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가치를 전파하는 중요한 도구다. 세상에 이로운 가치를 전파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이로운넷이 전달한다.

 

황의록 한국화가협동조합 갤러리쿱 이사장은 "미술은 산소와 같다"면서 삶속의 미술을 강조했다.

돈보다 그림이 중요하고 그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림 팔려고 협동조합을 만든 게 아니다. 화가들이 처한 현실이 안타까워 시작했는데 이들보다 더 힘들고 불쌍한 사람들이 많더라. 더 많이 배웠고 더 많이 가졌고,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는데 가슴이 뻥 뚫린 사람들. 그래서 한 쪽 날개를 더 달았다.

사람들이 그림으로 행복해지면 그림 수요가 늘어나고 화가들의 삶은 저절로 좋아질 것이다. 평생을 경영학 교수로 지냈고 마케팅이 전문인 황의록 한국화가협동조합 갤러리쿱 이사장의 말이다. 하루도 쉼 없이 365일 문을 여는 화랑에서 그를 만났다.

어쩌다 화가 돕기에 나섰나

경영학은 실천과학이다. 현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경영학은 경영학이 아니다. 은퇴를 앞두고 취미 하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사진을 배우면서 미대 출신 프로 작가들을 많이 만났다. 이들과 어울리면서 작가전에 초대를 받기도 하고 뒤풀이도 따라갔다.

작가들은 가장 싼 집에 가서 가장 싼 걸 먹는데도 돈 낼 때가 되면 쭈뼛거리곤 했다. 그들보다는 주머니 사정이 나은 내가 몇 번 밥값을 냈더니 소문이 났다. 황 교수는 화가들의 후원자라고.. 화가 친구들이 수 백 명으로 늘어났다. 

작업실 초대도 받고 삶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처한 현실이 너무 열악했다. 난 젊어서 붓 한번 잡아본 적 없지만 그림을 좋아해서 미술관을 즐겨 찾았고 예술의 중요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황의록 이사장은 경영학자이자 심리학자이다. 그는 "특히 청소년 자살율이 높은 한국 사회에서 미술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죽었다  vs  성공할 수 있다

모두들 망할 거라고 뜯어말렸다던데

예술이 예술가만을 위한 거라면 그들이 굶든 잘 살든 내가 관여할 바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고 우리의 미래다. 경영학 관점에서도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다. 원가·품질 등은 말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모방이 쉽다.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샘물처럼 솟아나는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 뿌리가 예술이다.
 
일을 추진하기에 앞서 미술업계의 자문을 구했다. 한결같이 망한다고 뜯어말렸다. 이유는 미술시장이 얼어붙었다는 점과 그림 팔아서는 결코 돈을 못 번다는 거였다. 돈 벌려 하는 일이 아니니 두 번째 이유는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림 시장이 죽었다는 건 큰 문제였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작가들을 도울 방도가 없다. 그래서 시장조사를 했다. 명색이 마케팅 교수 아닌가.

의외로 그림을 좋아하고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왜 안 사느냐고 물으니 불안감이란 답이 돌아왔다. 결코 가격이 싸지 않은데 과연 이 그림이 괜찮은 그림인지 혹은 이 작가가 좋은 작가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명품 가방은 사는 즉시 중고가 되지만 그림은 실컷 즐기고도 운 좋으면 가격도 올라가 보탬이 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가까이하고 집에 한 점씩 걸 수 있다면 시장은 커지고 작가들의 삶도 여유로워진다. 그러면 사회의 격도 높아지지 않을까. 난 이 사업을 하면 잘 될 것 같았다.

 

서초동 서울 교대 근처에 위치한 갤러리는 1년 365일 문을 연다. 누구라도 원하는 날에 작품을 감상 할 수 있다.

▶ 예상처럼 잘 됐나

한국화가협동조합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조합원 중엔 화가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 후원자로 20명이다. 조합원을 모을 때 3가지 원칙을 고수했다. 

첫째, 밥 먹고 사는가? 자기 밥도 해결 못하면서 남을 돕는다는 것은 넌센스다. 둘째, 뜻이 좋다고 결과까지 좋으란 법은 없다. 출자한 돈이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있는데 ‘멋진 꿈 함께 꿔서 행복했다’라고 하이파이브 하면서 헤어질 수 있는가이다.

출자금은 1인당 1000만 ~ 3000만 원이다. 수억씩 내겠다는 분도 있었지만 안 받았다. 누군가 돈을 많이 출자하면 그 사람 눈치를 보게 되니 협동조합을 만든 이유와 배치되기 때문이다. 셋째, 함께 시간을 나눠 줄 수 있는가였다. 우리에겐 돈보다 동지가 필요하고 마음이 필요하다. 뜻을 같이한다는 건 시간을 함께 써준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 번째 조건에서 물러섰다. 본업을 제쳐놓고 하란 게 아니라 짬 나는 데로 참여해달라는 뜻이었는데 너무 겁을 낸 것 같다. 조합원 말고도 순수 후원자가 40여 명 있다. 이들은 매년 100만 원씩 후원한다. 만 5년이 지난 지금 건재하고 소속 작가는 40명으로 늘어났다. 전시회도 이미 2년 치가 짜졌다. 

 

전시작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관람객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대중과 괴리된 예술은 지양

인기 비결이 뭘까 

우리의 미션은 작가들이 좀 더 나은 여건에서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또 다른 축은 돈이 있든 없든 누구나 그림을 가까이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소속작가 신청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작품성과 대중성·성실성·인간성 그리고 경제적 능력을 본다. 학력이나 경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로지 작품성만 본다. 이를 위해 작가 이력서를 받지 않고 심사위원들도 서로 누가 심사를 하는지 모른다. 심사위원들은 해마다 10명이 선발되는데 집에서 각자 심사를 한다. 10명의 심사위원 중 7명이 찬성해야 1단계 통과다.  

작품은 대중이 감동을 느끼고 좋아할 수 있어야 한다. 초대전 때 관람객들에게 스티커를 나눠 줘 평가하게 한다. 작품이 좋아도 경제적 여력이 되는 작가는 지원 대상이 아니다. 끝으로 인간성과 성실성이다. 작가의 개성은 창작의 원천이라 최대한 존중하지만 우리는 협동조합이고 여러 작가를 뒷바라지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밖에 모르면 갈등이 생긴다.  

일단 소속 작가가 되면 아낌없이 지원하지만 무작정은 아니다. 매년 연말에 심사를 한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살핀다. 여기 걸려 있는 그림은 모두 미공개 신작이다. 다른 전시장에서 한 번 발표했던 것 또 들고 오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안주하지 않도록 계속 자극하는 것으로 작년에만도 작가 3명이 탈락했다.

작품 전시와 홍보·판매등과 관련된 비용은 100% 다 댄다. 해외 진출도 돕고 더 좋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외여행과 작가 워크숍을 통해 영감을 불어 넣어준다. 작가들은 이런 점들을 아주 좋아한다.

 

전시작은 모두 미공개 신작들이다. 황이사장은 "소속작가들의 작품량은 일반 작가들보다 많은 편" 이라면서 "양속에 질이 있다"고 강조했다.

공짜는 사람을 망친다

세계 여행 비용이 꽤 들 텐데..

3년 전부터 시작했다. 1년에 한 번 3주~4주 기간으로 해외여행을 한다. 신청은 자유고 여행비는 우리가 댄다. 첫해에는 지중해와 인근 섬들 그리고 이탈리아 피렌체까지 한 달간 여행했다. 2회는 사하라사막과 모로코·스페인 여행, 올해엔 남미 볼리비아·페루·멕시코 일부를 간다. 내년엔 러시아와  핀란드를 여행할 예정이다. 

작가들은 창작자다. 집과 작업실만 오가선 영감이 떠오를 수 없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도 테크닉은 늘겠지만 머리는 달라지지 않는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빛과 색 그리고 풍광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들은 형편이 어렵기도 하지만 돈이 있어도 훌쩍 떠나기란 쉽지 않다. 용기가 필요하다. 

콘셉트는 ‘함께 또 따로’다. 중요한 일들은 함께 하지만 나머지 시간은 자유다. 그렇게 여행을 하고 나면 그림이 달라진다. 새로운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여행비를 조합비로만 충당했는데 금방 부담이 됐다. 난 공짜를 아주 싫어한다. 공짜는 사람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돗자리는 깔아주되 여행을 갔다 돌아오면 전시회를 통해 그림을 팔아 여행경비를 돌려달라고 했다.

해보니 뜻대로 되는 작가도 있고 안 되는 작가도 있었다. 결국 작가들에게 부담이나 빚으로 남게 돼 안 좋았다. 다음엔 아는 기업들에게 여행경비를 대 주면 그림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기부라는 게 조건이 있으면 순수하지 못하다. 반대급부로 그림을 주다 보니 이름을 뭐라 붙이든 찜찜했다. 

그래서 올해는 여행비를 후원해주면 작가들이 돌아와 여행 작품을 전시하고 그 그림을 후원기업의 이름으로 문화예술 소외지역의 초등학교에 기부하는 프로젝트로 바꾸었다. 올해 경비를 댄 두 기업은 자신들의 이름을 빼달라고 했다. 그냥 얼굴 없이 돕고 싶다고 해서 감동이었다. 다들 얼굴 못내 난리들인데... 

초등학교 그림 걸어주기 프로젝트는 작가를 위해 쓰인 돈이 다시 미래 세대인 초등학생들에게 쓰이고 이는 다양한 형태로 사회에 환원되리라 믿는다. 단지 그림만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들이 학교를 찾아가 그림을 즐기는 법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삶 속에 예술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이 축제처럼 즐길 수 있도록 교육부와 지자체와도 조만간 업무협약(MOU)을 맺을 계획이다. 

 

한국화가협동조합 갤러리쿱은 매년 소속작가들에게 해외 여행의 기회를 제공해 창작의 영감을 불어 넣어준다/사진제공=한국화가협동조합 갤러리쿱

 

수익이 나야 남도 돕는다

왜 협동조합인가

'그림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든다'는 것이 조합의 모토다. 내겐 돈 보다 뜻을 함께 할 동지가 필요했다. 협동조합은 1인 1표로 민주적인 조직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곳은 흔치 않다. 

이유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동지로 출발하지만 잘 되면 이해관계가 상충돼 분규가 생겨날 수 있다. 그래서 이해관계자가 경영의 책임을 맡으면 안 된다. 난 무보수로 일한다. 보수는 1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돈은 나에게 하나의 보상일 뿐 보람과 재미에 더 큰 가치를 둔다.

두 번째 조합을 이끄는 사람은 뜻이 아무리 선해도 경영능력이 없으면 안 된다. 조직은 무조건 수익이 나야 한다. 그 수익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영리와 비영리로 나뉠 뿐이다. 수익이 없으면 조직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일반 협동조합이지만 100% 비영리다. 한때 사회적협동조합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지원에 의존하면 너무 쉽게 갈 것 같아서 안 했다. 동시에 간섭도 싫었다. 지원이 오면 간섭도 많다. 자력으로 생존해야 한다. 우리는 100% 비영리조직이라 배당은 꿈에도 없다. 

다만 5년을 넘기고 조합의 활동 규모가 커지다 보니 우리 자금만으론 한계가 있다. 초등학교 그림 보내기 프로젝트만도 1년에 3억이 필요하다. 올해는 강원지역 10개 학교가 선정됐다. 전국에 6500개 학교가 있는데 1년에 10개 학교에 그림을 기부하려면 650년은 기다려야 한다. 내가 그렇게 못 산다. 

 

작가들이 해외 여행 후 돌아와 그린 작품들은 빠르면 오는 9월부터 3년 간 강원도 소재 30여개 문화 예술 소외 지역 초등학교에 기부될 전망이다./사진제공 = 한국화가협동조합 갤러리쿱

 

 
누구나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한국화가협동조합 갤러리쿱은 1년에 두 번 5월과 12월에 선물전과 감사전을 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도 있지만 일률적으로 100만 원에 판다. 부담스러우면 10개월 할부도 해준다.

조합이 작가를 지원해주듯이 작가들도 사회를 위해 도우라는 취지다. 365일 문을 여는 이유도 누구나 원할 때 그림을 즐기라는 것이다. 

 “누구나 좀 살만한 세상,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정치로, 경제로.. 우린 아는 것이 그림이니까 그림으로 할 뿐입니다. “

사진. 진재성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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