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대표 홍정인)의 클래식 소사이어티 렉처 프로그램 ‘2023 시네 도슨트 시즌3: 위대한 예술가들을 만나다’를 진행한다고 26일 밝혔다.‘시네 도슨트’는 세계 곳곳의 유명 미술관과 작품 및 예술사를 전문가의 해설과 함께 감상하는 메가박스의 대표적인 강연 프로그램이다. 올해에는 처음으로 시즌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으며,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시네 도슨트 시즌1은 최고 좌석 판매율 81%, 시즌2는 89%를 기록하며 관객의 꾸준한 성원을 얻고 있다.이번 ‘2023 시네 도슨트 시즌3: 위대한 예술가들을 만나다’에서는 예술가
“이른바 ‘과학’의 발전은 현대 세계에서 유럽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게 된 가장 지배적인 요인이다. 그것의 기여는 인권이나 민주주의 이론만큼이나 중요하다. 과학과 민주주의는 한 수레의 양 두 바퀴와 같다. 과학은 중국의 농업, 상업, 산업, 의학의 발전에서 본질적인 것이다. 청년들은 과학을 반드시 배워야 했다. 오늘날 이것은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진독수 시대에는 젊은이들에게 특히 강조돼야만 했던 실정이었다. 진독수는 ‘민주선생’과 ‘과학선생’이 중국을 정치와 윤리와 학문과 사상에서의 어둠으로부터 탈출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고 했다. 당사자는 물론 부모 형제 자식까지 갖은 고초와 수난을 겪어야 했기에 나온 말이다. 그만큼 독립운동은 집안의 희생을 감수하고 나서야만 했던 험난한 길이었다. 그런데 가문 차원으로 독립운동을 벌인 경우가 있으니,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일가가 대표적이다.1910년 나라가 망하자 우당의 6형제들은 만 여석의 전 재산을 처분하고 50여 명의 가솔을 이끌고 만주 서간도로 망명했다. 그리고 경학사(耕學社)와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해외 독립군 기지를 개척했다. 잘 알려지듯이 신흥무관
크로포트킨, 동아시아에 진출하다제국주의가 동아시아를 지배하던 20세기 초, 격변하던 그곳은 각종 이념의 전쟁터였다. 유교사상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동아시아 3국은 각종 최첨단 무기와 신기술로 무장한 서양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철저하게 물리적으로 패배했고, 거대했던 중국의 몰락은 당시 지식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서양 제국주의 성공의 배후에 과학기술이 있다는 건 분명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전후로 과학기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과학기술에서 가장 앞서나갔다. 중국 또한 이미 오래전부터 서양과의 교역을 통해 과학기술 서적이 번
근대란 중세적 신분제를 타파하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구현하는 시대를 말한다. 서구에서는 자본주의·자유주의·내셔널리즘(국가주의) 등을 근대의 성립 요소로 꼽지만, 그것만이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은 아니다. 근대에 이르러 민족을 형성했던 서구와 달리 한국은 근대 이전부터 오랫동안 ‘민족체’를 형성하며 강력한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유지했다. 때문에 역사 발전의 과정과 성격도 서구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자본주의에 비롯한 서구의 경로와 달리, 양반 신분제 타파가 근대화의 중요한 관건이었다. 19세기 초 신분제에 반발한 민초
영국의 위대한 망명객, 크로포트킨크로포트킨은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 러시아에서 태어난 생물지리학자였다. 그는 반체제운동으로 오랜 수감생활을 했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1876년 탈옥한 이후에는 영국으로 망명한 후, 프랑스와 스위스를 오가며 아나키즘 운동을 하다가 프랑스에서 다시 수감생활을 한 이후인 1886년부터는 줄곧 영국에 머물렀다. 당시 영국에서 아나키즘은 혐오의 대상이었지만, 크로포트킨은 귀족 출신이라는 그의 독특한 이력과 유명세 덕분에 영국사회에서 제법 알려진 명사가 될 수 있었다. 특히 19세기 후반 영국 사회는 과학에 대
한국의 독립운동은 1894년 의병전쟁을 신호탄으로 1945년 광복까지 50여 년간 전개됐다. 독립운동에 참가한 사람도 5백만 명이 넘었다. 한인이 있는 곳이면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어디든지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국내에서는 일제의 직접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천 개의 비밀단체, 만세운동, 농민·노동·여성의 대중운동, 학생운동 등 각 부문에서 민족총력적으로 전개했다. 만주에서는 서·북간도의 한인사회를 바탕으로 수많은 독립군 단체가 세워졌고, 중국의 상하이와 충칭 등에서는 임시정부가 활약했으며, 미주의 한인들은
아나키즘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종류의 사회적 운동이다. 아나키즘이 근대 일본에서 ‘무정부주의’로 번역되면서 아나키즘이 폭동, 암살, 테러 등의 폭력적 운동들로 연상되지만, 아나키즘이란 그저 지배(권위)가 없는 상태를 추구하는 사회적 운동일 뿐이다. 그러니까 아나키란 지배자가 없는 혹은 권위를 거부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아나키즘이 거부하는 권위는 정부만을 특정하지 않는다. 아나키즘은 강압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종류의 권력에 저항하는 정신이다. 만약 누군가 거대한 폭압적 권력에 맞서고 있을때, 그는
“조선 사람에게 무엇보다 먼저 과학을 주어야 하겠어요” 이광수, 중 개화론자 형식의 대사“자연과학은 철학, 예술과 같이 일정한 사회조직 즉 생산관계의 토대 위에 서 있는 이데올로기이다.” 여경구, 1946년 창간호에 실린 글 중에서 해방 공간과 과학기술단체의 난립, 이념을 마주한 과학기술인20세기는 이념의 전장이었다. 식민지 조선은 여러 이념들이 얽혀 갈등하고 반목하며 부딪히는 용광로였다. 독립운동 또한 3.1운동 이후 민족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의 여러 이념으로 나뉘어 전개됐다. 식민지 시대, 일제는 조
“그러므로 금세기의 산업의 진보가 만인에 대한 각인의 싸움 덕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의 원인을 모르는 자가 진흙으로 만든 우상 앞에 바친 희생의 덕분으로 비가 내린다고 하는 것과 흡사하다. 자연에 대한 정복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산업의 진보의 경우도, 상호부조와 긴밀한 교류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확실히 상호투쟁 이상으로 유익한 것이다.” 크로포트킨, 중에서약산 김원봉, 여전히 계속되는 아나키즘의 오해우리는 여전히 약산 김원봉을 독립운동가로 서훈하지 못한 국가적 이데올로기에 갇혀있다. 대통령의 입에서 “광
어쩔 수 없이 역사에는 오해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오해가 진실이나 정설이 돼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왜곡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한국 독립운동은 오해와 왜곡이 겹쳐지며 심한 상처를 입어야 했다. 그 폐해는 해방 후에도 오랫동안 역사와 사회를 혼란시켰다.도산 안창호(1878∼1938)의 독립운동을 보더라도 그렇다. 도산은 독립운동가 이전에 교육자, 도덕가, 인격자, 기독교인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독립운동 또한 점진적 실력양성론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통설처럼 굳어진 이런 도산의 모습은 해방 후 이광수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