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그 어느 전염병보다 빠르게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상품, 서비스, 금융자본, 기술이 무제한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세계화는 바이러스가 폭발적 확산되는 바탕이 되었다./출처=Politico

중국인 입국금지? 소모적 논쟁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일로에 있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염병이 발생함을 의미하는 팬데믹(pandemic)은 이제 낯선 용어가 아니다. 글로벌빅데이터연구소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현재 추세라면 약 2달 후에는 약 5억 명이 감염될 것으로 예측한다. 예측대로라면 치사율 1%만 가정해도 5백만 명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1918년에 발생해서 약 5천만 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 이후 1세기 만에 인류는 다시 큰 도전과 마주했다.

위기에 직면하면 개인이나 사회는 숨겨져 있던 민낯을 드러낸다. 한국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대처는 매우 신속하고 효율적이어서 다수의 외국 전문가와 언론이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그와 별도로 정부의 대처방식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갈등은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인 입국 금지 관련 논쟁이다. 
 
전염병의 원인, 전염 과정, 관리를 연구하는 학문은 역학이다. 역학자들은 이미 관련 논란에 대해 명확한 의견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실효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한 국가에서 전염병이 확산하는 데는 외부적 요인보다 내부적 요인이 더 결정적이고, 지금처럼 국가 간에 인적 교류가 활발한 세상에서는 바이러스를 원천봉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역학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약 2주 정도인 코로나19의 잠복기를 고려하면 중국인 입국 전면 금지가 왜 실효성이 없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얼마 전 사망한 리원량 의사가 우한시에서 발생한 집단 폐렴 증세를 폭로한 것이 작년 12월 30일이다. 진원지로 지목된 우한수산시장이 폐쇄된 것인 1월 2일이고 중국 정부가 본격 대응에 나선 것이 1월 21일이다. 한국에서 최초 확진자는 1월 20일에 발생했는데 잠복기를 따져보면 실제 감염 시기는 지난 연말연초였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국내 확진자가 늘어난 것은 1월 하순 이후다. 그때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본격적인 방역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미 감염된 채 1월 초·중순 한국에 입국한 사람들은 방역 당국이 어쩔 수가 없다. 최초 감염자를 감염시킨 사람의 입국을 사전에 막지 못했다면 다른 조치는 모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최초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1달간 확진자 수를 30명으로 억제하는데 성공한 질병관리본부에게 최악의 일이 터진 것은 2월 18일이었다. 슈퍼전파자로 의심받는 신천지 신도 31번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후 확진자가 7500명으로 대폭 늘어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3주 남짓이었다. 최악의 시나리오인 지역감염이 본격화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질병관리본부의 분석에 따르면 지역감염은 이미 1월 15일부터 시작됐다. 중국인 입국 금지 논란이 뜨겁던 당시는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시점이었으니 참 소모적인 논쟁을 한 셈이다.

과학적으로 분석해야만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 조치의 효과가 미미함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좋은 예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인 북한은 중국에서 바이러스 문제가 터지자마자 즉시 국경 봉쇄라는 극단적 조처를 했다. 방역능력이 미미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도 먹고 살아야 하는 북한 주민들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밀무역 루트로 계속 물품거래를 했고 북한 당국이 우려하던 대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계속 퍼지고 있다.

‘먹고사니즘’과 K-헬스케어 수출

우리의 고민의 바로 '먹고사니즘'에 있다. 방역과 무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한다. 중국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한국무역협회의 2018년 대중 무역현황을 보면 상위 10개 대중 수출품과 수입품이 여럿 겹친다. 집적회로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무선통신기기 부품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과 중국은 무역으로 이미 불가분의 관계다. 얼마 전 중국 GDP가 1% 감소하면 한국 GDP는 0.2% 감소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국이 셧다운 된 지 2달이 넘었는데 세계의 공장이 멈춘 지 그만큼 되는 것이다. 중국이 중간재를 제 때 충분히 공급하지 않으면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경제가 얼마나 타격을 입을지는 불문가지다. 그러니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의 가성비를 꼼꼼히 따져볼 수밖에 없다. 사람은 감정에 휘둘리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한다. 코로나19는 점차 소강상태가 될 것이고 다시 먹고사니즘의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때 뒤끝이 장난 아닌 중국을 상대해서는 안 될 것 아닌가.

어느 베트남 페이스북 유저가 촉발한 혐한 감정은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서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오랜 시간 축적된 감정이라면 어디에서 비롯했는지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출처=Hoang Bach Nguyen 페이스북 캡처

한국에서 코로나19의 확산만큼이나 빠르게 퍼진 것은 혐오다. 중국인 입국 금지 요구의 배경에 혐오가 깔려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혐오의 대상은 중국을 넘어 동남아로 확대됐다. 여기에는 한국 언론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 대구를 출발해 베트남 다낭에 입국한 한국인 20명에 대한 다낭시의 격리 조치를 비판한 모 언론사의 기사는 최악의 사례다. 일부 한국인 입국자의 개인적인 불만을 전체의 의견인양 보도했고 그것이 베트남 언론에 그대로 알려지면서 현지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급기야 어느 베트남 페이스북 유저는 태극기의 태극 마크를 바이러스 형태로 만들어 게시했고 이것이 알려지면서 한국 페이스북 유저가 베트남 황성주기의 노란색 별 옆에 작은 별 4개를 덧붙여 'Vietchina'라고 조롱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격리 시설을 둘러싼 논란이 감정싸움으로 번지자 우리 정부는 베트남 정부가 별도의 격리시설을 만드는 데 지원하기로 했고 베트남 정부도 적극협조하고 있다. 이처럼 상대를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대응해야하는 이유는 또 먹고사니즘 때문이다. 한국의 2019년도 대외 수출 순위는 1위 중국, 2위 미국, 3위 EU, 4위 베트남이다. 국가 연합인 EU를 제외하면 베트남의 국가 순위는 3위다. 대 베트남 수출액은 아세안의 나머지 9개국 전체 수출액을 합한 것보다 많다. 

코로나19가 과거의 전염병과 다른 것은 병리학적 특징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 경제는 서로 의존적이고 무역망으로 촘촘히 얽혀있다.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전염병은 글로벌 유통망 곳곳에 구멍을 만들어 세계 경제를 일순간에 마비시킬 수 있다. 전 세계인이 지금 그 위력을 체감하는 중이다. 우리도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에 맞닥뜨렸다. 감염을 피해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귀국길에 오르고 있는데 중소 제조업체와 농촌에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각해진다. 중국의 정상화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주력 수출품의 소재, 부품, 장비 수급에 큰 차질이 생기고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 GDP의 30%를 만들어내는 제조업에게 간다.

반전의 계기를 만든다면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축적한 데이터와 방역 노하우를 세계 각국이 탐내고 있다. 특히 의료 시스템이 낙후된 개발도상국일수록 절실하다. 그들에게 먼저 지원의 손길을 건넨다면 이후 훨씬 큰 경제적 보답으로 돌아올 것이라 확신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K-헬스케어 수출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함에 따라 국내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침이 되었다. 한편 나라 밖으로는 지리적 거리좁히기가 지침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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