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닳아빠진 노란색 양은냄비라야 한다. 뚜껑 위의 검은 꼭지를 잡고 들어 올려 뒤집는다. 그 위에 막 끓여낸 라면을 크게 한 젓가락 올려놓고 푸르륵, 푸르륵 여물 먹는 말처럼 소리도 요란하게 먹는다. 아니, 먹는다는 표현보다는 흡입한다는 말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 같다. 푸르륵, 푸르륵.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2004년 류장하 감독, 최민식 주연)’에서 음악선생이 그의 퀴퀴한 자취방에서 중학생 제자와 함께 라면 먹는 장면을 떠올리고 다시 그 안에서 소실점을 따라 멀리멀리 들어가, 1980년 초 강화도를 전전했던 고수머리 청년이
한 달에 한 번 기고하는 글의 차례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나. 소중한 지면을 내준 분들께는 염치없고 죄송한 말씀인데 그만큼 숨 가쁜 나날을 보냈다는 뜻이다. 경기도 김포로, 강원도 영월로 단풍잎 휘날리며 달려가 글쓰기강의를 하고 강원도 죽변에 가서 중장비를 운전하는 노동자시인을 만나 밥 한잔 나누고 왔다. 또 대구 키다리갤러리에서 신성(神聖)이 담긴 다육소녀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개인전에 다녀왔고 시인들과 독자들이 직접 얼굴을 마주하며 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문학저변 넓히기 행사 에 참여해 시집과 시인이
지나간 여름 어느 날 우편배달부로부터 누렇고 두툼한 서류봉투를 하나 받았다. 또 어디선가 보내온 문학관련 책이겠거니. 하고 봉투를 뜯어보니 각종 숙박시설과 교통편의 무료 제공 서비스를 꼼꼼하게 안내한 책자를 동봉한 여행 티켓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꽃다발 한번 받은 기억도 없이 심심한 내 생애에 제주도 여행도 아니고 달나라여행이라니!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들여다보아도 그건 틀림없는 달나라여행 티켓이었다. 그것도 무기한으로 무려 열한 개의 달을 순회하는 특별여행권이었다. 버럭 씨는, 고뇌의 고뇌를 거쳐 앵겔지수를 위협하지 않는 몇 가
‘복기(復棋)’란 한판의 바둑이 끝난 뒤 처음부터 지나간 수순들을 되짚어 잘못된 부분이나 실수를 분석하고 연구, 검토한다는 뜻을 가진 바둑용어인데 요즘에는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쉽게 입에 올릴 만큼 우리 일상에 깊숙이 녹아들어 있다.어느 정도일까. ‘복기’에 관련된 최근 신문기사 제목을 검색해봤다. ‘[2018 삼성월드바둑마스터] 복기 선생님이 된 AI', '이재성의 냉정한 복기, 골 말고는 한 게 없던 경기’, ‘악바리 손아섭, 매일 타격영상 복기’, ‘김동연, 경제 정책 효과 복기’, ‘김지운 감독, 한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