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한 좌담회가 지난 2월 14일 주한 덴마크 대사관에서 열렸다. 비영리단체인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 동료 지원가들이다. 이번 좌담회는 대한민국 청소년의 입장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 짚고 덴마크의 복지 성공 사례를 듣기 위해 마련됐다. 아이너 옌센 주한 덴마크 대사가 환영했다. 덴마크 의사도 함께 했다. 
지난 2월 14일 주한 덴마크 대사관에서 아이너 옌센 대사와 멘탈헬스코리아의 최용석 대표, 청소년 동료지원가들이 청소년 정신 건강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리가 아프면 정형외과에 간다. 배가 아프면 내과에 간다. 정신이 아프면…. 마지막 말을 머뭇거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정신 문제를 터놓고 얘기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한국의 현실은 아직도 OECD 행복지수는 아래, 자살률은 윗자리에 있다.

특히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 보건복지부가 2019년에 조사한 ‘청소년건강실태’에 따르면 전체 청소년 중 28.2%가 우울감을 겪은 적이 있다고 나타났다. 중앙자살예방센터의 2018 ‘전국자살률통계’에서 15세 미만 청소년의 자살률은 전년 대비 41.9%가 증가했다. 

“같은 몸인데도 왜 정신 건강은 생각하지 않나요?”

‘멘탈헬스코리아(대표 최용석)’는 대한민국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된 비영리 단체다. 특히 청소년 문제에 집중한다. 정신 문제와 우울증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멘탈헬스코리아는 사랑의 열매, 교보생명 등에서 후원을 받아 유튜브 등 SNS로 청소년 상담을 진행하며 우울증 조기 예방에 힘쓰고 있다.

멘탈헬스코리아의 활동 주체인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피어스페셜리스트(Peer Specialist)’라고 말한다. 같은 아픔을 겪는 친구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아픔의 전문가’라는 뜻이다. 서로를 환자가 아니고 진정성 있는 조언을 제공하는 동료로 생각한다. 멘탈헬스코리아는 올해 100명의 청소년 지원가를 육성할 계획이다. 

멘탈헬스코리아 청소년들이 덴마크 대사관을 방문한 이유는 덴마크의 변화에 주목해서다. 덴마크는 OECD 기준 1980년 자살률이 10만명당 31.6명이었지만 2015년 기준 9.4명으로 줄었다. 같은 해 한국의 자살률은 25.4명이었다. 덴마크처럼 자살률을 줄이고 행복한 나라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Q. 대사님, 저희는 멘탈헬스코리아의 청소년 동료 상담가 피어스페셜리스트입니다.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덴마크와 대사님 소개를 듣고 싶습니다.

아이너 옌센 주한 덴마크 대사가 좌담회 시작에 앞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A.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고향은 덴마크의 가장 오래된 도시인데요. 대한민국의 경주 같은 분위기의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이 가난한 편이었는데 덴마크의 교육은 모든 과정이 무상이라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제 전공은 농업 과학 쪽이었는데 대사관으로는 드문 편입니다. 원래는 환경부 쪽에 있었는데 환경에 관심이 커지면서 외교부로 발령받아 대사가 됐습니다. 

Q. 얼마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한국은 정상적인 코스를 밟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합니다. 교육 제도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위한 제도는 별로 많지 않죠. 덴마크에서는 학교 밖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A. 저는 고등학교 교육과정 중에 잠시 쉰 적이 있습니다. 다시 시작했을 때는 25살 정도였는데 다들 나이에는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그 당시 저의 반에는 50살 넘은 농부 할아버지도 있었습니다. 노르웨이에서 온 30대 요리사분도 계셨습니다. 공부하며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적인 낙오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여건만 되면 언제든지 공부를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Q. 한국에서도 정신 건강을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덴마크는 이런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어떤 움직임들이 있었나요?

A. 우리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정신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나의 문제를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비밀로 남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드러내고 이야기한다면 새로운 영향을 이끌겠죠. 국회에서 이야기하거나 정치인들을 설득시켜 정신 건강 분야를 이슈화해야 합니다. 덴마크에는 여러분과 비슷하게 정신 건강을 이야기하는 ‘One of us’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가 덴마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러분도 계속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비롯해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멘탈헬스코리아의 학생 피어스페셜리스트인 신승연(20) 학생이 아이너 옌센 대사에게 질문하고 있다.

Q. 한국 청소년은 정신 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동의를 받아 정신과에 방문하거나 학교에 1명 정도씩 계시는 상담 선생님을 만나야 하죠. 덴마크 청소년들은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하나요?

A. 덴마크 학교에는 ‘health nurse’가 있습니다.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정기 검진을 받거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언제나 찾아갈 수 있죠. 자유로운 분위기. 부모님이 안 들어주면 이분들을 찾아가면 됩니다. 

A. 덴마크 의사 : 다만, 정신과를 방문할 때는 의사가 일정 나이 아래 청소년의 부모에게 정보 공유를 해야 합니다.
 
Q. 대한민국의 아동보호법 기준은 아직도 모호합니다. 덴마크는 청소년 자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어떻게 마련돼 있나요?

A. 지금 덴마크 총리는 여자분이신데, 새로운 방식으로 아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회에 이의를 제기하며 노력하고 계십니다. 요즘은 부모가 제대로 역할을 못 하면 다른 곳에서 도움받는 제도를 마련하자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A. 덴마크 의사 : 덴마크에서는 부모의 권위보다는 아이들 권리를 우선하는 의식이 강합니다. 

Q. 한국은 정신 문제에 대한 편견이 아직 큽니다. 정신과 방문이나 알려지는 것 모두 꺼립니다. 덴마크는 어떤가요?

A. 정신과를 방문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삶은 길고 치료를 받는 상태가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기쁠 때가 있고 슬플 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삶이 있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내일의 당신은 누구보다 완벽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은 우리가 갖지 못한 멋진 자원들이 많습니다. 케이팝은 어떤가요. 덴마크 청년들은 케이팝에 무척 열광합니다.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정신 건강을 이야기하는 여러분도 매우 특별한 존재입니다. 잘하고 있습니다(Well done).

 

조현수 학생(왼쪽)과 우가은 학생(오른쪽)은 피어스페셜리스트로서 청소년 정신 건강 캠페인과 상담 등을 진행한다.

좌담회를 마친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대사와 대화를 복기하며 들뜬 목소리로 앞으로 어떻게 활동할지 이야기했다. 삭막한 상황 속에 작게 피어나는 불씨처럼 보였다.

조현수 학생은 올해 20살이 돼 미술치료학과에 입학한다. 그는 피어스페셜리스트로 활동하며 정신 건강과 치료에 관심이 커져 관련 학과에 진학하게 됐다. 그는 오늘 좌담회에서 "덴마크와 대한민국의 가치관 차이를 느꼈다"고 한다. 학업 면이 아니라 아이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태도가 와닿았다는 것. 

그는 학교 상담이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부모나 친구에게 알려질까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선생님은 제 친구에게 모두가 있는 곳에서 위클래스 상담받으러 오라는 말도 했다”며 “아직 한국은 배려심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우가은 학생은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된다. 작년 7월부터 피어스페셜리스트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인식의 변화를 강조하는 덴마크 대사님의 말에 공감이 갔다"고 밝혔다. 한국은 아직 마음이 아픈 친구들을 보통의 사람과 다르게 바라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 얼굴 다르듯이 존중해주는 마음으로 우리를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어스페셜리스트 활동은 그들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우가은 학생은 국회자살예방포럼에서 대표로 연설한 경험도 있다. "연락이 오지 않을 것 같아도 도와달라고 연락이 오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하는 그는 "그들을 도우며 뿌듯함도 느끼고 스스로 치유됨을 느낀다"고 말했다.

“저희 조금 힘든데, 같이 도와주실래요?”

청소년들은 세상을 향해 이미 말하고 있다. 어른들이 귀를 기울일 때다. 아이들이 웃음을 되찾고 어른들이 건강한 사회가 된다면 OECD 행복지수에서 덴마크와 한국이 높은 순위를 놓고 경쟁하는 날이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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