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열린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금융 상황 특별점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왼쪽 가운데)은 "전례 없는 파격적 경제 대책"을 주문했다./사진제공=청와대

“현 상황은 비상경제 시국이다. 전례에 얽매이지 않은 파격적 경제 대책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3월 13일 청와대 경제·금융 상황 특별점검회의 발언)

코로나19가 ‘감염병 세계적 유행(팬더믹)’으로 확산하면서 경제적 타격이 가시화했다. 증시 폭락, 유가 하락, 환율 상승, 소비 감축 등 국내외 경제가 악화하면서 ‘파격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정치권 안팎에서는 ‘재난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국가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직접 돈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재난기본소득’이 본격 거론되기 시작한 건 지난 달 말부터다.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2월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취약계층 1000만명에게 한 달간 50만원이라도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해달라”는 내용의 요청을 올렸다. 지난해 말부터 ‘기본소득’ 도입을 꾸준히 주장해온 민간정책연구소 LAB2050에서도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해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라”고 주장했다.

# 코로나19로 경기 침체, 여권 인사 ‘재난기본소득’ 논의 시작

전주시의회는 지난 13일 시가 코로나19 조기극복을 위해 편성한 긴급생활안정 전주형 재난기본소득 지원금 263억5000만원 등 총 542억 여원 규모의 긴급 추경예산안을 증액, 의결했다./사진제공=전주시

기본소득이란 남녀노소, 연령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심사나 노동을 요구하지 않고 무조건 지급하는 현금을 말한다.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안정적 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앞서 2009년 일본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경기 불황을 극복하겠다며 국민 1인당 1만2000엔(13만7000원)씩을 지급한 예가 대표적이다.

추경 예산에 재난기본소득 의견이 반영되지 않자 김경수 경남도지사,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등 주요 시도 지방자치단체장이 관련 의견을 보태며 논의가 본격 확대됐다. 김 지사는 지난 8일 “모든 국민에게 재난 기본소득 100만원을 일시적으로 지원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제안한다”며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내년에 세금으로 다시 거두자”고 주장했다.

이어 박 시장은 지난 10일 “실업급여 등 기존 제도의 혜택을 못 받는 중위소득 이하 전 가구에 가구당 60만원씩 지급하는 재난긴급생활비를 도입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 지사는 지난 12일 “전 국민에게 1인당 100만원을 일정 기간 내 사용을 의무화한 지역화폐로 지급하거나, 지역화폐가 없는 지역에는 시한부 온누리 상품권을 지급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민주당 인사를 중심으로 재난기본소득에 관한 논의가 커지자, 실제 도입한 기초 지자체도 있다. 전북 전주시는 지난 13일 전국 최초로 긴급생활안정 ‘전주형 재난 기본소득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대상은 중위소득 80% 이하 실업자?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5만명으로, 1인당 52만7000원씩이 돌아간다. 전체 시민을 대상으로 한 엄격한 의미의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도입 논의에 급물살을 타게 했다.

# 여 “현금성 지원 필요” vs 야 “포퓰리즘, 감세가 더 효과적”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재난극복소득추진모임에서 개최한 '코로나19 재난극복소득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긴급 토론회./사진제공=김영배 민주당 예비후보실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정치권의 입장은 엇갈렸다. 여권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나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재난기본소득’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다. 김민석 전 의원 등 민주당 4.15 총선 원외 출마자 51명으로 구성된 ‘코로나19 재난극복소득 추진모임’은 지난 12일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현금성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래통합당을 중심으로 한 여권은 “현금 지급이 아니라 파격적 세금 감면을 통해 경기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용태 의원은 지난 11일 “자영업자, 중소기업에 즉각 도움을 줄 수 있는 법인세?부가가치세 등 감세 정책을 시행하자”고 말했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 13일 “법인세율 인하, 법인세 구간 단순화는 기업의 자본을 시장에 풀도록 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 각종 세금 폭탄을 제거해 소비 진작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한편에서는 재난기본소득 도입이 4월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의식한 ‘표퓰리즘 정책(표를 위한 공약)’이라는 비판도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이 앞서 허경영 국가혁명배금당 대표가 대선 후보 당시 공약한 “20세 이상 성인에게 매월 150만원씩 배당금을 주자”는 내용과 유사해 “결국 허경영 말대로 된다”는 농담 섞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 靑 “충분한 공감대 필요”…신속한 지원가능 vs 재원 방안 부족  

코로나19 확산으로 대구의 한 시장에서 소독약을 뿌리는 모습. 자영업자, 소상공인 등의 피해가 크다.

논란이 커지자 정부에서는 재난기본소득 도입 여부에 대해 일단 선을 그었다. 청와대는 앞서 “취지는 공감하지만 규모나 재원조달 방법, 누구에게 줄 것인지에 대해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례 없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하면서 재난기본소득 도입 가능성도 일부 열어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재난기본소득 도입이 결정되면, 당장 취약계층에 대한 신속하고 확실한 지원이 가능하다. 지원 대상자 선별 작업 없이 모든 국민에게 일괄 지급하기 때문에 사각지대 없이 혜택이 폭넓게 돌아가고, 전체적으로도 경기 부양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지급 규모부터 정책 효과,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고, 소비 성향이 낮은 시민들이 저축을 하거나 향후 추가 세금 납부를 이유로 지출을 줄일 수 있어 투입하는 재정에 비해 효과가 적을 것이라는 반박도 있다. 무차별적 지원보다는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일용직 노동자 등 취약계층에 지원을 집중하는 방안이 더 현실적이라는 의견이다.

# 정부 추경안 편성해 경기부양…국회?지자체가 내놓은 대책은?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28일 코로나19 파급영향 최소화와 조기극복을 위한 민생·경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사진제공=기획재정부

앞서 지난달 28일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20조원 이상의 예산을 편성해 통해 소상공인 초저리 대출, 금융중개지원 대출 등 다양한 금융지원책을 내놓았다. 또한 이달 4일 11조 7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국회 심사 과정에서 추경 금액을 늘리고, 추가 현금 지원 카드도 꺼내들 것인지 관심이 모이는 상황이다.  

국회에서도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한 법률 개정 논의에 나섰다. 김정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 착한 임대인과 자영업자 및 기업경영을 지원하고 세금 혜택을 통한 소비촉진 방안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에는 △상반기(1∼6월) 임대료 인하분의 50%를 임대인 소득·법인세에서 세액공제로 보전 △올해 3~6월 체크카드(15%→30%), 신용카드(30%→60%), 전통시장 및 대중교통 사용분(40%→80%) 소득공제율 2배 확대 △연 매출액 6000만원 이하 영세 개인사업자의 부가가치세 납부세액, 2021년 말까지 간이과세자 수준으로 경감 △해외진출 기업 국내 복귀(유턴기업)시 소득·법인세 감면 △올해 3~6월 승용차 구매시 개별소비세 70% 인하 등이 담겼다.

전국 기초지자체 곳곳에서도 ‘지역화폐’ 혜택을 늘려 시민들의 소비를 진작하고, 지역 상권에 활기를 넣으려는 시도 중이다. 전남 순천시는 ‘순천사랑상품권’ 20억원어치를 기존 5%에서 10%로 할인율을 늘려 판매하고, 고흥군에서도 ‘고흥사랑상품권’을 10% 할인하고 구매한도를 50만원으로 늘린다. 경북 포항시는 ‘포항사랑상품권’을 3000억원 규모로 확대 발행하고, 충남 부여군도 ‘굿뜨래페이’에 대해 충전 인센티브 10%, 캐시백 3% 혜택을 제공한다. 충남 천안시도 ‘천안사랑카드’를 4월 7일 앞당겨 발행해 10% 환급 및 연말 정산시 소득공제 혜택 등을 주기로 했다.

# 해외에서도 ‘재난기본소득’ 화두…홍콩·대만·호주 등 도입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라이브 영상을 통해 코로나19 관련 대국민 연설을 하는 모습. /사진=백악관 유튜브 영상 캡처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전 세계 각국에서도 소비 진작 효과를 노린 다양한 방안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미국, 홍콩, 대만, 호주, 마카오 등에서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비롯해 현금바우처 제공, 세금 감면 등을 검토하거나 시행에 돌입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해지자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지난 13일에는 ‘급여세(근로소득세) 감면’을 주장했다. 트럼프는 “국민의 수중에 돈을 빨리, 그리고 효율적으로 넣어주려면 그들이 벌어들인 금액 전체를 가질 수 있게 하라”며 “올해 연말까지 급여세 감면(payroll tax cut)을 승인하라”고 민주당을 향해 촉구했다. 

홍콩은 지난달 26일 18세 이상 모든 영주권자를 대상으로 1만 홍콩달러(약 157만원)을 지급한다고 발표했다. 수혜 대상자는 약 700만명, 총 예산 규모는 710억 홍콩달러(약 11조1000억원) 규모다. 호주는 지난 12일 사회수당 수혜자에게 750 호주달러(약 58만원)를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수혜 대상은 연금생활자 등 약 650만명으로, 이달 말부터 지급할 예정이다. 

대만은 모든 국민에 200 대만달러(약 8100원) 상당의 바우처 4종을 제공하고 전국 식당, 쇼핑지구, 문화·예술 활동, 야시장 등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마카오는 3000파타카(약 46만원) 상당의 전자 바우처를 모든 주민에게 배부하고, 3개월 내 특정 식당과 소매점, 쇼핑센터에서만 쓸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정부, 지자체, 국회 등에서 내놓은 주요 대책./디자인=윤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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