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이런 밤에는 쌀쌀하지만 이제는 곧 봄이야. 봐, 꽃들이 피어나고 있어.”
좋아하는 노래를 듣다가 문득 ‘봄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겨울은 큰 추위 없이 지났지만, 아직 봄이 왔음을 실감하지 못했다. 최근 2주간 재택근무를 하다가 오랜만에 밖에 나와 보니, 햇살은 제법 따뜻해졌고 나무에는 통통한 꽃망울이 맺혀 있었다. 꽃들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계절, 봄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탓에 몸과 마음은 여전히 한겨울처럼 얼어붙어 있다. 피어나는 꽃을 보며 반가워할 여유조차 없는 요즘이다. 얼마 전 기사에서 본 사진 한 장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겨우내 난방을 떼며 애지중지 키웠다”는 꽃을 폐기하는 농부의 모습이다. 졸업식?입학식 등 주요 행사가 취소되면서 농사지은 꽃들이 버려지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통계청이 지난 3일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코로나19로 경제 전반이 위축됐지만 특히 화훼 분야는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생화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6%, 전월 대비 11.8%나 하락했다. 꽃값이 떨어지고 업계 최대 성수기 소비가 위축되면서 화훼농가는 물론 동네꽃집까지 시름에 빠졌다.
꽃이 환영받지 못하는 건 축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가 전국으로 확산하면서 매년 상춘객을 반기던 지역 명소들도 문을 닫고 나섰다. 제주 ‘유채꽃축제’부터 전남 구례 ‘산수유꽃축제’, 광양 ‘매화꽃축제’, 경남 창원 ‘진해군항제’, 강원 강릉 ‘경포벛꽃축제’, 경기 ‘고양국제꽃박람회’까지. 3~4월을 장식하던 유명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사실 식물이 꽃을 피운다는 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햇빛과 물이 충분할 때, 온 힘을 다해야만 피워낼 수 있다고. 작가 김영하는 특별한 날 꽃을 선물하는 이유에 대해 “그동안 네가 겪은 수고와 고통을 내가 안다는 의미를 전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별다른 기념일은 아니지만, 꽃 한 다발을 사서 엄마에게 보냈다. 언니네텃밭 여성농민 생산자 협동조합에서 키워낸 노란 프리지아와 붉은 라넌큘러스로 골랐다. “겨울 동안 정성껏 가꿨지만 판로가 막혀 힘들다”는 농부에게 힘을 주고, 외출을 못해 답답한 엄마의 일상에 싱그러움이 더해지길 바라면서. 코로나19로 힘든 시민들의 삶에도 하루빨리 ‘진짜 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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