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과 올해 세계 영화계의 가장 큰 화제는 단연 <기생충>이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에 해당하는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칸국제영화제는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 베를린 국제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국제 영화제로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이한 쾌거였다.
그리고 2월 9일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났다. 한국 영화는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후보에도 오른 적이 없기에 상 하나만 받아도 기적일거라 여겼는데 국제영화상은 물론 영화제의 가장 가치있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까지 4개 부문을 휩쓸었다. 아카데미 시상은 미국 영화를 중심으로 하지만 전 세계 영화 산업에 미치는 헐리우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칸국제영화제만큼 전 세계적으로 <기생충>의 영화적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칸·아카데미 동시 수상은 64년 만에 이뤄진 진기록이였으며 <기생충>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시상식에서 60여 개의 상을 휩쓸었다.
한국 배우들이 나와 한국어로 얘기하고 ‘짜파구리’, ‘반지하’, ‘연막소독’과 같은 한국 만의 정서와 문화가 짙게 배긴 영화에 전 세계가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봉준호는 "현실을 그대로 담았을 뿐"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그리고 그 현실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아픔이기도 하다. ‘대만 카스테라’를 비롯해 연이은 사업 실패로 무너진 중산층을 표현하는 송강호네 가족은 반지하에 살면서 지상을 꿈꾼다. 하지만 그 아래는 똑같은 ‘대만 카스테라’ 사업 실패를 경험하면서 처참하게 무너진 지하인이 있었다. 반지하와 지하의 싸움을 지상의 인간인 이선균네 가족은 끝까지 알 수 없다.
빈부격차라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계급은 고착화되고 있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2013)에서 여러 통계 자료를 통해 지난 2백년 동안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되며 '세습' 자본주의가 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기에 <기생충>만이 아니라 여러 영화들에서 개인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단위인 가족의 붕괴가 드러나고 있다. <기생충> 직전인 2018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은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한 <어느 가족>이었다. 가정 폭력과 가난 등의 이유로 가정이 해체된 이들이 모여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호아킨 피닉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긴 <조커>는 1981년의 가상의 도시인 고담시를 배경으로 하면서 복지 시스템이 무너진 가운데 백인 루저의 사회에 대한 분노와 복수를 다루고 있다.
시장과 정부에서 진동해왔던 자본주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자본주의는 답을 못 찾아가고 있다. 자본주의 초기 ‘보이지 않는 손’인 시장가격의 조정에 대한 절대적 신뢰에서 아동 및 임산부 노동, 독점 기업으로 인한 가격 교란 등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2차 세계 대전 이후 정부의 역할이 커졌다. 복지국가를 실현하고 정부 재정 확대를 통해 자본주의의 고질병인 대공황과 빈부격차를 해소할 것 같았던 황금시대는 1970년대 2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으며 다시 혼란에 휩싸인다. 긴축재정을 하고 정부보다 시장에 맡기자며 자본주의 초기 자유주의를 가져온 새로운 자유주의, 신자유주의가 득세했다.
시장, 정부, 시장... 그렇다면 이제 다시 정부 차례일까? 많은 이들은 조심스레 ‘공동체’를 새로운 경제 주체로 얘기해보고 있다. 공동체의, 공동체에 의한, 공동체를 위한 경제, 바로 사회적경제이다. 협동조합,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자활기업은 잠시 잊자. 경제의 목적은 무엇인지, 경제를 누가 통제해야 하는지 우리는 차분하게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 경제를 향한 사람 사이의 기적
그런 점에서 작년 한 해 많은 이들을 울리고 웃겼던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기생충>, <조커> 등을 보고 나서 씁쓸한 맛을 해소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권한다. 옹산의 게장골목을 배경으로 촌므파탈 황용식이와 은근 걸크러쉬 동백이의 로맨스를 그리면서도 연쇄 살인범 까불이의 정체를 밝히는 미스터리가 얽힌 제대로 된 단짠단짠 드라마다. 최고 시청률 23.8%를 기록하며 2019년 KBS 연기대상에서는 12관왕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본방 사수를 기다릴 만큼 많은 위로가 된 작품이다.
이 드라마가 특히 좋았던 건 옹산이라는 공동체가 마냥 아름답게만 그려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초반에는 미혼모 동백이에 대한 편견과 차별, 배제가 가득한 폐쇄된 그들만의 공동체로 나온다. 하지만 동백이는 서서히 옹산에 스며들고 마지막회에서는 동백이 어머니 신장 수술을 위해 서로에 대한 오지랖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난 지금의 빈부격차, 세습자본주의는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적이 되어 공동체 경제를 만들 수 있다면. 작가가 힘주어 말하고 싶었던 동백이의 마지막 나레이션을 함께 음미해보자.
내 인생은 모래밭 위 사과나무 같았다.
파도는 쉬지 않고 달려드는데,
발 밑에 움켜쥘 흙도,
팔을 뻗어 기댈 나무 한 그루가 없었다.이제 내 옆에 사람들이 돋아나고,
그들과 뿌리를 섞었을 뿐인데,
이토록 발 밑이 단단해지다니.이제야 곁에서 항상 꿈틀댔을
바닷바람, 모래알,
그리고 눈물 나게 예쁜 하늘이 보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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