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팝 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자전적인 영화 '미스 아메리카나' 포스터 / 사진 출처= 테일러 스위프트 인스타그램

‘박사방’· ‘n번방’의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더 놀라운 점은 ‘박사방’ 조주빈의 얼굴이 공개되고 그가 대중들에게 한 첫 발언은 피해자를 향한 사과가 아니라 유명 인사와 얽힌 사기극과 협박에 대한 사과였다.

의도적이었는지는 몰라도 극악무도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은 유명 인사들과 얽힌 이야기와 글로벌 재난 수준인 코로나19에 묻혀 뒷전으로 밀려나는 느낌이다. 그 사이 피해 여성들은 2차 피해를 걱정해야 하는 슬픈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한 편의 영화가 떠올랐다. 세계적인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자전적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Miss Americana)’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명성은 ‘그가 곧 음악 산업이다’라는 말로 압축된다. 2019년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가수·배우·방송인 그리고 스포츠 스타 등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지난 1년 동안 가장 많은 돈을 번 100명 (highest-paid celebrities 2019)의 명단을 공개했다. 그중 1위가 약 2185억 원의 수입을 올린 싱어송라이터 테일러 스위프트였다.  

“투표할 권리는 내게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 말할 권리는 없어요.”

16살 데뷔 후 10년 넘게 그가 지켜온 원칙은 대중을 향해 정치적 발언을 해선 안 된다는 거였다. 각자의 삶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랬던 그가 성추행 피해자로 2017년 콜로라도주 덴버 연방 법원의 법정에 선 이후 달라졌다. 

“ 법정에서 내게 처음 한 질문은 이랬죠.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죠?’, ‘왜 더 빨리 반응을 보이지 않았나요?’, ‘왜 그에게서 더 멀리 서 있지 않았죠?’”

당시 목격자가 7명이나 있었고 사진도 있었는데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배심원은 만장일치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이겼지만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다고 했다. 그 과정이 너무 치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물었다. ‘만약 아무도 못 본 상태에서 당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 같은 곤욕을 치른 후 그는 2018년 미국 중간 선거에서 여성폭력 방지법 재승인을 반대한 의원을 낙선시키기 위해 상대편 경쟁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1억 1200만 명에 이르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포스팅을 한 뒤 불과 24시간 만에 전국적으로 5만 1308명의 새로운 투표 등록자가 생겼다. 

업계의 불문율을 깨고 그가 정치적 행보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 그 사람은 성 평등 임금에 반대했고, 여성폭력 방지법 재승인을 반대했어요. 스토커나 데이트 강간, 가정 폭력에서 여성들을 보호하는 법인데 말이죠. 그리고 동성애자처럼 보이기만 해도 식당에서 쫓겨날 수 있다고 말하는 여자예요. 그 사람이 내놓는 광고에 이런 정책을 마치 ‘테네시 기독교의 가치’인 것처럼 표현하는 걸 더는 못 보겠어요. 그건 테네시 기독교인의 가치가 아니에요. 내가 테네시에 살고 있고 내가 기독교인인데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달라요.”

안타깝지만 그의 시도는 성공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가 반대했던 인물이 결국 선거에서 승리해 테네시주 최초의 여성 상원의원이 됐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다음 선거를 기약하며' Run(뛰어)'이라는 곡을 발표했고 청년들에게 부당함에 저항해줄 것을 독려하고 있다. 
  
이제 곧 4·15 총선이다. 침묵으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지지하든 반대하든 자신의 생각을 표로 밝혀야 한다. 

“ 다 보기 싫다”
“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
“ 내가 찍는다고 세상이 바뀔까”

나를 포함해 그동안 투표를 하지 않고 뒷짐만 지고 있던 사람들의 주된 반응일 것이다. 침묵은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각자가 존중하는 가치를 위해 투표하자. 나의 침묵이 자칫 목소리 큰 사람들의 이야기에 눌려 전체를 대표하는 목소리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곱든 밉든 투표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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