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또 다른 가능성임을 인정할 때, 우리의 다름은 힘이 되고, 더불어 사는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춤추는 헬렌켈러 정찬후 대표 사진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사회적기업 ‘춤추는 헬렌켈러’ 직원들은 장애인을 ‘장애주체’라고 부른다. 장애라는 특성을 자기 자신이 주체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특정 감각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더 발달한 다른 감각을 발휘하는 현상을 종종 볼 수 있다. 눈이 안 보이면 안(자신의 내면)을 보고, 후각이 더 발달하는 탁월한 힘을 가지는 식이다. 춤추는 헬렌켈러(이하 춤추러)가 장애주체를 잠재력이 충만한 존재로 보는 이유다. 

춤추러는 장애인이 중심이 돼 공연·교육·문화·예술 사업을 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소셜미션은 장애주체가 스스로 자신의 빛과 힘, 가치를 찾아 당당하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정찬후 춤추러 대표는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에 대한 고민을 50년 동안 해왔다. 그는 “언어장애인인 고모로 인해 가족 전반에 뿌리 깊은 우울감이 내려와 있었다”며 “나 자신도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는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장애인 본인과 가족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알았기에 장애인 문제를 풀어내겠다는 사회적 소명이 있었다”며 춤추러 설립동기를 설명했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정 대표는 내면의 소리에 집중해 가치를 끌어내는 명상호흡인 석문호흡을 27년간 연마했다. 이를 통해 장애가 외려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2012년 SGS사회적기업아카데미 4기에서 관련 프로젝트를 제안해 최우수상을 탔고, 그 해 12월 회사를 창립했다. 2017년 3월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창의혁신형으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으며 공연과 강연, 두 가지 프로그램을 축으로 회사를 운영 중이다. 

정 대표는 공연사업에 대해 “장애주체가 주도해서 자신의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공연팀 멤버를 매년 오디션으로 선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춤이든 노래든 재주가 있다고 생각하는 장애주체에게 무대를 마련해줄 테니 한 번 오디션을 보러오라는 취지”라고 밝혔다.

춤추는 헬렌켈러에서 진행한 장애인식 개선 강연 사진./사진제공=춤추는 헬렌켈러

강연사업도 장애주체가 자신의 마음속 이야기를 보다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교육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지난 2018년 '늘품상담사회적협동조합과 함께 시각장애인 심리상담사 보조역할을 하는 '코리더' 양성과정을 진행했다. 그는 “시각장애주체도 심리상담을 잘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데, 시각장애인 심리상담가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심리상담은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시각장애주체들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일이 미래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특별한 장애 가치에 집중한 생산적 복지로 전환할 때

SIB 모의 투자 대회 최종발표회에서 춤추는 헬렌켈러 정찬후 대표가 대상을 받는 모습./출처=한국사회혁신금융

정 대표는 “국내 25만 시각장애인 중 성년 시각장애인의 사회참여율이 굉장히 낮은 편”이라며 “그나마 대부분은 안마 지압사로, 나머지 다수는 고립된 채 불안과 우울, 비만과 당뇨 등을 겪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2018년 경기도가 진행한 시각장애인 873명 대상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업 활동률은 21%에 불과했다.

그는 “장애인을 대상화하는 시혜적 복지정책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생산적 복지정책이 필요하다”며 “‘장애가 아니라 장해, 방해가 아니라 반해, 걸림이 아니라 끌림’을 강조하는 장애인정책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장애인이 진정한 주체로 사회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그들의 삶이 바뀔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프로젝트가 바로 ‘맹자살리는 청이밥상’이다. 이 프로젝트는 맞춤 식단과 소통하는 밥상을 표방하며, 시각장애 가족의 행복과 사회통합 촉진을 목표로 한다. 시각장애주체의 식생활을 개선하고 건강을 증진시키며, 궁극적으로 ‘한국 생명의 전화’ 전화상담사를 30명 양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춤추러는 이 프로젝트로 올해 1월 17일 경기도에서 열린 경기도 SIB 모의 투자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정 대표는 “시각장애주체들의 자존감이 크게 향상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눈뜰식판 모형. 2019년 하반기에 특허출원 후 심사과정 중에 있다./사진제공=춤추는 헬렌켈러

춤추러는 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전맹 시각장애인이 보이는 듯이 먹을 수 있는 ‘눈뜰식판’을 지난해 하반기 개발, 특허출원까지 해냈다. 그는 “전맹 시각장애주체는 집 밖으로 나오는 일부터 힘들다”며 “관심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어 그는 “눈뜰식판이 비장애인에게도 교육적 목적으로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더불어 함께 조화를 이루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음악극 공연 사진./사진제공=춤추는 헬렌켈러

춤추러는 작년 11월에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직접 각색하고 기획한 같은 제목의 음악극을 무대에 올렸다. 하나님, 천사, 인간의 자유의지와 밝은 미소, 사랑하는 마음 등이 주제가 된 이 극은 젊은 청년 문화예술가로 구성된 ‘까투루'와 '어우러짐 문화예술협동조합’과 함께했다. 

정 대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연함으로써 문화예술계에 한 획을 그었다고 자부한다”며 “이 음악극을 올해 안에 더 많은 이들이 보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수원시 사회적기업협의회 운영위원도 겸직하고 있다. 그는 “대탕평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혁신군주 정조를 다룬 공연을 준비 중”이라며 “사회적경제기업과 수원시민이 함께하는 장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향후 '에이블스테이'(Able stay) 운영을 구상 중이다. 석문호흡도 체험하고, 음악극·연극·춤 등을 배우면서 이곳에서 누구든 자신감을 얻어갈 수 있기를 꿈꾼다.

“장애주체가 복지의 대상이자 약자가 아니라 특장점을 지닌 국가의 보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다”는 정찬후 대표에게서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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