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2주일 이내에 유난히 대상포진에 걸린 분들이 진료실에 많이 오시네요. 대상포진은 어렸을 때 걸렸던 수두로 인해, 수두 바이러스가 몸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지면 몸의 특정 신경절을 따라 발진, 포진, 신경통이 나타나는 병입니다. 마치 띠를 두른 모양으로 포진이 나타난다고 하여 '대상포진(띠모양포진)'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성인이 되어 면역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우선 노화! 70대 이상의 고령자들에게 대상포진이 잘 생깁니다. 또 이분들은 대상포진 후에 신경통이 영구히 남는 경우도 있어서, 대상포진은 고령자들에게 아주 무서운 병입니다. 또 항암치료나 암 그 자체도 면역력을 떨어뜨립니다. 스테로이드 치료로 면역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나 가장 흔한 이유는 과로입니다. 20~50대의 별다른 기저 질환이 없는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면역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과로'가 단연 일등이지요.

이 대상포진은 유행하는 계절이 따로 있는데요, 바로 초겨울부터 초봄까지! 특히 추운 겨울이 대상포진이 많이 발병하는 시기입니다. 어떤 이들은 원래 수두 바이러스가 추위를 좋아해서 겨울철에 수두도, 대상포진도 활개를 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의 면역력이 떨어져서 대상포진에 잘 걸리게 되고, 대상포진의 물집이 터지면서 새어나온 수두 바이러스가 아직 수두에 걸리지 않은 아이들에게 옮아서 수두의 유행이 시작된다고 하기도 합니다. 다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말입니다. 어쨌든 원래 '추운 겨울'이 대상포진 위험시기라는 겁니다. 그런데 올 겨울은, 기록적으로 춥지를 않았기에! 대상포진에 걸리는 분들이 예년에 비해 확실히 적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3~4월이 되어 좀 바빠지면 면역력이 떨어질까 했더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평년 같지 않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아직 날씨는 쌀쌀한데 새학기다 새출발이다 해서 모두가 긴장하고 생활이 분주해지는 3월이어야 했는데 말이죠. 그래서 저는 올해는 개학도 미뤄지고 약속, 모임도 줄어 대상포진이 많이 안 생기고 지나가다 보다 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요 며칠 전부터 매일 대상포진에 걸린 분들이 살림의원 진료실에 오시는 거예요. 그분들도 긴가민가 했습니다.

"제가 계속 집에서 쉬고 있거든요. 무리라고는 뭐 전혀 안 했는데요?"

"설마 대상포진일까요? 요즘 아무 약속도 안 잡고 있는데요."

"에? 뭘 했어야 걸리죠~ 하던 운동도 암 것도 안 하고 있는데요."

저도 처음엔 긴가민가했습니다만, 대상포진 환자분들을 차례로 만나다 보니, 어느 순간 갑자기 이해가 되었습니다. 

과로만 안 한다고 면역력이 높아지는 게 아니구나. 아, 코로나19로 인해 일하지 않는 것이 면역력을 지키는 것이 아니구나. 원래의 생활 패턴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면역력을 더 떨어뜨리는 문제구나! 뭘 안 한 것, 아무 것도 안 한 것이 바로 문제구나! 

물론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가 걱정되는 마음도 면역력을 떨어뜨릴 것이요, 조그만 증상에도 혹시 코로나일까 싶어 조마조마한 불안한 심정도 면역력을 떨어뜨리겠지만, 놀랍게도 우리 몸은 항상 하던 적정한 노동과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도 면역력이 떨어지고 있었다는 겁니다. 치료제도 예방백신도 없는 코로나19,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리고 바로 그 면역력을 위해서는 일상을 잘 유지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요즘 진료실에서 “지쳤다”, “지겹다” 하시는 분들을 붙잡고 제가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방역을 잘하면 잘할수록 코로나19는 오래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방역이 실패해서 한 순간 감염이 들이닥치면 의료 체계가 붕괴됩니다. 환자가 갑자기 많이 발생하면 환자가 적절히 진단이 안 되고, 중증환자 또는 경증환자 선별이 안 되고, 입원실이나 중환자실의 분배가 안 되어 우리나라 대구의 초창기나 이탈리아처럼 입원실이 나기를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료 체계가 과부하가 걸리지 않고, 의료 자원이 잘 분배될 수 있도록 코로나19 환자가 조금씩 꾸준히 발생하도록 해 가능하면 이 사태를 오래오래 끌고 가는 것이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가장 잘하는 방식이라는 것이죠. 가장 사망률을 낮추는 방식입니다. 

무증상 감염이 많고 잠복기가 긴 이런 바이러스의 특성상 완전히 차단하거나 발생률 제로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몇 개월의 기간이 더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제는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충분히 주의하면서도, 우리의 일상을 조심스럽게 되찾아 가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면역력을 지키는 또 다른 길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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