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의 세바시] 3. "정부하라는대로, 과업달성에 급급...국가정책 덕분 먹고사는?"
[김선기의 세바시] 3. "정부하라는대로, 과업달성에 급급...국가정책 덕분 먹고사는?"
  • 이로운넷 강원(원주)=김선기 주재 기자
  • 승인 2020.02.19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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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이 상해"라는 중간지원 조직 후배의 말이 아프다
사회적 경제와 민주주의 근본 이념은 뭘까
세바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줄임말로, 사회적 경제와 관련한 정부와 자치단체의 다양한 정책, 중간지원 조직 활동 등을 한 발 더 들어가 깊이 있게 살펴보고, 새로운 방향과 보완해야 할 점, 대안 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아울러 사회적 경제 주체가 현장에서 경험하는 생생한 희노애락을 전달할 예정이다.

사회적 경제 중간지원 조직에서 일하는 한 후배가 얼마 전 소셜에 글을 남겼다. 앞으로 방향에 대한 고민의 화두를 여러 가지 던졌다. 하나는 개인이 매몰돼 사라지는 집단 또는 지역 중심이 아닌, 소중한 한 사람의 삶을 중심에 두는 사회적 경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했다. 지극히 마땅한 일이고 가야할 방향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이에 대한 고민보다 더 아팠던 것은 “나는 희미한 ‘우리’가 그저 거대한 국가 권력 따까리를 하는 게 자존심 상할 뿐이다.”, “희미한 우리도 우리 호흡으로 좀 살아보자!”, “그저 국가가 만들어 놓은 매뉴얼대로 움직이면서 과업목표 달성에 매몰되어 살고 있을 뿐이다.”, “나는 그 국가정책 때문에 먹고 산다. 난 이런 내가 싫다.”라는 말이었다.

중간조직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말 뜻이 어떠한 것인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일상의 스트레스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배의 이런 글을 읽으면서 또 다시 생각난 게 있다. 1976년 1월 23일 원주 원동성당에서 발표된 ‘원주선언’이다. 이때는 박정희 군사 독재가 긴급조치 9호로 정권을 유지하던 시대였다. 원주선언이 발표된 지 30년이 지난 2006년 원주선언을 처음 접했다. 저항을 넘어 불의를 준엄히 꾸짖고 방향을 제시하는 선각자들의 안목과 용기가 놀라웠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안타까웠던 것은 30년이 흘렀는데도 본질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후 또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역시 일반 주민의 입장에서는 크게 변한 게 없다. 

1976년 1월 23일 원주선언이 발표된 강원도 원주 원동성당 모습
1976년 1월 23일 원주선언이 발표된 강원도 원주 원동성당 모습

 

원주선언에서는 “우리는 역사적인 상황과 풍토에 따라 민주주의의 실제 운용에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의 정치제도가 민주주의로 불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근본이념이 있고, 또한 최소한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이것이 파괴될 때는 이미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이다.”라고 전제한다.

그러면서 “그 근본이념이란 국가권력의 절대성, 무오류성을 부인하고 견해와 이익의 다양성과 가치의 상대주의를 용납하며, 국가권력을 민중의 자유에 대한 가상 적으로 규정하여 부단히 감시, 견제, 제한하는 비판정신을 장려하는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총화는 침묵이 아니며, 총화의 적은 비판과 저항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사회적 경제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공적(公的) 부문으로부터의 독립이다. 또한, 시장이나 국가와는 전혀 다른 경제 주체, 그것이 협동조합 등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경제라는 것도 부인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각 부처에서 나오는 사회적 경제 관련 정책은 사회적 경제의 발전 보다는 국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 또는 우수한 평가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제도화됐기 때문에 국가와 어떤 식으로든 소통하는 것은 필수요소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관계의 긴장감이 없다는 것이다. 많은 오류들이 지적되고 국가는 항상 ‘무오류’이다. 견해와 이익의 다양성과 가치의 상대주의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냥 절대적이다. 민은 국가라는 블랙홀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2009년 제주도지사 주민소환운동을 벌였던 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당시 “공무원이 지역 발전의제를 장악하고 ~ 관 주도의 특별자치로 도지사에게 권력이 독점되는 반면 주민참여는 실종되고 지역발전을 위한 주민의 상상력 또한 모두 차단됐다”며 지역사회를 진단했다. 발전의제의 장악과 주민 상상력의 차단. 이 역시 우리가 현재까지 처한 현실이 아닐까?

후배의 고민과 스트레스 속에서 사회적 경제의 갈 길과 국가와 자치단체와의 관계, 우리의 역량을 고민한다. 그리고 또 생각한다. 나는, 우리는 민주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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