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최용민 머니투데이 기자

원경선 선생 (1914년 4월 17일 ~2013년 1월 8일)


[alert style="green"]? 1월8일 '유기농의 아버지', 풀무공동체의 설립자, 원경선 선생이 타계했습니다. 향년 100세. 1914년 평안남도 중화군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이 끝난 1955년 경기도 부천에 풀무원공동체를 설립해 전쟁고아로 떠돌던 아이와 청년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장남인 원혜영 국회의원(전 부천시장) 등 자신의 2남5녀를 그들과 함께 키웠지요. 당시 원 원장은 공동체로 찾아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풀무가 못 쓰는 연장을 새 연장으로 만들어주듯 우리 농장 풀무원도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할 거야.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남도 생각할 줄 아는 새로운 사람으로 말이야." 2006년 9월 머니투데이 지면을 통해 소개됐던 원 선생의 말씀을?이로운닷넷이?재취합해?게재합니다.[/alert]

'평화 씨앗' 뿌리는 현역 농군
?"먹을것이 평화의 기초…굶주림 없으면 전쟁도 없어"
원경선 선생은 누구? '인간 존중, 생명 존중'의 정신으로 기업을 세우다?

2006년 9월 18일, 저는 원경선 평화원 원장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경숙 "안녕하세요.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라고 합니다."

원경선 "머니, 뭐라고요?"

이경숙 "머니투데이라는 경제일간지 기자입니다."

원경선 "경제일간지요?"

이경숙 "인터뷰 부탁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좋은 일하면서 돈 버는 삶'에 대한 인터뷰입니다. 풀무원을 설립하신 철학, 현재 환경정의 와 한삶회를 이끄시는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내일 호암교수회관 행사에 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시간 없으시면 괴산으로 찾아 뵐게요.(당시 원경선 옹은 괴산국 천청면에서 공동체를 이끌고 계셨습니다.)"

원경선 "뭐라고요?"(귀가 잘 안 들리는 듯)

이경숙 "좋은 일하면서 돈 버는 것...(반복)

원경선 "전 돈 버는 거, 몰라요. 경영도 몰라요. 풀무원으로 (사업)한 건 우리 아들이에요. 경영에 대해선 할 말이 없어요. 경제지에서 들을 게 없을 거에요."

이경숙 "새로운 가치관에 대해서 우리 사회 어르신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요즘 돈벌이 되면 뭐든 하겠다고 눈 먼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한테 돈과는 다른 가치가 있다는 걸 말씀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원경선 "제가 말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먹을 것 없는 사람 먹을 것 주고 일 할 것 없는 사람 일 주려고 하는 일인데..."

이경숙 "바로 그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저희 독자들한테 전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

원경선 "알았어요. 기사에 거짓말은 쓰지 마세요."

이경숙 (속으로, 아싸~)"감사합니다!!!"
다음날인 2006년 9월 19일, 저는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으로 찾아가 원경선 선생을 만나뵈었습니다. 돈, 자본주의, 평화, 나누는 삶에 대해 원 선생이 하신 말씀을 전해드립니다.'평화 씨앗' 뿌리는 93세 현역 농군

[쿨머니피플]<4>원경선 풀무원 설립자ㆍ평화원 원장

원경선 선생. 사진 : 최용민 머니투데이 기자
검은 반점이 손등을 온통 뒤덮어 반쪽 남은 손톱이 반달 같이 희어 보인다. 엄지, 검지, 중지 손끝엔 손톱 없이 생살만 길쭉하게 나와 있다.

80여년 일한 농부의 손, 원경선(2006년 당시 93세) 평화원 원장의 손이다. 연 매출 3700억여원(2005년 기준)?기업, 풀무원의 뿌리가 그 손에서 뻗어 나왔다. ‘좋은 일하면서 돈 버는 사람, 쿨머니 피플’의 인터뷰 청탁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난 돈 버는 것 몰라요. 경영도 몰라요. 풀무원으로 사업한 건 우리 아들, 원혜영(국회의원, 풀무원 창업가)이에요. 경제지에서 나한테 들을 말이 없을텐데...”

그러나 그는 일제 시대에 무일푼으로 일어선 청년 농장주, 멋쟁이 사진사, 베이징에 진출한 인서사(인쇄소) 사장이었으며 해방 후엔 당시 드물던 영어실력으로 돈 깨나 벌던 토목건축사업가였다.

그러던 그가 가난하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풀무원 공동체’를 만들고 유기농업을 시작한 건 이미 불혹을 넘긴 때였다.

지금 그는 아흔살이 넘은 고령에도 환경정의 이사장이자 국제기아대책기구 이사로서 환경 운동, 평화 운동의 선두에 서 있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의 ‘평화원’ 공동체도 이끌고 있다.

“먹을 것 없는 사람, 먹을 것 주고, 일 할 데 없는 사람, 일 주려고 한 일이에요.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그것뿐이에요.”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9월 19일 오후, 장수문화포럼 발대식 참석차 서울에 온 그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만났다. 90여년 삶의 지혜가 담긴 그의 이야기는 1시간 20여분의 인터뷰 시간 안에 다 담기지 못해 다음날 30여분의 전화 인터뷰로까지 이어졌다. 육성을 그대로 옮긴다.

◆돈에 대해=나도 중국에서, 여기에서 사업해봤어. 그땐 내 신앙이 잘못되어서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던 때야. 그걸 깨달은 뒤엔 사업과 선을 긋고 1953년도부터 부천에서 농장을 시작했어.

그 당시에 '하우스 보이'라고 전쟁 끝나고 떠도는 아이들이 많았어. 얘들한테 돈 몇 푼 줘서 보낼 수도 있어. 그런데 얘들을 네다섯 명씩 받아들여서 농장 일을 시켰어. 그 아이들한테 '물질 모르면 사람 구실 못한다, 잘 살려면 네가 네 손으로 네 밥벌이해야 한다'고 했어.

저 지난해인가. 어느 아파트에서 아이 셋 죽이고 저도 죽은 여자 있었지? 빚 3천만원 때문에. 한 놈 던지고, 두 놈 던지고 마지막 놈 던지는데 아이가 '엄마, 나 살고 싶어'했다는 거야. 그 엄마 마음이 어땠겠어? 물질은 그렇게 중요한 거야.

물질이란 건 우리한테 좋은 것이야. 생명이야. 그걸 알아야 해. 나한테 생명이고 좋은 것이면 남한테도 그런 거야. 밥은 생명이야.

그런데 밥 열 그릇 한꺼번에 먹으면 어떻게 돼? 죽지? 생명인데 죽는단 말이야. 자기도 죽고 남도 죽는 것이야.

나한테 밥 한 그릇이 있는데 내가 재간이 좋아서 백 그릇 차지해 은행에 갖다 놓으면 다른 사람이 굶어. 그게 다 내 책임인 거야. 내 생명만큼 저 사람 생명도 귀한데 내가 저 사람 밥을 은행에 넣어두면 내가 그 사람 죽이는 거야.

우리가 지금 물질이 귀하다는 것만 가르치지 사랑이 중요하다는 건 가르치지 않아. 물질이 내 생명도 되지만 저 사람의 생명도 된다는 걸 알아야 해.

◆'자본주의'에 대해= 지금 우리한테 돈이 모자라느냐? 아니야. 분배가 덜 되어서 그런 거야.

돈이 모이면 익숙해져버려. 돈 많은 부부들이 스와핑하는 걸 봐. 그건 돈 많이 벌어서 짐승되겠다는 것, 사람 이하로 떨어지겠다는 것이에요.

갈릴리 근처에 요단강과 사해가 있어. 요단강에선 생명이 사는데, 사해에선 못 살아. 지대가 낮아서 물이 고이기만 해서 염해가 된 거야. 거기엔 피라미 새끼 하나 못 살아. 흐르게 하면 나도 살고 남도 살지만 쌓아놓으면 나도 죽고 남도 죽는 거야.

내가 가족 모아놓고 유언으로 녹음해둔 게 있어요. 나는 유산 으로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이 사업(평화원) 위해 너희한테 돈 내놓으라고 할 것이다, 했어요. 내가 유산 남겨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너희들 밥 세 그릇씩은 보장하고 있다고 말이지.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개인 이기주의 때문에 망하는 거야. 내가 러시아에 갔을 때 보니까 공산주의 시절에 99%가 국영 농장이고 1%가 자영농장이야. 그러면 1% 땅에서 얼마가 나와야 하지? 계산대로면 1%가 나와야지? 그런데 놀라지 말아요. 감자만 보면 64%가 1% 땅에서 나와요. 전체 생산물의 27%가 자영농장에서 나와. 자영농장에선 그만큼 더 일한 거야.

사회주의가 이념은 좋은데 실천이 그렇게 안 돼. 균등분배하자고 해놓고 일은 안 해. 개인이기주의가 자본주의도 안 되고, 사회주의도 안 되게 하는 거야.

예수 말씀대로 나 먹고, 너 먹고 하면 되는거야. 50년 동안 내가 그렇게 했거든. 누가 뭐라고 하면 나는 한번 와서 보라고 해. 이렇게 살면 뺏어갈 것도 없고 뺏어갈 필요도 없어.



"먹을것이 평화의 기초…굶주림 없으면 전쟁도 없어"

원경선 선생(오른쪽)과 인터뷰하고 있는 이경숙 기자. 사진 : 최용민 머니투데이 기자

◆'평화'에 대해서=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알지? 그 사람이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무슨 소리를 했는고 하니, '우리가 쏘아올린 총알, 진수시킨 전함은 궁극적으로는 먹지 못한 사람의 돈을, 헐벗은 사람의 옷을 도둑질해서 만든 것이다.'

한국전쟁 후에 미국이 우리한테 돈 줘서 먹고 살았는데 지금은 부시가 그걸 전쟁에 갖다 써. 군사비의 반만 이라크, 북한에 주면 문제 다 해결됐을 거야.

현대에서 초대해서 금강산에 처음으로 육로로 갔을 때 일이야.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CNN에서 와서 인터뷰를 하자고 왔어. 38선 육로 관광을 온 소감을 말해달래. 38선을 볼 때마다 허리가 꽉 조인 느낌이 든다고 그랬어. 그랬더니 어떻게 철책선을 없앨 수 있겠냐고 해.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

'미국이 할 탓이야. 이라크한테 하듯 하면 안 돼. 이라크든, 북한이든 지금 쓰는 군비의 반만 먹고 살라고 갖다줘봐라. 그러면 그날로 해결될 것이다.'

미국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미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져. 무서운 일이에요. 이거 내꺼다, 내꺼다 하는 사람들 내버려두면 망하는 거야. 전 세계 가치관이 전부 다 전도됐어.

난 농사꾼이니까 가을 추수할 때까지 먹을 것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나눠 먹어. 50년 동안 문을 잠그지 않고 잤거든. 주변에 굶주리는 사람이 없으니까 도둑 맞은 게 없어. 훔쳐가려 해야 테레비밖에 없는데 요즘 도둑은 테레비도 무거워서 안 가져간대.

먹을 것이 평화의 기초야. 뭘 해도 먹을 것이 없으면 안 되잖아? 굶주림이 없으면 도둑이 없어지고, 그러면 테러와 전쟁이 없어져.

군대가 왜 생겼는지 알아? 청동기 시대에 도구 발전하면서 생산량이 늘고 그걸 다른 사람이 훔쳐가지 않도록 지키느라 생긴 거야. 도둑이 없어지면 군대가 없어져. 평화가 오는 거야.

◆ '나누는 삶'에 대해=내가 남과 나누라는 건 나와 내 가족을 위하지 말라는 게 아니야. 자기 가족만큼 남도 아끼라는 것이지.

내가 말하는 공동체는 공간적인 공동체를 말하는 게 아니야. 그런 공동체는 어려운 면도 있어.

혜영이가 중학교 때 누나한테 그랬대. "누나, 감자밥을 먹어도 우리끼리 살 수 없을까."

공동체생활이 좋다고들 하지만 자기 먹을 것 내놓고 따라오라고 할 때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어. 모여서 산다는 건 별 의미 없어.

요즘 내가 말하는 공동체는 인류 공동체야. 우리란 나, 가족, 친척, 국민, 더 넓게 하면 세계가 되는 것이야. 우리란 말이 뜻하는 건 63억명이야. 그 중에 10억명이 굶고 2초에 한명이 죽고 있어. 우리가 앉아 몇 마디 나누는 동안 벌써 10여명이 죽은 거야.

이런 현실에서 너 혼자 먹으려고 쌓아두지 말고 나눠주라는 것이야. 다섯사람이 한사람만, 한 사람당 20%만 내어놓으면 53억명이 10억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거야. 하루에 8시간 일에서 100만원 버는 사람이라면 20%만 더 일하면 돼. 아니면 100만원 중에 20%만 나누면 돼.

나, 내 가족이 헐벗도록 다 주라는 얘기가 아니야. 나, 내 가족만큼 남, 남의 가족도 생각하라는 얘기야.지금 세계가 물욕 때문에 퇴화하고 있고, 못 사는 자가 나와. 진리와 사랑 안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면 그런 일은 없어질 거야.

그는 요새도 논밭을 갈기 위해 포크레인에 올라탄다. "죽을 때까지, 일할 힘이 있을 때까지 나 먹을 것은 내가 벌 것"이란다. 30여년 이상 지켜온 현미, 유기농 식단은 그의 건강의 벗이다. 그는 17일 열린 '장수문화포럼'에서 "앞으로 10년은 더 살아야겠다"고 말해 청중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

한때 '저는 구원 받았으니 하나님께서 언제든 불러주십시오'하고 기도했다던 그는 지난해 부정맥으로 병원에 열흘 입원한 동안 성경을 읽으며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예수의 사명은 자기 구원에서 그치지 않았으며, 사명의 끝은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데에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그가 10년 더 살고 싶어진 이유란다.

△원경선 평화원 원장 약력=1914년 평안남도 중화군 출생. 황해도 수안 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농업에 종사. 1955년 경기도 부천에 풀무원공동체 설립. 1961년 거창고등학교 재단 이사장. 1990년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부회장 및 경실련 고문. 1992년 환경정의시민연대 이사장. 1995년 '글로벌 500' UNEP 환경상 수상. 국민훈장 백동상(1997년) 및 인촌상(1998년) 수상. 관련 서적으로는 <생명을 풀무질하는 농부(유재현 저)>, <아름다운 농부 원경선 이야기(송재찬 저)>



↑풀무원 설립자인 원경선 평화원 원장과 아내 지명선 여사. 사진 : 풀무원 제공
원경선 선생은 누구?

'인간 존중, 생명 존중'의 정신으로 기업을 세우다

충북 괴산면 청천면에 가면 두 개의 큰 농장이 있다. 7만여평짜리 풀무원 유기농 농장과 6천여평짜리 '평화원' 공동체가 그것이다.

한 곳은 영리, 다른 한 곳은 비영리이지만 두 농장 모두 원경선(당시 93세) 풀무원 설립자 겸 평화원 원장의 '인간 존중, 생명 존중' 정신을 따른다.

그 정신은 풀무원이라는 이름에도 담겨 있다. '풀무'란 쇠를 달구는 도가니에 불이 잘 붙으라고 바람을 넣어주는 기구다. 풀무질이 좋으면 불길이 세어져 쇠를 잘 달굴 수 있다. 그 불길로 못 쓰던 쟁기나 낫을 새것처럼 만들어낼 수 있다.

중년이던 원 원장은 당시 풀무원 농장으로 찾아든 전쟁 고아, 불량배들한테 이렇게 말했다.

"풀무가 못 쓰는 연장을 새 연장으로 만들어주듯 우리 농장 풀무원도 우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게 할 거야.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라 남도 생각할 줄 아는 새로운 사람으로 말이야."

그는 장남인 원혜영 국회의원(전 부천시장)을 비롯해 자신의 2남5녀를 떠돌던 아이, 청년들과 함께 키웠다. 배화여고를 졸업해 보통학교(현재의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원 원장을 결혼상대로 선택할 정도로 깨어있던 신여성, 지명희(당시 89세) 여사가 그 길을 함께 걸었다.

이 정신을 바탕으로 1981년 작은 야채가게를 시작한지 3년만인 1984년 5월, ㈜풀무원식품이 설립됐다. 2005년 결산 풀무원의 매출은 3700억원, 계열사와 관계사 매출을 합친 총 매출은 7000억원을 넘어선다.

풀무원의 성공비결은 '신뢰'에 있다. 풀무원이 인공화학조미료(MSG), 합성 보존료, 합성 착색료를 일체 첨가하지 않는다는 3무(無)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20여년의 세월 동안 까다로운 주부 고객 사이에서 검증되면서 풀무원 제품의 믿은이 높아진 것이다.

1993년부터 풀무원은 매출의 0.1%을 지구사랑기금으로 적립한다. 환경단체와 구호단체가 주요 기부처다. 그외 하늘정원 조성사업, 결식아동 돕기, 북한 지원, 자원 봉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 이 글과 사진의 저작권은 머니투데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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