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없는 학교, 손님 없는 상점, 노동자 없는 공장, 관객 없는 극장, 관광객 없는 명소…. 몇 달 전까지 사람들로 넘쳐났던 곳들이다. 지금은 걱정과 한숨이 가득하다.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멈춰 세웠다. 사회적경제 조직들 역시 코로나19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로운넷>은 사회적경제 분야 중 여행?관광, 문화?예술, 교육, 돌봄, 제조, 기타 등 6개 분야의 24개 기업을 접촉했다. 이들 사회적경제 기업이 호소하는 어려움과 요구사항은 무엇이고, 향후 전망과 보완 과제는 무엇인지 정리했다.

국내 코로나19 감염 확진 환자가 1만명이 넘었다. 일별 확진자 수는 감소하기 시작했지만, 오프라인 공연·행사가 주 사업인 문화·예술계 기업들은 사태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세종문화회관은 4월 공연을 전부 취소 혹은 잠정연기 했으며,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CGV는 지난달 28일부터 전국 33개 지점의 영업을 중단했다. 지난해 12월부부터 공연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도 배우 중 확진자가 2명이 나오면서 이달 22일까지 공연을 중단했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은 어려워도 자본력으로 버틸 수 있지만, 상황이 길어진다면 중소규모 기업은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사회적기업 중 11%에 달하는 문화예술계 사회적기업은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무하다.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가 339개 사회적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코로나19 피해조사 결과, 문화예술관광분야 기업의 94.4%가 경기 악화를 느낀다고 답했다.

“행사·공연 전면 취소, 1~3월 매출 ‘0’”

추억을파는극장은 휴관 소식을 못 듣고 찾아오는 어르신들에게 초대권을 나눠주고 돌려보낸다. /사진=추억을파는극장

국내 1호 실버영화관을 운영하는 ‘㈜추억을파는극장’은 지난 2월 20일부터 휴관했다. 김은주 대표는 “실버극장 관객은 치명률이 높은 어르신이고, 주로 카드가 아닌 현금으로 결제해 확진자가 나오면 동선 확인이 어려워 선제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서울 소재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주식회사 명랑캠페인’은 6월까지 계획된 오프라인 행사·캠페인을 모두 취소했다. 매년 상반기에 외부 후원으로 진행했던 공연도 이번에는 유튜브로만 중계한다.

‘사단법인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영화 상영 일정이 모두 취소됐을 뿐 아니라, 진행 중이던 정부 지원사업도 조기 종료됐다. 송승민 사무국장은 “한국 영화에 외국어 자막을 입혀 상영하는 정부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지난 5월부터 올해 2월 말까지가 계약기간이었지만 코로나19로 1월 말에 끝나버렸다”며 “계약 기간이 짧아진 만큼 지원금도 줄었다”고 말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2015년부터 운영한 ‘박물관 배리어프리영화관’도 맡고 있었는데, 2월 말부터 박물관이 임시휴관에 들어가면서 중단됐다. 송 사무국장은 "보통 4월쯤 각종 기관에서 지원사업 공모가 뜨는데, 올해는 그것도 불투명해 걱정"이라고 전했다.

하반기에 풀려도 힘들어...“사회적기업 지원비 수급기간 늘려야”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와 드림위드앙상블이 홈페이지에 올린 3월 일정 취소 공지사항.

발달장애인 전문연주단체 ‘사회적협동조합 드림위드앙상블’도 설 연휴 전 4번의 공연 이후로는 한 번도 공연을 올리지 못했다. 신상래 사무국장은 “후원금과 기업 지원금, 정부 고용 장려금 등이 받쳐주고 있어 다른 곳들보다는 좀 더 낫지만, 연주비도 운영비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언제까지고 버틸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런 상황일수록 사회적기업은 인건비와 임대료가 절실하다”며 “잠깐이라도 일자리창출사업 지원비 수급 기간을 기존 3년에서 더 늘려주거나, 연습실을 제공하는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상 예비사회적기업은 인증 후 2년간, 사회적기업은 3년간 ‘일자리창출사업’을 통해 인건비의 일부를 지원받는다.

상반기 내로 상황이 안정된다면 그동안 취소됐던 행사들은 하반기에 풀린다. 하지만 일이 많아진 만큼 매출이 느는 건 아니다. 같은 시기에 여러 공연·행사가 진행되는데 소비자 수는 고정돼있으니 경쟁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규모가 작은 사회적기업들은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

직원 감축 없지만 길어지면 고민...휴업 못해 고용유지 지원금 활용 X

취재에 응한 추억을파는극장, 명랑캠페인,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드림위드앙상블 모두 직원 감축이나 임금 조정 계획은 아직 없다고 전했다. 아직까지 코로나19 관련 정부 지원을 신청하지 않았다. 대부분 대출금리를 낮춰주는 방식인데, 어차피 갚아야 할 돈이라 매력적이지 않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2월 말부터 전 직원이 재택근무를 하고, 당직자 1인만 순환근무 하는 체제로 운영 중이다. 그러나 사태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길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다. 오호진 명랑캠페인 대표는 “회사에 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직원들이 먼저 휴직 이야기를 꺼냈다”며 “지금은 근무 형태 변경 계획이 없지만, 장기화된다면 어떻게 해볼지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르신극장 앞 코로나19 휴관 안내문. /사진=추억을파는극장

사업주가 휴업이나 휴직 등으로 고용을 유지할 경우, 정부가 휴업·휴직수당의 일부를 지급하는 제도인 ‘고용유지 지원금’이 있지만, 이를 활용할 사정이 안 되는 곳도 있다.

김 대표는 “추억을파는극장은 2월 말부터 빠르게 휴관 조치를 취했지만, 아직 소식을 못 듣고 찾아오는 어르신들이 있어 마스크, 초대권과 함께 돌려보낸다”며 “이 일을 해야 하는 직원들은 여전히 근무 중이라 휴업하지 못하고 임금을 주기 위해 대출을 신청했다”고 전했다. 신 사무국장은 “상반기에 사태가 안정된다면 하반기에 드림위드앙상블 정기연주회를 진행할 텐데, 연습을 해둬야 하므로 휴직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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