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나라에서 온 산타가 있다고 해서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인근의 에코팜므 매장을 찾았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따뜻한 공기가 몸을 감쌌습니다. 서너 평짜리 작은 매장은 빛이 잘 들어 밝고 쾌적했습니다.

문 옆에 놓인 엽서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프리카 여성들의 모습 혹은 아프리카인들의 상상 속 새를 그려넣은 엽서였습니다. 처음 보는 한 여성이 서글서글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무료에요. 가져가셔도 돼요."

NGO 기반으로 사회적기업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진숙(38) 에코팜므 대표 이야기입니다. 프랑스어로 ‘생태여성’이란 뜻을 지닌 에코팜므는 이주여성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과 카드, 공정무역 상품을 판매하거나 문화 프로젝트를 수행합니다.

박 대표는 2010년 2월 홍대 부근에 에코팜므 매장을 열었습니다. 지난 해 11월 남반구 캄보디아 고엘 공동체에서 만든 순수산타와 부끄럼쟁이 루돌프를 출시했습니다.

캄보디아 고엘 공동체가 만든 순수산타와 부끄럼쟁이 루돌프. 에코팜므가 공정무역으로 판매한다.

“아이들은 산타라고 하면 추운 곳에만 있는 줄 알아요. 저희가 판매하는 따뜻한 나라 캄보디아에서 온 순수산타와 부끄럼쟁이 루돌프도 있거든요. 다른 것이 틀린 건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일찍부터 이런 사실을 알고 나와 약간 다른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미덕을 지녔으면 좋겠어요.”

산타와 루돌프는 한땀 한땀 직접 베틀 직조로 짠 친환경 면속에 천연 솜을 넣어서 만든 공정무역 인형입니다. 둘 다 각각 2만 원. 판매 수익금 일부는 이주 여성을 위해 사용합니다.?고엘에서 온 산타와 루돌프는 에코팜므 매장이나 윤리적 쇼핑몰 이로운몰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박 대표가 에코팜므를 시작한 계기는 뭐 였을까요?

에코팜므 박진숙(38) 대표
서울대 불문학과 연세대 아동가족학, 그에겐 두 개의 석사학위가 있었습니다. 경력은 없었습니다. 기업들은 그에게 취업의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경력이 없는 30대 여자에게 '긴 가방끈'은 오히려 직장 문 앞에서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됐습니다.

대학 문을 나선지 5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다른 이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사회사업가가 됐습니다.?그는 2007년 4월 서울대 불문과 석사 과정 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콩고 난민들을 만났습니다. 박 대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습니다.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난민들은 한국 이주를 위해서 법정에 서야하고 필요한 자료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 통번역을 해줄 자원봉사자가 필요했지요. 그걸 제가 당시 변호사 활동을 막 시작한 지금 남편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콩고 난민 여성 4분들에게 한글을 알려주었죠. 그분들 덕에 제 인생이 변했어요.”

그의 남편 김종철 공익법센터 어필 대표는 해외 난민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부창부수라고 합니다.

박 대표는 “한국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들이라고 하면 교육수준이 낮은 걸로 안다”며 “사실 한국에 있는 이분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재능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주여성들의 보금자리 에코팜므는 처음에 아프리카 이주여성들이 만든 카드를 바자회에서 천 원에 팔았습니다. 반응이 좋자 아프리카 콩고, 아시아 몽고 이주여성들만 낼 수 있는 색감과 문양을 살려서 만든 장식품, 액세서리를 연달아 내놓았습니다. 박 대표는 “상품을 판매하면서 우리에게 자존감이 생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요새 고민이 있습니다. 에코팜므 운영에 관한 것입니다. 상품 판매만 고집하기엔 에코팜므 공동체 운영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시회, 강연, 공연, 교육 등 문화 프로젝트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일 년에 두어 번 재단 공모사업도 합니다.

현재 에코팜므는 박 대표 외 2명 정직원, 아프리카 그룹 이주 여성 4명, 몽골 그룹 이주 여성 4명, 전북 진안에 있는 태국, 베트남 이주 여성 5명이 서로 도우며 활동합니다. 또 프로젝트 마다 필요한 전문 인력을 실비만 지급하는 형식의 재능기부로 충당합니다. 수익은 이주 여성들에게 상품의 경우 30%, 프로젝트의 경우 60%가 돌아갑니다.

오른쪽에서 네번째 박진숙 대표와 에코팜므 식구들

“프로젝트가 수익이 더 좋아요. 그렇지만 저희에게 유형자산인 상품은 포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주 여성들이 지닌 특유의 품성은 눈에 보이는 상품에 나오는 경우가 대분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에코팜므의 시작도 상품이었으니까요.”

박 대표가 처음 이주여성들과 만난 것이 에코팜므의 시작이라면 지금은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5년 동안 이주여성들과 불협화음이 안 생겼을까.

“특히 핸드메이드 작품을 만들고 공연을 하시는 분들이 시간을 잘 안 지키세요. 예술가 기질이 그렇게 만드는 것 같아요. (웃음) 공연 일정이 잡힌 상황에서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하지요"

그는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한국 문화와 다른 이주민 여성들을 이해하고 인내하는 것”이며 “돌이켜보니 남겨진 가장 큰 자산은 그들과 맺어진 관계”라고 말했습니다.

“한국과 다른 문화를 지닌 이주 여성들과 지내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특히 콩고 그룹 리더격인 미야(33)가 있어요. 그녀는 연락이 안 되는 몽골 식구들을 챙기기도 하고요. 이제 오히려 저와 직원분들에게 힘을 주기도 해요. 저는 그런 분을 지역사회 문화 리더라고 불러요. 앞으로 에코팜므 식구들 모두가 이런 문화 리더가 됐으면 좋겠어요.”

에코팜므가 준비한 '달려라 망아지'인형극이 22일 토요일 오후 4시 서울 경복궁 근처 푸르메재단 4층에서 열린다.
에코팜므는 올해 말 다음세대 재단 후원으로 몽골인형극 발표회를 준비했습니다. 인형극은 22일 토요일 오후 4시 서울 경복궁 근처 푸르메재단 4층에서 열립니다. 몽골의 전래동화 ‘달려라 망아지’를 인형극으로 각색했습니다. 달려라 망아지는 몽골판 ’미운오리새끼’ 이야기입니다.

엄마와 자녀 사이의 신뢰, 친구 사이 우정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몽골 이주민 여성들이 직접 노래하고 연기합니다. 에코팜므 아프리카 밴드가 축하공연을 합니다. 다문화가정과 장애인들을 초청할 예정이며?일반인도 당일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피부색이 모두 다른 여성들이 에코팜므라는 이름 아래에 모였습니다. 공통점이라면 한국에서 아이를 낳은 전업주부 출신이라는 점이랄까. 한국에서 아이를 낳은 여성은 양육과 취업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한국에 친지가 없는 이주여성은 아이를 맡기기 어려워 일자리를 얻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그들은 에코팜므에서 음악가, 미술가, 공예가, 연극배우 등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 내는 목소리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룰 것입니다. 22일 인형극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저희는 돈을 남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유지를 하려고 해요. 에코팜므는 일자리를 만들지 않아요. 문화적으로 창의적인 일거리를 만들지요. 이주 여성분들은 대부분 자녀들이 있는 전업주부입니다. 그들이 힘들 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보금자리, 필요하면 잠시 들러서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바람을 타고 온 순수산타와 부끄럼쟁이 루돌프 보러 가기"-이로운몰

관련 링크
에코팜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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