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없는 학교, 손님 없는 상점, 노동자 없는 공장, 관객 없는 극장, 관광객 없는 명소…. 몇 달 전까지 사람들로 넘쳐났던 곳들이다. 지금은 걱정과 한숨이 가득하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멈춰 세웠다. 사회적경제 조직들 역시 코로나19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로운넷>은 사회적경제 분야 중 여행?관광, 문화?예술, 교육, 돌봄, 제조, 기타 등 6개 분야의 24개 기업을 접촉했다. 이들 사회적경제 기업이 호소하는 어려움과 요구사항은 무엇이고, 향후 전망과 보완 과제는 무엇인지 정리했다.

중년여성의 수공업 일자리를 지원하는 ‘목화송이’ 협동조합(대표 한경아)의 매장은 고속철(KTX)이 다니는 서울역, 대전역 등에 있다. 평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지역이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이동이 줄면서 매출이 거의 사라졌다. 목화송이의 인천공항 면세점과 서울 명품매장에서는 총 3천만원 정도의 매출이 급감했다.

디자인 교육과 물품 제작으로 보호종료아동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소이프’(대표 고대현)는 코로나19 감염 위험으로 공장 운영을 중단했다. 보호종료아동들 대상의 강의와 교육도 잠시 멈췄다. 회사의 수입이 큰 폭으로 줄었지만 직원 임금은 그대로 지급하고 있다. 고대현 대표는 “인건비 등 회사를 운영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운전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두달은 버텼는데 앞으로는..." 매출 줄어도 인건비 등 나가는 돈 그대로

문화 예술, 교육 등의 기업과 달리 제조업체들은 판매 시기가 연장됐을 뿐, 버티면 언젠가는 팔리지 않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서비스 업종에 비해서 코로나19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대기업 등 현금유보가 많은 곳은 가능할 수 있지만 사회적경제 제조업체들은 임대료, 생산비 등 고정비용과 불어나는 인건비 등과 씨름하고 있다. 단기 타격은 없을지라도 코로나19가 길어졌을 때 회사의 존립이 위태롭다.

사회적경제 분야 제조업체들의 매출은 물건이 누적되지 않고 팔릴 때, 특히 단체 납품이 가능할 때 극대화된다. 고용창출형 사회적기업들은 말 그대로 고용을 하기 위해 빵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재고를 오래 보관할 수록 상품 가치가 떨어져 손해가 커진다. 한경아 목화송이 대표는 “두 달은 버틸 수 있었는데 코로나19가 이어지면 문제가 된다”며 "우리보다 더 작은 회사는 어떻게 버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근로자 일 중단되고 소재가 못 들어와요" 해외 진출 기업 곤란

코로나19로 인한 해외 교역 중단의 불똥을 맞은 곳도 있다. 우간다 아이들을 위한 가방을 만드는 사회적기업 ‘제리백’(대표 박중열)은 제품 제작에 필요한 소재를 중국에서 들여와야 하는데, 이를 확보하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처음 시작된 곳이 중국으로, 관련 교역이 한동안 중지됐다. 일부 재개됐지만 재료 수입이 쉽지 않다. 

제리백은 우간다에서 제작한 제품을 현지인에게 기부한다. 또 소재를 들여와 국내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우간다 지역의 제품은 출고 전에 현장 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지인이 쓸 수 있도록 완제품이 바로 기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전 우간다에 봉쇄령이 내려지면서 방문이 불가능해졌고, 우간다 지역의 제품은 출고하지 못한 상태다. 

우간다에 통행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현지 근로자들이 출근하기도 어려워졌다. 박중열 대표는 “대중교통이 운행을 멈춰서 노동자들이 일할 수가 없다”며 “생계유지에 필요한 임금을 줘야하는데 곤란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출퇴근 가능한 직원에게는 임금을 주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거의 반 이상이 못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해외로 진출한 제조업체들은 생산에 타격을 받고 있다. 사회적기업 제리백의 물품 생산지인 우간다는 코로나19 인해 봉쇄령이 내려져 근로자들이 일을 못하는 상황이다. /출처=제리백 홈페이지

"자금 지원과 공공구매, 선주문 등 판매 활성화 지원 필요합니다"

제조업체들은 회사가 문을 닫지 않으려면 운영자금 지원이 가장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건비 선지급이나 고용유지 지원금 지급, 사업개발비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공장이 멈추면 회사가 무너지는 제조업체의 입장에서 절실한 부분이다. 다만, 융자 지원은 나중에 상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고 있다고 전했다.

대표적으로 공공기관 우선 구매와 단체 주문(BtoB)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상북도사회적기업종합상사'와 같은 지자체별 유통상사와 함께 활동하면 효과가 커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규모가 큰 제조업체의 특성상 물건 하나가 팔리는 것보다 대량 납품이 매출에 도움이 된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서울시나 기타 공기관이 상반기에 공공구매를 조기 집행하면서 사회적경제기업들을 위한 판로 지원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재고 소진과 매출 상승을 위해 공공 구매말고도 새로운 판로를 지원해주면 좋겠다는 의견도 나온다. 선주문 방식이나 물품 제작 공동기획, 민간 입찰 활성화 등이다. 민간 입찰은 절차가 긴 공공구매와 다르게 간단하고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포스코는 민간 기업 중 최초로 입찰 시 장애인 기업, 사회적기업, 사회적협동조합, 여성기업 등 사회적 친화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구매 우선 제도를 도입했다.

포스코는 사회적기업 모어댄의 가방에 코로나19 구호 물품을 담아 대구의 의료진에게 전달했다./출처=포스코

자동차 부품을 재활용해 가방을 만드는 '모어댄'의 최이현 대표는 “민간 입찰은 아니지만 얼마 전 포스코에서 진행한 대구, 경북 지역 코로나19 물품 지원에서 수의 계약으로 납품할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포스코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기업을 직접 선택해 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포스코 등 사회적경제기업을 호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커지면서 민간 입찰까지 도전하는 사회적경제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민간 입찰은 시장 진출을 공공에서 민간까지 넓힐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생산과 고용 기반이 약한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입찰을 따내기 위해서는 먼저 경쟁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선주문 방식은 생산량이 부족하거나 반대로 과잉되어 재고로 남는 물건을 줄일 수 있다. 박중열 제리백 대표는 "예를 들어 핸드워시 5000개가 필요하면 기획부터 제작까지 전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라며 "현장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정확하게 생산하고 우리는 시간적 여유가 있어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제조 업체들이 가지는 재고 누적에 대한 불안감도 없어진다. 박중열 대표는 “수요가 먼저 주문을 주고 이후에 제작하는 방식이라 회사가 확신을 가지고 생산할 수 있다”며 “생산이 가능한 환경이 돼야 공장이 돌아가고 회사를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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