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숙의 화톳불 옆 소소담담] 7. 금쪽같은 내 아이
[윤명숙의 화톳불 옆 소소담담] 7. 금쪽같은 내 아이
  • 이로운넷=윤명숙 시니어 작가
  • 승인 2020.03.02 0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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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들 내외와 우린 한 건물에 산다. 중정을 사이에 두고 두 집이 마주하고 있다. 중정이라야 사방 9m쯤 되는 콘크리트 바닥에 소나무를 심기 위해 거북이 등처럼 흙을 메운 것이지만 말이다. 이 새집으로 이사 올 때 며느리와 약속했던, 아침저녁 창 너머로 눈인사하는 것은 창문에 선팅을 짙게 하는 바람에 물 건너갔다. 맘만 먹으면 문 열고 소리쳐도 되는 거리지만, 성격 급한 며느리는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우리 집에 드나든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매니저이자 집사 겸 도우미로, 하는 일이 많다.

품격을 지키려면 며느리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안 되는데 우린 격의 없이 영림이라 부르고, 그렇게 부른지 벌써 30년이나 됐다. 영림이도 우리를 스스럼없이 그냥 아버지, 어머니라 부른다. 한술 더 떠, 대학 선배였던 시아주버니는 ‘형’이라고 부른다. 

영림이는 서울미대 디자인과 동기였던 우리 둘째 아들과 2학년 때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캠퍼스 커플로 잘 지내더니 영림이가 졸업하고, 취직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둘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못난 내 아들이 방위하랴, 대학원 다니랴, 제 밥벌이를 못 하자 자격지심에 그랬는지 “어디냐?” “뭐하냐?”하고 밤낮없이 닦달한 모양이었다. 결국 둘은 헤어졌다.

둘의 소식에 제일 안타까워 한 사람은 영림 엄마와 나였다. 그냥 두면 안 되겠다 싶어 두 엄마가 처음으로 서로 연락해서 종로에서 만났다. 초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오래 했다는 영림 엄마는 마른 체구로 조촐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종로 YMCA에서 수영으로 단련되어 기골이 장대한 여자였다. 영림이는 2남 2녀의 막내로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었다. 내 아들을 사위로 단단히 믿고 있었던 영림이 엄마는 이 지경이 된 것은 딸이 변심한 때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두 엄마가 이마를 맞대고 전략을 짜 봐도 별수가 없었다. 괜히 이런저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만 주고받다가 결국 사람의 앞일은 어찌 될지 모른다며 서로를 위로하면서 헤어졌다.

일 년 후, 영림 엄마가 별안간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날아왔다. 아들을 대동하고 한달음에 장례식장으로 달려가니 영림이가 쫓아 나와 내 품에 안겼다. 1년 만에 다시 보는 것이었다. 아들이 묵묵히 영림이 곁에 남아 궂은일을 도왔고, 몇 달 후 두 사람은 홍익대 교정에서 수수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부부는 여행에서 돌아와 아버지 혼자 남은 친정에서 하룻밤 자고, 엄마가 막내 시집갈 때 주려고 다락에 고이 간직해 놓은 비단 이불을 싸 들고 우리 집으로 왔다.

영림에겐 미국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는 외삼촌이 한 분 있었다. 안타깝게도 영림 엄마의 자랑이던 그 동생이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장례식에 참석하러 간 영림 엄마가 미국에서 심장병으로 쓰러졌다. 당신이 다신 일어나지 못할 걸 예상 했는지 영림 엄마는 병원 중환자실에서 나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가 그녀의 소지품에 묻혀 있다가 돌아가신 후 짐 정리하는 중에 발견되어 뒤늦게 나에게 전해졌다.

교사로 재직하며 올망졸망 동생들 키우다 시골 부자와 결혼해서 동생들 대학 보낸 사연, 10원 한 장 벌어본 적 없는 남편과 부모가 남긴 재산 다 들어먹으며 오순도순 살아온 얘기, 영림이가 남달리 영특하여 과외 한번 안 하고도 서울대 붙었다는 깨알 자랑, 현재는 갖은 게 없어 영림이 시집 보낼 걱정이 태산이지만 승호 어머님이 영림이를 많이 사랑해 주시는 것을 믿기 때문에 죽는다 해도 마음 편히 가겠다는 이야기가 구구절절 쓰여 있었다. 아픈 와중에 쓴 글인데도 글씨체가 반듯하고 맞춤법도 정확했다.

우리가 종로에서 만났을 때 그분은 앞에 앉은 살집 좋은 여자가 당신의 금쪽같은 막내와 찰떡궁합이 되리란 것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 분명하다. 굼뜬 내가 장례식 끝나자마자 불문곡직하고 결혼식 준비를 했으니 말이다.

시집살이 2년 차 영림./사진제공=윤명숙
시집살이 2년 차 영림./사진제공=윤명숙

영림이와 승호는 평생 친구처럼 산다. 아들 하나를 낳아 다 키웠고, 요즘은 고양이도 한 마리 키운다.

내가 여태 살아보니,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는 맞춤형 공식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TV에 늙은 여자 젊은 여자 떼 지어 나와 모름지기 고부간이란 이러 저러하다고 떠들어 봐야 말짱 헛소리에 불과하다. 사주팔자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 만나는 일은 불가사의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저녁 설거지 마치고 고개 들어 앞을 보니 창문 넘어 아들네 집 거실 창문에 사람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영림아! 온종일 뛰어다니느라 고생했다. 어서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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