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나묵직곰양 블로그(http://blog.naver.com/anne2anne) 글 이미지 캡쳐
[여인옥의 책읽기 삶읽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식을 양육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뒤늦은 나이에 아이를 둘씩이나 낳아 기르고 있는 나 역시 양육의 부담을 혼자 짊어지느라 히스테리 증상을 겪은 일도 있었다. 나같이 평범한 아이들을 둔 부모가 그럴진대 장애아를 둔 부모들의 삶의 무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바로 옆에 장애아 학교가 있다. 가끔 학교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등하교 하는 그 학교 학생들을 마주치곤 한다. 그러면 나는 일부러 무심한 척한다. 혹시라도 나의 시선이 잘못 읽혀져 그들의 마음에 상처가 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이러한 나의 마음 저 깊은 곳에는 나의 아이들이 ‘정상’이어서 다행이라는 이기적 안도감이 숨어 있다.

일본 만화가 야마모토 오사무의 ‘도토리의 집’에는 1960년대 태어난 농중증장애아들과 그 가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중 한 어머니는 장애로 인해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아들이 엄마가 옷을 갈아입히려 하자 최선을 다해 몸을 들어 올리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며 아들이 결코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님을, 자신에게 주어진 생을 살아가려 전력투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또 다른 주인공인 키요시는 자폐아다. 돌에 집착하는 키요시는 어느 날 아버지의 제과점 빵 쟁반을 돌투성이로 만들어 놓아 아버지에게 심한 매질을 당한다. 가족들도 키요시 양육에 지쳐 그를 장애아 보육시설에 보내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키요시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엄마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비치는 다리 난간에 키요시가 돌들을 올려놓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아들의 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자아 안에 갇힌 존재로 보였던 키요시가 자연과 소통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키요시는 돌들에게도 아름다운 노을을 보여주고 싶어 돌들을 난간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또한 아버지가 만든 맛있는 빵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돌들을 빵 쟁반에 담아놓았던 것이었다. 돌멩이나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무가치한 존재로 여겨졌고 돌처럼 단단하게 자신을 차단한 것처럼 보였던 키요시.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열린 마음으로 자연과 대화하며 자연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 장애아들은 한 인간으로 성장하고 당당한 사회인으로 자라났다. 이러한 배경에는 장애아 학교 교사들의 희생과 노고가 있었다.

키요시가 다니는 학교의 야스다 선생은 이미 오래 전 졸업한 제자 시바야마 츠토무가 직장 생활을 그만둔 채 폐인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집을 방문한다. 20대의 청년인 제자는 자신의 잘못으로 같은 장애인 사업장의 여성 동료가 다치게 되자 죄책감에 사로 잡혀 퇴행 현상을 겪게 된다. 츠토무의 어머니는 야스다 선생에게 자신의 소원은 아들보다 오래 사는 것, 아들보다 딱 하루 더 사는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츠토무를 통해 장애아에 대한 교육은 졸업과 동시에 끝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 학교 측은 학부모들과 함께 힘을 합쳐 농중복장애인 공동작업장을 만들게 된다.

각계의 따뜻한 지원을 통해 설립된 사이타마현 오오미야시 작업장은 ‘도토리의 집’이란 이름을 갖게 된다. 도토리와 같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보이는 장애인들이 함께 힘을 합쳐 자활과 자립을 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다한다는 의미로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이 작업장에서 장애아 학교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은 별사탕과 수제엽서를 만들고 폐품을 회수한다.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진 ‘도토리의 집’(총7권)은 일본 유명 만화가 야마모토 오사무가 무려 10년에 걸쳐 만든 것으로, 일본 문부과학성과 후생성, PTA 전국협의회 추천작이다. 이 책의 애니메이션 영화는 일본에서 120만 명의 관객을 모으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나치 독일 시절 유태인 생존자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 ‘쥐’와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을 봤을 때 느꼈던 감동과 비슷했다. 장애인들의 사회적기업이 늘고 있는 요즘, 그에 대한 이해를 더해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야마모토 오사무 지음/한울림스페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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