이 순조롭지 못했고, 접근성도 떨어져 과감하게 결정했다. 교육의 불평등을 조장하느니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사라 파칵(Sarah Parcak) 앨라배마주 버밍햄 대학 지질학 교수는 초등학교 1학년인 자녀를 온라인 수업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수업을 따라가며 지친 자신과 남편의 정신건강, 아이의 행복을 위해 학교의 방침을 따르지 않겠다고 한다. 학습의 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고, 인터넷 영상을 보고, 부모가 하루 종일 옆에 붙어서 학습지도를 하는 2달의 시간은 어느 누구에게도 행복하지 않다는 거다. 직업이 있고, 인터넷이 되고, 뒷마당이 있고, 좋은 책과 학습 도구들을 갖춘 자신의 상황은 특권이며, 실직하고 음식이 부족하고, 질병이 있거나, 인터넷이 없는 사람들에게 온라인 수업은 공평한 기회가 되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자택 근무를 마친 후, 숙제 안 하고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컴퓨터 앞에 앉히고, 저녁을 준비하며 “숙제했어?”라는 말을 계속 반복한다. 과연 아이들은 지금 뭘 배을까? 하루 종일 컴퓨터를 보며 숙제 완료를 목표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 과연 행복할까?

코로나19로 인한 교육의 기회 불평등 앞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구글 클래스와 줌에 묶여버리는 것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게 더 맞는 방법이 아닐까. 팬데믹(세계적대유행)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경험하며 바이러스와 맞서는 이들에 대해, 경제적으로 힘든 이들에 대해, 마스크가 왜 필요하고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코로나19 이후의 우리의 삶에 대해 함께 생각하며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큰 아이는 코로나19로 손꼽아 기다리던 생일파티를 잃어버렸다. 코로나 세대로 불릴 이 아이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우리는 무엇으로 채워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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