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봄이 찾아 왔다. 하지만, 봄이 봄 같지 않다. 청계천 어귀의 물길을 따라 걸으니 매화꽃잎이 실바람에 흩날린다. 기차길 옆 응봉산 자락의 개나리는 아지랑이 속에서 곱게 피어나고 있다. 하지만 올 봄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행객들은 꽃을 보고도 바이러스를 걱정한다. 중국 내륙 한 시장 바닥에서 어느날 갑자기 발생한 신종 바이러스가 두더지 튀어 오르듯이 여기 저기에서 불쑥 불쑥 나타나 지구촌을 온통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IT강국답게 우리나라에서는 다투어 바이러스 추적 앱을 개발하여 바이러스를 쫒고, 놀랍도록 진단검사를 발빠르게 진행하여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앞 다투어 감염자 다발지역으로 모여들어 병상을 지키며 사투를 벌이는 의사와 간호사들,  자신이 받은 기초생활 보조금과, 손수 바느질해 만든 마스크를 기부하는 80넘은 할머니들, 피로에 겹쳐 얼굴이 시퍼렇게 멍든 간호사들을 위해 십시일반으로 모금하여 화장품을 사 보내는 손길 등, 정성어린 기부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져 지구촌을 감동시키고 있다.

이 즈음, 세계 지도자들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모두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전력투구 하고 있다. B.C 3세기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코끼리 부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격했을 때이다. 한니발이 원하는 것은 로마제국을 붕괴시키는 것이었다. 위기를 맞은 로마 원로원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파비우스를 집정관으로 임명하고 전쟁터로 내 보냈다. 정정당당 맞서 싸울 줄 알았던 파비우스는 대결을 회피했다. 그는 적군의 후방 보급로를 차단하면서 이따금 소규모전을 벌여 적진을 긴장시키고 한니발이 지치기만을 기다리는 지연전술을 폈다.

맞붙어 싸워서 적을 괴멸시키고 대승을 거두는 모습을 눈앞에 보여주는 장수만이 환호를 받는 법, 당시 로마의 강경파들은 파비우스를 비굴한 장수로 조롱하고 그를 실각시킨 후 다른 장수를 내세워 정면 승부를 시도했다. 하지만 참패를 거듭하자 다시 파비우스를 기용하여 국면을 전환시켰다. 파비우스가 지구전을 선택한 것은 한니발 원정군의 취약점을 꿰뚫어 보았고 로마군의 역량을 냉철하게 진단한 결과였다.

이른바 '존버' 정신이 때로는 빛을 본다.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나면 무리하지 말고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 바이러스는 지구의 탄생과 함께 수억 년을 살아오며 동물과 사람으로 숙주를 옮겨 가면서 변형되어 생존에 최적화된 괴물이다. 우리가 노화를 이길 수 없듯이 바이러스의 영리함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설령 개발이 되었다 하더라도 신종 관상형 바이러스가 다시 변이를 일으켜 약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도 있다. 또한 막대한 자금을 투여하여 개발에 성공했더라도 그 바이러스가 사멸되면 제약사들이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 뻔하니 선듯 개발을 꺼린다.

일부 역학 전문가들은 30년에 한번씩 강력한 바이러스가 출현 할 것을 예상했다. 2003년 의학지 <백신>에서 "세계적으로 대 유행 하게될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출현하여 세계 전역으로 급속히 퍼질 것이다. 모든 연령층에 높은 발병률을 보이고 모든 나라의 경제, 사회활동이 혼란에 빠지고, 발달한 의료 시스템으로 조차도 의료서비스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적었다.

2008년 출간된 실비아 브라운의 '세상의 종말(END of DAYS)'에서는 "2020년 쯤에 폐렴 같은 심각한 질병이 전 세계에 창궐한다. 폐와 기관지를 공격하는 이 병은 어떤 치료도 안 먹힌다. 병 자체보다 더 놀라운 건, 갑자기 확산되었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10년 후 다시 등장했다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예언했다. 작가의 놀라운 추리와 상상력에 소름이 끼친다.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은 잠시 머물다가 소리 없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코로나19도 머지않아 순식간에 자취를 감출 것이다. 파비우스의 전략으로 나가자. 버티면 이긴다. 그래서 새 생명 움트고 새들이 노래하는 찬란한 봄의 향연을 다 함께 즐기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키워드
#단필단상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