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4일 14년간 CJB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로 근무했던 이재학PD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PD로 일하면서 계약서 작성,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받지 못하면서도 온갖 업무를 수행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했지만, 청주방송은 그를 해고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 환경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계약서 미작성,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연봉, 과중한 근무시간 등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직면한 문제를 협동조합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가)프리랜서 사회적협동조합(이하 프리랜서 사협)은 예술인, 플랫폼 노동자 등 불안정 노동자들의 근로환경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을 목표로 준비중인 협동조합이다. 임병덕 씨엔협동조합 이사를 비롯해, 김병우 다울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안영노 안녕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종승 공연예술노동조합 위원장, 최영미 (사)한국가사노동조합협회 대표 등이 설립준비위원으로 참여한다. 설립준비위원장은 임병덕 이사가 맡았다. <이로운넷>은 임병덕 설립준비위원장에게 프리랜서 사회적협동조합의 설립 목적와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임병덕 프리랜서사회적협동조합 설립준비위원장./ 사진=임병덕 위원장

#"열심히 했다 그러나..." 프리랜서로 현실 문제 직면

임 위원장은 27세에 방송사 외주제작사 프리랜서 PD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최저임금, 근로초과수당, 연차휴가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상태로 주 100시간 이상 근무했다. 열심히 일했다.

그는 “각자가 꿈꿔온 직업이었다"며 "생존해야만 더 좋은 프로그램의 PD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첫 출근 후 이틀동안 연속 생방송을 마치고 60시간만에 퇴근해도, 3개월간 하루의 휴무일이 없어도 열심히 일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장밋빛 보다 현실의 문제를 체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임 위원장은 “프리랜서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고 회상했다. 열심히 일해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었고, 당연한 권리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2008년 SBS 막내 작가의 투신자살, 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등 프리랜서의 열악한 근무 환경은 이미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임 위원장은 프리랜서들에게 나타나는 문제를 ‘협동조합 방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그는 “협동조합이라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근무환경개선에 공감대를 형성한 사람들과 협동조합 설립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사진=임병덕 위원장

#불안정 노동자 보호 고민…공감대 형성

프리랜서는 법적으로 정의되지 않아 국가적 보호가 어렵다. 그럼에도 프리랜서 인구는 계속 증가한다. 문화체육관광부 2018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업 예술인의 76%가 프리랜서로 나타났다. 전년대비 3.5% 증가한 수치다.

임 위원장은 "한국형 프리랜서 협동조합 모델의 필요성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지난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추진한 '2019 혁신형 협동조합 모델 발굴, 확산 지원사업'으로 한국형 프리랜서 모델이 만들어졌고, 지난해 11월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 정책토론회를 거치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프리랜서 사협은 우선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했던 프리랜서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사회 기초보험인 4대보험(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용역비 미지급을 방지하기 위한 보증보험 가입하게 한다. 프리랜서들은 주로 일감을 수주해 도급(용역)계약을 하는데, 이때 가장 기본이 되는 서면계약을 추진하고, 자조기금을 통한 소액 대출사업 등을 기획 중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프리랜서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발굴 및 제안 ▲교육 등 개인별 전문성 확보에 따른 매출확대 ▲공공기관 입찰 ▲계약을 위한 공유기업으로서의 역할 ▲연습실·작업실 등 공유공간 제공을 위한 지속적인 서비스개발 ▲기존 온라인 플랫폼과 다른 형태의 O2O서비스 시스템을 구상중이다.

임 위원장은 “이자율 20%가 넘는 리볼빙 서비스가 아니라 협동조합 자조기금을 통한 5% 이자율의 조합원 신용대출을 이용하게 할 것"이라며 "기존 구두계약으로 진행됐던 방식을 서면계약으로 바꾸는 등의 문화를 변화시키려면 연대해야 한다. 이것이 협동조합 방식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예술인 프리랜서 협동조합 정책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사진=임병덕 위원장

#해외 선진사례가 한국형 프리랜서 사협 모델 근간

한국형 프리랜서협동조합은 프랑스의 사업고용협동조합, 벨기에의 SMart(스마트) 협동조합 모델이 근간이다. 사업고용협동조합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거나, 이와 같은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을 고용한다. 단, 급여는 당사자가 일을 해서 벌어들인 수입에서 지급된다. 벨기에 스마트 협동조합은 문화 예술분야 프리랜서를 대상으로 계약관리부터 행정적인 서비스를 간소화 해 제공한다.

임 위원장은 “예술인의 지휘 향상과 사회보장, 저작권 등 창작활동의 안정성 강화를 목표로 하는 벨기에 스마트 협동조합은 2018년 기준 2만 명이 서비스를 이용했고, 프로젝트 매출액이 연 2천억원(1억5576만유로)을 넘었다”면서 “한국형 프리랜서 사협도 여러 분야의 프리랜서들이 모여서 스스로 보호하고, 성장하는 협동조합이 될 수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그는 "프리랜서라면 누구나 프리랜서사협을 한번 이상 경험할 수 있는 브랜드로 자리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사협, 개인인 동시에 집단입니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직업 형태도 변하고 있다. 프리랜서는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해 극단적인 상황에 치닫기도 한다. 임 위원장은 “프리랜서 특성 상 혼자 일해야 하기에 모든 문제를 개인이 해결할 수 밖에 없다"며 "사회에서 보호해야할 대상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사협은 사회적으로 프리랜서들이 겪는 문제나 고민을 함께 연대해서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임 위원장은 "프리랜서 사협을 통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나 고민을, 혼자가 아닌 함께 연대해서 해결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2월 24일 서울 대학로 인근에서 열린 프리랜서 사회적협동조합 사업설명회는 다양한 분야의 프리랜서 당사자들에게 그동안 설립준비위원회에서 고민하고 기획한 내용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설명회에 참여한 프리랜서 당사자들은 ▲예술인 2대보험 ▲4대보험 가입 ▲예술인 실업급여 수급 ▲예술인 용역계약 보증 ▲예술인 전문 교육 ▲일감 수주 확대 방법 등에 대한 방법 등 협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임병덕 위원장은 “사업의 중요도와 우선순위는 당사자 프리랜서 조합원들이 논의하고 표결해 결정한다”며 “프리랜서를 보호하기 위한 초기 모델이지만, 최종적으로는 프리랜서 조합원들이 협동조합가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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