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3월 8일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나이 서른을 넘어선 뒤 ‘글을 써보겠다’는 치기 하나로 몸에 익숙한 노동판을 떠나 글을 쓰게 해줄 연분을 찾아 좌충우돌 헤매던 자발적 백수시절, 드디어 고난의 출판편집, 교정교열 알바인생을 마감하고 ‘글을 실컷 쓸 수 있는’ 월간지 기자로 입사한 날이기 때문이다.월간지는 ‘사단법인 조치훈후원회’에서 발행하는 라는 전문지였다. 동네친구 형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바둑은 훗날 제대로 알게 된 바둑과 거리가 먼 땅따먹기 놀이였으나 어쨌든 한 달쯤의 교정교열 아르바이트를 성실하게 치렀고(?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면의 섬소년. 나이 열둘에 프로가 되어 서른여섯이 될 때까지 열네 개의 세계타이틀을 거머쥐며 정상을 활보해온 천재기사 이세돌이 프로바둑 은퇴를 발표했다(11월 19일 한국기원에 사직서 제출). 한두 해 전부터 심심찮게 은퇴설이 나돌았고 최근,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흘러나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는 했지만 그가 가진 영향력은 바둑계를 술렁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이세돌은 프로생활 24년 동안 한국 프로바둑계에서 벌어진 첨예한 논쟁의 중심에 있었고 주변의 평판에 관계없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억누르는 모든 압박에
1. 아름답다는 말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다. 아니, 좀 더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아름답다는 말로 꾸며진 대상에서, 아름답다는 말이 최초로 가지고 있었을 그 아름다운 감흥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야겠다. 언어에도 관성(慣性)이 있어서 오래 반복해서 사용하다 보면 원래의 의미는 차츰 엷어지고 무덤덤해진다. 항생제를 자주 복용하는 사람의 몸에 내성이 생겨 약효가 점점 떨어지는 증상이나 분초를 되새겨도 부족할 공사, 교통사고 현장에서 흔히 목격되는 안전 불감증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시를 쓰는 사람들이, 그렇게 일상에서 무수히 반복
시를 쓰는 가까운 두 사람과 밥을 먹었다. 인터넷에서 일용잡화부터 신발, 의류까지 온갖 상품의 유통업을 하고 계신 형님은 등단하지 않았지만(내게는 시를 쓰는데 그런 절차는 필요하지 않다는 사견이 있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사설조의 리듬으로 일상을 풍자하는 해학을 가졌고, 평소 스스럼없이 호형호제하는 아우는 등단햇수로 치면 까마득한 문단의 선배로 서정 넘치는 짧은 시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시인이다. ‘김치찌개를 기가 막히게 잘 하는 집을 발견했다’는 형님의 황소걸음을 따라 들어간 밥집은 ‘삼겹살도 죽여준다’는 말씀을 입증이라도 하
망중한(忙中閑)이 아니고 한중망(閑中忙)이라고 해야 할까. 급할 일 없는 백수놀음 중에 며칠, 정신없이 바빴다. 사실, 바쁠 일들도 아닌데 미루고 미루다가 심장이 묵직할 만큼 부담을 갖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동안 무탈하게 해왔던 일들이 새삼 부담스러워질 리도 없고, 맞다. 이게 다 시끄러운 세상 탓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나라 걱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아침에 눈 뜨고 저녁에 눈 감을 때까지 하루 종일 듣는 게 조국이고 보는 게 조국이다. 법무부장관 후보 한 사람의 친인척이 연루된 사모펀드, 딸이 제1저자로 등재된
말을 잃어간다. 점점 말이 싫어진다. 타고나길 말 많은 성격이 아니어서 그러지 않아도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사람이, 너무 말이 없어’라는 소릴 종종 듣는 편인데 이제는 생계를 위해 꼭 해야 하는 말이 아니면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산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말, 수사만 요란하고 알맹이 없는 말의 성찬이 범람하는 시대도 견디기 어려운데 요즘은 이악스러운 정치, 언론인들의 막말까지 뒤섞여 바다 건너 열도까지 내왕하며 속을 긁어대는 바람에 하루하루 사는 일이 혼미할 지경이다. 이틀 전 황망한 소식을 들었다. 문학의 연으로 알게 된 동갑
프로바둑의 여름은 조금 특별하다. 왜냐? 에어컨의 냉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선한 자연풍. 그 바람의 이름을 짓는 사람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바람의 이름을 짓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일까? 기상과학자도 아니고 국어학자도 아닌 프로바둑의 어떤 사람들이 바람의 이름을 짓나? 그거야말로 금시초문인데 도대체 무슨 말인가.이실직고하자면 하늬바람, 높새바람, 소슬바람, 영등바람… 뭐, 그런 바람이 아니다. 언제였던가, 오래 전 한여름 대청마루 바둑판 앞에 앉은 할아버지가 살랑살랑 부치던 그 부채바람이다. 사실, 요즘처럼 부채의 자리가 위태로운
1. 오랫동안 시를 써오면서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도대체 시인들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 돈도 되지 않는 시를 쓰냐?’는 거였다. 산을 타는 일 자체가 업인 등반가에게 ‘다시 내려올 거면서 뭘 그렇게 목숨까지 걸며 오르느냐?’고 묻는 것과 같은, 무례를 넘어 무지한 질문인데 그런 비아냥거림이 상당 부분 물질만능시대의 현재진행형 사실이라는 심정의 시인(是認)에 닿을 때마다 피식, 웃고 만다.여기서 문화예술의 몰이해를 조장하는, 심하게 일그러진 이 나라의 교육. 취업 준비학원이 돼버린 초, 중고등학교와 취업 전문학원이 돼버
꽤 오래 전 일이다. 황인용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라디오방송 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 작업장에 켜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귓전으로 스치면서 간혹 한두 마디가 고막을 파고들었는데 그 중 인상 깊은 말이 있었다.그때 들었던 이야기를 정확하게 재현할 수는 없지만 그 말에 깃든 의미만큼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또렷하게 살아있다. 아나운서의 설명은 대충 이랬다.어느 시인이 우리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 엄마 뱃속에 있었던 시간을 잊지 말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거짓말이지만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니 시인들이란 거짓말
오랫동안 볼까, 말까 미뤄왔던 영화 한 편을 보고 기어이 우울의 늪 속으로 침잠한다. 이래서, 이럴 거 같아서 안 보려고 했는데. 나딘 라바키(1974년 레바논 출생) 감독의 ‘가버나움’은 그런 영화다. 인종과 이념의 전장(戰場), 그 감당할 수 없는 소용돌이 안에서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에 대하여. 그 중에서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꺼져간 수많은 어린 생명들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불편함 때문에 끝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불면을 늘어뜨린 또 다른
2016년 3월(9~15일)에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Google Deepmind Challenge match)에서 딥마인드가 내세운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AlpfaGo)가 세계 정상의 바둑프로 이세돌을 4-1로 꺾어 바둑계는 물론, 지구촌 전역에 충격을 안겨준 지도 벌써 3년이 흘렀다. 인간의 마지막 보루라고 굳게 믿었던 바둑마저 기계에게 패했다는 충격과 ‘기계에게 무릎을 꿇은 바둑은 이제 지속가능한 가치와 매력을 상실했다. 존재 의미가 사라졌다’는 극단적(특히, 바둑관계자들의) 공포도 가라앉은 지금은 어떤가. 다
펼쳐든 책은 예상대로 어렵지 않았으므로 술술 읽혀졌다. 책 좀 읽던 어린 시절부터 읽기보다 쌓아놓거나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이즈음까지 변하지 않은, 작정하고 붙들면 놓지 않는 버릇 그대로 제법 두툼한 350쪽을 반나절쯤 들여 다 읽었다.두 눈이 퀭하고 머릿속이 멍하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뭔가 뿌듯하고 개운할 때가 많은데 이상하다. 이런 일은 기억에 없다. 책을 다 읽었으니 생각한 대로 무엇인가를 써야 하는데, 써서 약속한 곳으로 보내야 하는데 자꾸 깊은 숲의 울음 같은 바람소리가 고막을 채우고 두 손을 붙들었다. 아, 빨리 써야
매년 이맘때가 되면 몸이 바쁘고 덩달아 마음도 바빠진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직하고 실업급여를 신청한 마당에 뭐 그리 바쁠 게 있나.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할 지경이다.아무튼 몇 해 전부터 12월이 되면 이런저런 송년모임에 나 자신은 까맣게 잊고 지내던 생일까지 겹쳐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때로는 생일을 명분삼아 오래 못 보았던 친구들을 불러 밥 한 끼 나누다 보면 어느새 한 장 남은 달력의 숫자마다 동그라미가 빼곡하게 들어찬다. 사실, 이 모든 다망함은 SNS 탓이다. 특히 페이스북. 나는 잊고 있어도 때가 되면 나를 아는 모든 이에
반드시 닳아빠진 노란색 양은냄비라야 한다. 뚜껑 위의 검은 꼭지를 잡고 들어 올려 뒤집는다. 그 위에 막 끓여낸 라면을 크게 한 젓가락 올려놓고 푸르륵, 푸르륵 여물 먹는 말처럼 소리도 요란하게 먹는다. 아니, 먹는다는 표현보다는 흡입한다는 말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 같다. 푸르륵, 푸르륵.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2004년 류장하 감독, 최민식 주연)’에서 음악선생이 그의 퀴퀴한 자취방에서 중학생 제자와 함께 라면 먹는 장면을 떠올리고 다시 그 안에서 소실점을 따라 멀리멀리 들어가, 1980년 초 강화도를 전전했던 고수머리 청년이
한 달에 한 번 기고하는 글의 차례가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나. 소중한 지면을 내준 분들께는 염치없고 죄송한 말씀인데 그만큼 숨 가쁜 나날을 보냈다는 뜻이다. 경기도 김포로, 강원도 영월로 단풍잎 휘날리며 달려가 글쓰기강의를 하고 강원도 죽변에 가서 중장비를 운전하는 노동자시인을 만나 밥 한잔 나누고 왔다. 또 대구 키다리갤러리에서 신성(神聖)이 담긴 다육소녀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개인전에 다녀왔고 시인들과 독자들이 직접 얼굴을 마주하며 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문학저변 넓히기 행사 에 참여해 시집과 시인이
지나간 여름 어느 날 우편배달부로부터 누렇고 두툼한 서류봉투를 하나 받았다. 또 어디선가 보내온 문학관련 책이겠거니. 하고 봉투를 뜯어보니 각종 숙박시설과 교통편의 무료 제공 서비스를 꼼꼼하게 안내한 책자를 동봉한 여행 티켓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꽃다발 한번 받은 기억도 없이 심심한 내 생애에 제주도 여행도 아니고 달나라여행이라니! 두 눈을 비비고 다시 들여다보아도 그건 틀림없는 달나라여행 티켓이었다. 그것도 무기한으로 무려 열한 개의 달을 순회하는 특별여행권이었다. 버럭 씨는, 고뇌의 고뇌를 거쳐 앵겔지수를 위협하지 않는 몇 가
‘복기(復棋)’란 한판의 바둑이 끝난 뒤 처음부터 지나간 수순들을 되짚어 잘못된 부분이나 실수를 분석하고 연구, 검토한다는 뜻을 가진 바둑용어인데 요즘에는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조차 쉽게 입에 올릴 만큼 우리 일상에 깊숙이 녹아들어 있다.어느 정도일까. ‘복기’에 관련된 최근 신문기사 제목을 검색해봤다. ‘[2018 삼성월드바둑마스터] 복기 선생님이 된 AI', '이재성의 냉정한 복기, 골 말고는 한 게 없던 경기’, ‘악바리 손아섭, 매일 타격영상 복기’, ‘김동연, 경제 정책 효과 복기’, ‘김지운 감독, 한동안