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안일했던 미국과 유럽

정확히 2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미국 연방 정부의 공중보건위생 총책임자인 제롬 애덤스 공중보건서비스단 단장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는데 별 효과가 없으니 일반인은 굳이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며 트위터에 공개적으로 글을 올렸다. 그 후 코로나19 방역을 총괄하는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천으로 된 마스크라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고 공식발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달이었다. 

마스크 착용 여부를 두고 중국, 한국, 대만 등의 아시아 국가와 유럽 및 북미 국가는 선명하게 입장이 갈렸다. 코로나19에 먼저 데인 아시아 국가들이 손 씻기와 더불어 마스크 착용은 가장 기본적인 방역 대책임을 입증했지만, 문화적 차이를 들며 마스크 착용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마스크는 환자, 범죄자들이나 쓰는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있어서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한편 오랫동안 굳어져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던 습관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무섭게 늘어나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CNN은 마스크를 쉽게 확보하지 못하는 미국인들을 위해 수제 마스크를 만드는 방법을 제시했다. 천, 가위, 바늘, 실로 만드는 완전히 아날로그 방식의 마스크다, 미국의 상황이 어떤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출처=CNN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의 책임 소재가 중국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WHO가 정한 공식 명칭 코비드-19 대신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기를 고집했다. 미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질 때를 대비해 정치적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탈출구를 미리 마련해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확진자가 30만 명을 넘어서고 사망자가 1만 명에 접근하자 낙인효과를 노린 중국 바이러스라는 명칭은 쑥 들어가 버렸다.  

중국 정부가 확산일로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유럽과 미국의 언론은 발생 원인과 전파 과정을 분석하고 방역 상황을 상세히 다뤘다. 스포츠 경기 스코어를 실시간 중계하듯이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어나는 것을 보도하면서도 조만간 자신들에게도 닥칠 재앙이라는 위기의식은 거의 갖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중국에 의한 중국의 전염병이라는 인식이 만들어낸 방심이었다. 야생동물을 닥치는 대로 먹고 공중위생이 형편없는 중국인들이나 걸리는 병이라며 안이하게 생각했고, 진원지인 우한시를 포함해 인구 5천만 명의 후베이성 전체를 봉쇄하는 중국 정부 극단적인 방역 조처도 전체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로 치부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 국경을 넘어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같은 다른 아시아 지역으로 확산하자 아시아의 전염병이라는 편견이 굳어졌다. 매를 먼저 맞은 아시아 국가들은 각자의 상황에 맞는 대책을 수립하고 조속히 시행해서 방역에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한편 그것 또한 서구의 시각으로는 아시아의 전염병에 최적화된 아시아식 대책에 불과했다. 실효성이 있든 없든, 합리적이든 아니든 아시아 국가에서만 적용 가능한 대책이라는 안이함의 대가를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지금 톡톡히 치르고 있다.

현재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현황을 보면 상위 10개국은 중국과 이란을 제외하면 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민간인 피해를 보는 상황이 되자 뒤늦은 반성이 뒤따른다. 슈피겔지의 슈테판 슐츠 기자는 <치명적인 오만 Tödliche Arroganz>이라는 칼럼에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유럽 국가들의 행태를 '유럽의 오만'(europäische Arroganz)으로 정의했다. 아시아에 대한 유럽의 편견 때문에 아시아 국가들의 성공적인 방역 대책을 신속히 도입하지 않은 것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다며 만시지탄을 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서구의 ‘인식전환’

유럽의 자기반성에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구체적으로 개념화한 오리엔탈리즘이 재소환되었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인식론적 틀이다. 비록 에드워드 사이드는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이라고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했지만, 오리엔탈리즘의 본질은 동양의 타자화, 대상화다. 동양을 서양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질적인 대상으로 간주하니 아시아 국가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그 사회 안에서만 효능이 있고 보편성을 갖지 못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힌다. 그런 편견이 만들어낸 부작용은 전염병이 유럽과 북미 대륙에 창궐하는 지금 잘 드러나고 있다.

독일 슈피겔지의 '치명적인 오만 Tödliche Arroganz' 칼럼. 이미 성공적으로 방역을 한 한국, 대만, 홍콩의 사례를 일찍 배웠다면 유럽의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는 훨씬 덜 심각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포린 폴리시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데 유교가 도움을 준 것이 아니다 Confucianism Isn’t Helping Beat the Coronavirus>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는데 한국의 방역 대책이 성공을 거둔 것은 유교 문화가 아니라 성공적인 리더십 때문임을 역설했다. 뒤집어서 해석하면 유럽과 미국은 한국이 성공적으로 방역을 하는 이유를 유교에서 찾은 셈이다. 전체주의 사회가 아니고 민주주의 사회이면서도 시민들이 정부의 조치를 순순히 따르고, 확진자 파악을 목적으로 정부가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에도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자 유교 문화가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해 버렸다. 

한국이 방역에 성공한 원인을 잘 분석해 배울 점은 빨리 배우겠다면서 성공 요인을 엉뚱하게도 유교 문화에서 찾는다면 한국만이 가진 특수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회를 타자화, 대상화하면 차별성에 주목할 뿐 양자를 연결하는 보편성에 시선이 잘 가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서구 언론 매체의 보도 양상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방역에서 한숨 돌린 독일의 경우 아시아 국가의 방역 상황을 보도하는 독일 언론의 시각이 달라졌다. 도이체 벨레는 베트남 정부가 10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인구 1만 명의 도시에 완전 봉쇄조치를 한 것을 두고 열악한 의료 시스템, 부족한 방역 물자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논조로 보도했다. 이전 같으면 사회주의 사회니까 가능한 강압적 조치였다고 했겠지만 이제는 베트남 체제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현지 상황을 기준으로 적절한 조치였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과거의 대유행 전염병과 달리 코로나19는 각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 전면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의 변화도 불가피하다. 세계가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얽혀있어서 전염병의 피해는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범지구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일상의 모든 영역에 변화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인식의 전환도 가져오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코로나19가 야기할 사회적 변화를 체감하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인식의 전환은 이미 피부에 와 닿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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